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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폐허된 정치, 찢겨진 사회…한국은 몇시인가

각계 인사 9인 “난국, 이렇게 풀라”

각계 인사 9인 “난국, 이렇게 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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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인사  9인 “난국, 이렇게 풀라”

전상인<br>한림대 교수·사회학

탄핵 이후 한국 정치는 위험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한 편의 영화이고 말면 좋으련만, 국민은 관객이 아니라 볼모에 더 가깝다. 어떤 의미에서 작금의 위기는 4·19나 10·26을 능가할 수도 있다. 대통령 하야나 시해처럼 예상치 못한 헌정 공백이 갑자기 발생할 경우, 그것을 메우기 위한 정치적 및 국민적 노력도 이에 걸맞게 비상하게 작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대통령 탄핵의 경우 그것은 ‘예고된 파국’이자 ‘계산된 파장’이라는 점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의지와 단초가 정치권 안에서는 대단히 부족해 보인다.

국민들도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마음과 정성을 한데 모으기보다는 차제에 오히려 분열과 대립을 심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 사태는 지금까지의 제반 갈등구조를 정치적 이슈로 집결시키면서 우리 사회를 과잉 정치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청와대와 국회, 국회와 국민,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신문과 방송 등의 관계가 ‘협조적 공존’과는 정반대 방향인 ‘적대적 대립’으로 일제히 돌아서고 말았다. 특히 불안하고 불길한 요소는 정치구조가 지나치게 의인화(擬人化)되고 있다는 점이다. 온 세상이 송두리째 친노(親盧) 대 반노(反盧)의 전쟁터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정치는 제도와 법률의 틀을 벗어나 특정한 인물을 매개로 하는 전근대적 동원정치로 퇴보하는 인상마저 준다.

싫든 좋든 바로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주어진 실제 상황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시계가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우리는 그래도 역시 정치란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믿음으로부터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고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정치의 세계에서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객이 보는 패자가 사실은 무대 뒤에서는 웃고 있을 수도 있어서, 역전에 역전을 한없이 거듭하는 것이 실물정치의 특징이다.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는 것이 정치현장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항상 새로 시작될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그러므로 탄핵 정국이 남긴 정치적 잔해를 수습하고 다시 일어서는 주체는 그래도 정치권밖에 없다. 또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치주의와 제도적 절차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정치가 정치권 바깥으로 밀려나거나 국내정치가 국제적 개입의 대상이 되는 일만은 다함께 피해야 한다. 정치부재나 정치실종의 상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신뢰다.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이번 탄핵 사태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앞으로의 교훈을 도출하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정도의 차이나 순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정파와 정치인들이 국민 앞에 유죄가 아닌가.

먼저 야당들은 대통령 탄핵결과에 대한 여론이 일단은 매우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탄핵은 물론 일차적으로 법률적·정치적 판단의 대상이지만 국민적 정서도 충분히 고려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의 민심은 노 대통령이 범한 죄에 대해 벌이 과하다는 것일 뿐,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고 수용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닌 것이다.

노대통령이나 여당이 탄핵 직후 여론으로부터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양 착각한다면 그것은 국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헌재(憲裁) 판단과 상관없이 또한 총선 결과와도 무관하게 이번 탄핵 사태의 정치적 의미는 그 자체로서 평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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