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매일 33명씩 집 나가는 아내들

채팅으로 눈맞고 카드빚에 몸팔고

  • 글: 장옥경 자유기고가 writerjan@hanmail.net

    입력2004-03-29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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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출 아내’ 한 달 1000명 시대.
    • 카드빚과 외도로 인해 집을 나가는 아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가출 아내는 외도 상대와 살림을 차리거나, 노래방 도우미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하고 찜질방을 전전하기도 한다. ‘가출 아내’는 이혼의 전주곡인가, 여성의 독립선언인가.
    매일 33명씩 집 나가는 아내들
    “가 출할 당시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아내와 싸운 적도 없고요. 그런데 느닷없이 ‘애들 잘 키워주세요. 돈 앞에 무릎을 꿇게 되네요’라고 쓴 쪽지만 남기고 아내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처가며 아내 친구네 집이며 미친놈처럼 찾아다녔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이 나라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결혼생활 15년 동안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는 폐인이 다됐습니다.”

    “결혼 15년차입니다. 아내가 넉 달 전에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난 사실을 한 달 전에야 알았습니다. 아내를 추궁한 끝에 2번 잠자리를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나서도 자초지종 얘기를 들었습니다. 잘못했다며 용서해달라고 하더군요. 그후 아내가 집을 나갔습니다. 전화로 설득해 보았지만 요즘은 연락도 안 되고 처가에서도 무조건 모른다고만 합니다. 제가 폭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생활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봐서라도 용서하고 싶지만 도무지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최근 4개월 동안 아내는 집을 다섯 번이나 나갔습니다. 아이를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는데 아내는 올해 2월 또 집을 나갔습니다. 이제 더이상 참기 힘들어 이렇게 도움을 청해 봅니다.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가능한지요. 만약 이혼이 불가능하면 나름대로 혼자 헤쳐 나가겠습니다.”

    인터넷 상담 창구에 올라있는 ‘가출 아내’ 관련 사연이다. 야후, 엠파스, 네이버 등 검색 엔진에 주제어를 넣으면 집 나간 아내, 형수, 엄마를 찾아 애태우는 사연이 수도 없이 열린다. 우리 사회 아내들의 가출 현주소를 파악하기란 이렇게 어렵지 않다.

    청소년 가출과 맞먹는 주부 가출



    ‘가출’은 그동안 사춘기 청소년들의 전유물로만 알려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부 가출이 청소년 가출에 육박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주부 가출자는 모두 1만2142명. 매달 1000여명, 매일 33명의 주부가 집을 나가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가출자(4만5634명) 4명 중 1명(25.6%)꼴이며, 9~19세 이하 미성년 가출자(1만4865명)와 맞먹는 수치다. 신고된 주부 가출자의 건수가 이 정도라면 신고되지 않은 가출자를 합쳤을 때 지난 한 해만 10만명이 넘는 주부가 가출을 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추세는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남성문제 상담전화인 ‘아버지의 전화’ ‘남성의전화’ 등에는 아내의 가출 때문에 고민하는 남성의 상담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여 통씩 걸려온다. ‘남성의 전화’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걸려온 상담전화 2819건 가운데 30%에 달하는 857건이 아내의 가출로 인한 상담이었고, 이 중 아내의 외도와 이혼 요구에 대해 상담을 원한 경우가 575건으로 67%, 아내의 카드빚 문제와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 등으로 집을 나간 경우가 282건으로 33%를 차지했다.

    ‘사랑의전화’ 사이버상담센터 서상희 연구원은 “과거에는 주부 가출의 주원인이 남편의 폭력이나 외도, 고부갈등 등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경제적인 문제가 가출의 가장 큰 원인이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참지 못하거나 자신의 빚 때문에 도망가는 30대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실직과 부도 등으로 남편이 경제력을 잃자 아내들이 생활전선에 나서면서 부부의 경제권이 바뀌고 갈등이 시작된다. 돈 버는 아내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순한 남편이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또한 주부들은 창업에 실패했거나 빚을 졌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대신, 채권자들에게 시달리고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끼기가 싫어 혼자 훌쩍 떠나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남성의전화’ 이옥 소장은 “최근 카드빚을 비롯한 아내의 부채, 외도와 관련한 가출로 고통을 겪고 있는 30~40대 남성들의 상담 전화가 폭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이옥 소장은 아내의 부채로 인한 가출 사례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석한다. 첫 번째는 가장으로서 남편의 위치는 날로 불안해지는데 물가는 오르고 사교육비 등 지출할 곳이 늘어나면서 아내도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려고 경제활동에 나섰다가 오히려 빚만 지고 이를 해결하지 못해 집까지 나가게 되는 경우. 두 번째는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해 남자를 잘못 만나거나 낭비벽으로 인해 카드빚을 지고 가출하는 경우다.

    외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남자의 경우에는 관대하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여전히 비판적이어서 일단 시댁이나 친정 식구들이 알게 되면 남편이 용서를 한다 해도 살아가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아내의 외도를 남편이 알게 된 경우 남편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런 대로 잘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내 쪽에서 먼저 이혼을 요구한다고 한다. 남편들 역시 아이들 때문에 가정파탄을 원치 않아 외도한 아내를 받아들이고 살기는 하지만, 잠자리에서 아내의 불륜장면이 떠올라 정상적 부부관계로 회복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한다.

    “욕심 때문이었어요. 또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고요.”

    인터넷을 통해 어렵게 추적해서 만난 가출 주부 이정옥(43·가명)씨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한숨부터 크게 내쉬었다. 그녀는 현재 집을 나와 이혼남인 대학동창과 동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투자 격언에 ‘돈이 생기면 땅에다 묻어두고 그 다음엔 사람에 투자하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을 따르다 이 지경이 됐지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이씨는 재작년부터 꼬이기 시작한 인생 궤적을 털어놓았다.

    “남편이 대기업 부장으로 재직중이어서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었어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제 몫의 유산도 좀 있었고요. 그 돈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물색하던 중 부동산 컨설팅을 하는 연하의 남자를 소개받게 됐어요. 은행에 돈을 넣어봤자 크게 불어나지도 않아 좋은 정보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더니, 괜찮은 개발 정보가 있다며 자주 연락을 해왔어요. 그래서는 현장답사를 위해 함께 땅을 보러 다녔죠. 경기도 양평이며, 전라남도 무안, 강원도 평창 등을 두루 돌아봤죠.”

    처음엔 ‘투자’라는 목적의식이 분명했는데 승용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누님, 동생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전국의 맛집을 돌아다니면서 미각여행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연인 같은 기분이 들게 되었고 함께 모텔까지 드나드는 사이가 되었다.

    “무뚝뚝한 남편과 달리 동생은 살가웠어요. 게다가 집 밖의 남자를 믿게 되니까 간이 커지더군요. 남편과 상의도 않고 제멋대로 땅을 사고 동생에게 돈도 좀 꿔줬어요. 거기까진 좋았죠. 그런데 투자한 땅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반토막이 났어요. 유산은 거의 날아갔고 남편 돈까지 몇천만원 물렸어요. 그제서야 ‘아차’ 싶어 빌려준 돈을 회수하려고 했더니 그 남자도 손해를 본 데다 누가 덥석 땅을 사려고 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어요. 잠도 못자고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고 그만 남편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지요.”

    승용차 앞자리에서 도란도란

    당연히 이씨의 남편은 노발대발했고 부부는 크게 다투었다. 부부싸움을 거듭하다 손해난 돈이나 남자에 대해선 일절 없었던 것으로 하고 더 이상 밖으로 나다니지 않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남편이 절 아예 사람 취급도 안 했어요. 옆에 있어도 눈길 한번, 말 한마디 붙이지 않았어요. 애들 때문에 겨우 한두 마디 할 정도였죠. 자동차며 카드, 현찰을 모두 압수당하고, 남편이 일수 찍듯 하루에 딱 만원을 현관에 놓고 나가면 그것으로 아이들 간식 챙겨주고 하루를 버티는 거예요.”

    지은 죄가 있어 항변은 못하지만,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숨막힐 듯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던 그 무렵 아내와 이혼하고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남자 대학동창을 만나게 되었다.

    “30대에는 애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 동창들 만날 여유가 없었는데 마흔이 넘으니까 어떻게들 사는지 서로 연락을 하게 되더라고요. 꽤 가깝게 지내던 남자친구였는데 출장길에 잠깐 ‘실수’를 한 바람에 부인과 이혼을 했다더군요. 동병상련의 심정이랄까, ‘어디든 마음 붙일 곳이 있었으면’ 하던 참에 훌쩍 짐을 싸들고 남자친구의 오피스텔로 들어갔어요. 친구도 혼자 지내기 적적하던 터라 마다하지 않았고요.”

    그녀는 ‘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데 남편은 애들이 결혼할 때까지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이혼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노는 물’이 달라지다 보니

    “남들은 뭐가 불만이었냐고 그러더라고요. 착하고 성실하고 한눈 팔지 않고 월급 제때 갖다 주고. 하지만 남들이 뭐라고 남편을 칭찬하든 제게는 아니었어요.”

    남편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인터넷 채팅에 빠져들었다가 가정이 깨졌다는 가출 주부 민수형(34·가명)씨. 필자와의 만남을 끝내 거절하는 바람에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녀가 털어 놓은 이야기는 이렇다.

    “채팅을 시작한 건 순전히 시간 때우기 위해서였어요.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나면 심심한 마음에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죠. 그러다가 차츰 상대방과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됐어요. 주로 남편에 대한 불만이었죠. 남편과는 양가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는데 살면서 보니 ‘모르쇠’도 그만한 ‘모르쇠’가 없었어요. 둔한 건지 맹한 건지 ‘그 부분’에 대해선 떠 먹여줘도 모르는 타입이라고 할까요?”

    그녀는 밤마다 아무리 자극을 줘도 눈만 껌벅이는 남편이 재미없어 남편이 늦게 귀가하는 날이나, 남편이 일찍 잠들고 난 후 채팅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갈수록 농도 짙은 대화가 오가다 보니 그녀의 오감을 두드리며 ‘필’이 꽂히는 남자는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

    매일 33명씩 집 나가는 아내들

    남편에 대한 불만. 아이들에 대한 소외감 등으로 인터넷 채팅에 빠져드는 주부들이 늘어나면서 인터넷이 불륜의 온상이 되고 있다.

    “물론 문제가 있는 남자였어요. 남자 중에는 여자를 망치는 나쁜 남자가 있는데,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어요. 굳이 캐려고 하지 않아도 가까이 하면 다친다는 ‘위험신호’가 느껴지는 남자였죠. 하지만 그는 내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원하는 부분만 취하고 다른 부분은 눈을 감았어요.”

    한번 가정주부로서 갖춰야 할 도덕률이 금가자 그녀는 좀더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사는 게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들한테도 ‘공부해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다그치지 않았죠. 전보다 후해지고 너그러워졌어요.”

    바람난 여자는 낮동안의 짧은 만남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남편이 출장을 떠난 친구와 하룻밤 자고 오겠다’는 거짓말로 하루를 외박하고 ‘여고 동창끼리 여행 간다’는 거짓말로 이틀을 외박하다가 아예 남편의 급여 통장까지 들고 나갔다.

    “남편 돈을 좀 썼어요. 통장이 바닥나자 카드도 긁고. ‘그게 어떤 돈인 줄 아냐’며 시어머니나 시누이가 ‘죽일 년, 살릴 년’ 하고 욕을 했지만 떼먹을 생각은 없어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남편 돈은 갚을 겁니다.”

    가출 1년째라는 그녀는 지금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벌이는 괜찮다고만 했다. 채팅으로 만난 남자는 장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애초부터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헤어진 뒤에도 상처는 별로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면 돌아가지 왜 안 돌아갔느냐고 묻자, 그녀는 “노는 물이 달라져 다시는 그 물에서 살 수 없다”며 “지금처럼 사는 게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로워 좋다”며 통화를 끝냈다.

    울산지방경찰청 박해순 청소년여성계장은 ‘현장에서 본 주부 일탈의 원인과 실태’라는 논문에서 “가출주부의 대다수는 가출 후 생활이 어려워지면 쉽게 돈을 벌수 있는 노래연습장 등 유해업소에서 남자들의 술시중과 함께 음주 가무 등 흥을 돋우는 역할(일명 삐끼걸)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에는 생활수단으로 유해업소에서 일하지만 점차 그 속으로 빠져들게 되어 다시는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이미영 울산지부 회장은 “남편의 실직, 남편과의 정서적 교감에 문제가 있어 일탈하는 경우와 성적 불만족, 남편의 외도로 인한 분노 등이 ‘주부 일탈’의 주 원인이며 인터넷 채팅을 통한 번개문화, 노래방, 전화방, 나이트클럽 등이 그 통로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아래의 상담사례들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K씨는 전화방에 전화를 해서 남자를 알게 되었다. 결혼한 지 8개월째인데 남편의 외도에 화가 나서 전화방에 전화를 해본 것이었다. 만난 지 2개월 만에 육체관계를 맺었는데 지금도 일주일에 2번 정도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힘들 때 따뜻하게 위로해준 사람이라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다. 한편으론 내 행동이 후회되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괴로워 상담 창구를 두드리게 되었다.”

    “IMF가 터지고 다니던 직장이 부도나는 바람에 직장을 잃었다. 그 후 슈퍼마켓에서 일을 했는데 하루 일당이 너무나 작았다. 친정 형제들의 도움으로 생활을 꾸려오다가 동네 친구의 소개로 노래방에 나가게 되었다. 노래방에서는 시간당 2만원을 버는데 벌이가 괜찮아 그럭저럭 생활을 꾸릴 수 있다. 간혹 노래방에서 ‘2차’를 나가기도 한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어서 앞으로 유흥 서비스업이 아닌 곳에는 취업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내가 얼마 전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눈이 맞았는지 언제부턴가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가 며칠 전 그 남자와 살겠다며 가출해버렸다. 아이가 이제 겨우 세 살밖에 안 되었는데 너무 무책임한 게 아닌가. 그러나 아이를 위해서라도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돌아오라고 전화하였더니 ‘다 필요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눈맞은 남자의 직업이 나보다 더 낫거나 경제적 형편이 더 좋은 것도 아닌데…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찾아가서 데려오려고 했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 아내의 마음을 되돌릴 방법이 없겠는가?”

    일반적으로 남자의 일탈은 가출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주부의 일탈은 가출로 이어지고, 이혼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아 더욱 문제가 된다. 남성의 전화 이옥 소장은 “사회가 달라졌다 해도 아직까지 ‘남자의 바람은 무죄’라는 통념이 남아 있어 외도를 한 남자가 집으로 돌아오기는 쉽지만, 여자의 경우는 남편이 받아들인다고 해도 가정 해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일탈을 눈감아준 남편을 고마워하기보다 이를 계기로 남편에게 “내 행복을 찾겠다”고 선언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가출한 주부들이 가는 곳은 대개 네 곳으로 나뉘어진다. 외도의 대상이 있어서 가출한 주부는 외도 상대와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을 얻어 동거를 한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친정이나 친구, 친척 등 가까운 사람의 집을 전전한다. 세 번째는 아예 연고없는 곳으로 가서 여관이나 찜질방 등에 터를 잡고 기거를 하며 살길을 찾는 경우. 마지막으로 자립할 능력이나 자신감이 없는 가출 여성들은 대부분 보호시설인 ‘쉼터’를 찾는다.

    이 경우 주부 가출의 원인이 본인의 외도나 카드빚 등 부채로 인한 것이라고 해도 그 밑바탕에는 남편의 무능이나 폭력, 시댁 식구를 둘러싼 갈등 등이 깔려 있을 수 있다. 또 외도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치밀어 오른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는 예도 있어 구타 피해여성의 보호시설인 쉼터로 가기도 한다.

    사랑의전화복지재단 유자은 사회복지사는 “집을 나오긴 했는데 나이도 있고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몸을 맡길 수 있는 곳을 찾아달라고 상담을 하는 경우에는 쉼터로 연결해준다”고 한다. 어떤 경우 “가출하면서 철지난 옷가지와 몇몇 소지품을 챙겨 나왔는데 둘 곳이 없으니 잠시 짐을 맡아달라고 부탁해 짐을 보관해두었다 부쳐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중에서 가출한 주부들이 가장 부담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찜찔방이다. 목욕 문화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생겨난 찜질방은 5000~1만원을 내고 입장해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다. 목욕과 찜질을 하고 수면실에서 잠도 자고 휴게실에서 밥도 사 먹고 심심하면 찜질방내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다.

    여관이나 모텔은 찜질방에 비해 숙박료도 비싸고 들어갈 때 왠지 남의 이목이 꺼려지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여자 혼자 투숙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찜질방은 이런 오해를 받지 않고 드나들 수 있어 가출 아내들이 접근하기 쉬운 장소이다. 게다가 한달 이용권을 끊으면 20~30% 할인 혜택까지 받을 수 있어 경제적인 고통을 겪는 가출 여성들이 머무를 만한 장소로는 최고이다.

    시댁 갈등도 가출 원인

    “평일의 경우 저녁 8~9시경에 손님들이 몰려왔다가 12시 반 전후로 절반 정도의 손님이 빠져나가고 아무리 늦어도 아침 7~8시면 대부분이 찜질방 문을 나섭니다. 식구들의 아침식사를 챙기거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끝까지 집에 가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라면 전날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다거나 가출 등의 사연이 있는 여자라고 보면 대개 맞습니다.”

    송파구의 한 여성전용 24시간 찜질방에서 카운터를 보는 한 중년 여성의 귀띔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출 후 찜질방에서 지내는 한 여성은 “나는 낮에는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밤에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을 하러 나가지만, 지난번에 여기서 만난 다른 가출 여성은 낮에는 가게 점원으로 나가고 퇴근 후엔 찜질방에 와서 잠을 자더라”고 했다.

    “찜질방에 계속 있다가도 어느 날 얼굴이 안 보이면 집으로 들어갔거나, 거처가 알려져 다른 곳으로 옮겼겠거니 생각하면 틀림없어요. 가출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무슨 이유로 가출을 했는지 서로 터놓고 얘기하진 않아요. 본인이 털어놓으면 모를까, 굳이 물어보지도 않죠.

    여자가 집을 나왔을 땐 대충 짐작이 갈 만한 사연이 있고 외모를 보면 어떤 부류인지 심증이 가잖아요. 얼굴 반반하고 몸매 받쳐주고 모양 좀 내는 축이라면 ‘끼’부리다 탈났구나 싶고, 수더분하고 겁먹은 표정이라면 수완이 없어 돈 까먹고 도망중이거나, 남편에게 시달리다 나왔거나 둘 중 하나죠.”

    집 나온다고 해결되나

    “이 생활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이들 생각하면 가슴 한복판이 쓰려요. 오죽하면 집을 나왔겠어요. 남편은 걸핏하면 돈 몇 푼 벌어온다고 유세냐고 투덜거리는데 빚 얻어 시작한 장사는 세상이 불경기여서 안 되고… 가게 권리금은커녕 보증금조차 까먹었죠. 정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없어져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집 나와 사는 여자 속을 누가 속속들이 알아주겠어요?”라고 반문한다. 집을 나오면 모든 게 해결되고 편안한 삶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집을 나오지 못해 고민하는 가출 예비 주부들이 한둘이 아니다. 여성포털 사이트인 ‘젝시인러브’가 얼마 전 주부들을 대상으로 ‘가출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7%가 ‘있다’고 대답했으며 3%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사랑의전화 사이버상담센터에 올라 있는 다음 주부의 사연엔 가출하고 싶어하는 아내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저는 32세의 주부입니다.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겉에는 아무 문제없는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마음이 답답합니다. 세상에 저 혼자인 것 같고, 저에게 지워진 육아, 가사노동의 짐이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가장 힘든 것은 저에 대한 남편의 태도입니다. 남편은 저를 보면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당신이 미쳤다고 했으니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달라’고 응수합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과격한 성격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드러운 편이죠. 그런데 아내인 저에 대해 아무런 배려도, 진정한 관심도 없습니다. 이혼을 결심해봤지만, 남편은 오히려 제게 엄청난 액수의 위자료를 요구합니다.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얘기죠. 또 설령 합의이혼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시댁식구들에게 받을 질책과 멸시를 감당할 자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실종’입니다. 말하자면 가출인데, 그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실종으로 보여지길 바라면서 계획하고 있습니다. 남편 모르게 갖고 있던 얼마간의 돈을 미리 찾아다놓고, 어느 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에 아무도 모르게 영영 저의 길을 떠나고 싶습니다.

    이혼이나 엄마의 자살은 남겨질 아이들에게 평생 짐을 지우는 것이라 생각되어 이런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진정한 저의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친할머니가 키워줄 것입니다. 전에 이혼을 생각할 때는 아이들 때문에 무척 걱정스러웠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보고 싶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독해진 저 자신이 스스로 놀랍지만 솔직한 심정입니다.

    남편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먼저 바꾸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어보고 그렇게 노력도 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사랑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냥 가장으로서 관리하려고만 하는 거죠.”

    남편의 인내도 필요

    정신과 전문의 김정일씨는 주부 가출의 문제를 인간에 대한 기본적 가치나 룰이 깨진 데서 찾는다. 오랫동안 힘과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다보니 서로 사랑하고 남을 위하고 존중하며 생명을 가치있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남이야 어찌됐건 나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논리가 팽배해있다는 것.

    “과거에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무조건 출가외인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참고 살아왔죠.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한이 쌓인 여성들이 자녀들에게 ‘나같이 살지 마라’ ‘참고 살지 마라’는 식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곱게 자라면서 참고 견디고 극복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자식들이 결혼을 해서 문제가 생기면 피하고 도망가고 판을 깨는 쪽으로 해결을 하게 됩니다.”

    ‘부부클리닉 후’의 김병후 원장은 “우리 사회는 남편이나 아내 양쪽이 모두 다 골이 나 있는 상황이다. 대화로 풀어가기엔 서로간의 격차가 너무 심해서 의견 조정이 쉽지 않다. 서로의 골이 풀어질 때까지 이혼이 늘어날 것이고 이혼의 전단계이자 갈등구조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가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유야 어찌됐건 주부의 가출은 가정파괴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부의 가출은 당분간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는 않을 전망이다.

    남편 혼자 벌어서는 생계 유지가 힘든 시대에 주부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밖에서 외간 남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 중 일부가 외도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또 경제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경영 미숙으로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도 생겨 본의 아니게 부채를 지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집을 나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생각해 볼 문제. 아무튼 시대는 변하고 있고 점점 남자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과거의 아내들이 외도한 남편이나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묵묵히 받아주고 감싸주었듯이 이제는 남편들이 그렇게 인내하고 받아주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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