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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 ⑤

YS, 노태우에 “대통령 하야운동 하겠다” 위협해 후계자 낙점

  • 대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tgpark@snu.ac.kr

YS, 노태우에 “대통령 하야운동 하겠다” 위협해 후계자 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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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제가 밖에 나가서 얘기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딱 한번 어겼습니다. 어느 날 정일형 박사가 위독하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대중이 좀 살려줘, 살려줘” 하면서 내 손을 붙잡는데 손등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요.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그래서 이 양반한테는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 싶어서 “대중이 안 죽인답니다. 내가 약속받았습니다” 했어요. 그랬더니 정 박사가 꺼억꺼억 소리를 지릅디다. 그러고는 방으로 뛰어들어온 이태영 박사에게 “대중이가 산대, 산대” 하며 기뻐했어요. 정일형 박사 부부가 김대중씨를 그토록 아꼈습니다. 물론 전 대통령이 제 말을 듣고 김대중씨를 살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미국이 애를 참 많이 썼어요.

말 많아진 전두환

박 : 미국이 상당한 압력을 넣었고, 목사님께서도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하신 것 같군요.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사건들이 있을 때면 미국이 세계적인 여론을 감안해서 정권에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죠. 우리의 경우 김대중 납치사건 때도 그랬고, 조봉암 사건 때도 사형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자료에서 다 밝혀졌습니다. 비록 후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요.

강 : 제 말을 들었든 아니든 간에 결국 약속대로 김대중씨를 안 죽이고 내보냈다는 점에서 저는 전두환씨가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라고 봤습니다. 그 사람이 집권하고 나서 2년 반 정도는 주변의 말을 많이 들었어요. 처음엔 혼자서 뭘 하자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 친구’를 만들었죠. 하나는 원로들로 구성된 국정자문회의-처음 만들어진 것은 최규하 대통령 시절이지만-, 그 다음은 유능한 스태프, 그리고 마지막은 옛 장군들 그룹인데, 장군들이 한 달에 한번씩 모여 술 마시면서 마음대로 얘기하게 했습니다.

전두환씨가 처음에는 말을 별로 하지 않고 남의 말을 많이 들으면서 메모를 많이 했어요. 그러더니 차츰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라고. 언젠가는 제가 “여론이 이러이러하니 저렇게 하셔야 될 겁니다” 하니까 “목사님, 저는 일곱 개 채널에서 정보를 받습니다” 하고는 말을 자릅디다. 그렇게 나오는 사람한테 해줄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무렵부터 발길을 끊었는데, 그후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이 터지면서 사람이 더 변했어요.



박 : 권력이 오래 가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게 되나 봅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박 대통령도 1960년대 후반부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스스로 주도하는 스타일로 변했다고 하더군요. 공과야 있겠으나 아무튼 전두환씨가 역사와 국민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죠.

강 : 물론입니다. 광주의 비극은 전두환이 책임져야 할 일이죠. 그러나 그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제가 지난호에서도 얘기했지만, 1979년 12·12 직후 제가 김영삼씨와 김대중씨를 찾아가 “일단 김종필과 손잡고 계엄령부터 철폐한 뒤 선거 채비에 들어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 사람들이 제 말을 들었으면 광주가 그렇게 되진 않았을 거예요. 12·12 사태가 뭡니까. 군인들이 정권 잡겠다고 일으킨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 의미를 간과했고 그후 데모가 대대적으로 일어나 그들에게 구실을 줬어요. 그때 일어난 데모는 대개 김대중 혹은 김영삼 지지 데모였는데, 그 중에는 군부에서 만들어낸 데모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점을 따져보면 양김씨를 비롯한 정치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죠.

YS, 노태우 협박해 후계자 낙점

박 : 같은 군인 출신이자 친구 사이지만 전두환씨와 노태우씨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입니다. 가령 5공화국 청문회에서 장세동씨 등이 끝까지 전씨를 두둔하고 나서 전두환 그룹의 의리가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죠. 노태우씨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아서 술자리 같은 데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고요.

강 : 노태우씨도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죠. 그 사람은 전두환처럼 화끈하거나 불끈거리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내가 4시간 반 동안 얘기를 나눈 적도 있는데, 표정도 별로 없어요. 그저 웃기만 하죠. 성품이 무척 부드럽고 순하죠. 하지만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군인 기질이나 강한 장악력, 결단력, 추진력이 없었어요.

박 : 노태우씨와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됐습니까.

강 : 저와 가까웠던 김현욱 전 의원이 노씨를 소개해줬어요. 그런데 김현욱씨가 “노 대통령을 만나면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중학생을 만난다고 생각하라”고 조언을 합디다. 중학생쯤으로 여기고 얘기를 아주 쉽게, 또박또박 하되 여러 가지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딱 한 가지만 얘기하면 가장 좋고, 많아도 두세 가지를 넘지 말라고 했어요. 전두환씨는 반드시 직접 메모를 하면서 얘기를 듣습니다. 반면 노태우씨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요. 사람은 좋아 보이는데, 좀 박력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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