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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④

지리산 은사(隱士) 시인 이원규

바람이 나인가, 내가 바람인가

  •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지리산 은사(隱士) 시인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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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저도 하기 싫으면 얻어 먹는 방법도 있다. 등산객들이 많이 올라오는 고갯마루에 진을 치면 된다. 등산객은 대개 올라올 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음식을 충분하게 가져온다. 하지만 하산할 때 이 음식은 짐이 된다. 그래서 고갯마루에서 빈둥빈둥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등산객들은 사정을 짐작하고 음식을 주고 간다. 이것만 먹어도 충분히 산다.

탁발 산꾼들이 가장 배고픈 시기가 3∼4월이다. 산불 때문에 입산이 통제되는 곳이 있는 데다가 등산객들이 가장 적은 때이기 때문. 이 ‘보릿고개’가 닥치면 산꾼들은 산을 내려와 화개에서 작설차를 덖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두 달 동안 차 덖는 일을 도와주면 200만원은 벌 수 있다.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지리산에서는 생존의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지리산에 기대서 먹고 산다. 그 다음은 도시에 살던 사람들에게 기대서 먹고 산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매실주라도 만들어주면 이들은 그냥 가지 않는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가 하면 돈 봉투를 놓고 가기도 한다. 그 다음은 무엇을 만드는 단계다. 나무공예, 도자기, 작설차, 천연염색 등을 배우는 것이다. 대개 3년 정도 지나면 정착 단계에 들어간다는 게 이 시인의 분석이다.

현재 지리산에는 알 만한 문인들이나 예술가들이 여럿 내려와 있다. 박남준 시인은 2003년 가을부터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에서 살고 있다. 전주 모악산에서 10년 넘게 살다가 이 시인의 소개로 거주지를 옮겼는데, 만족해한다고 한다. 또 악양면에는 ‘오카리나’ 연주로 유명한 한치영·태주 부자가 살고 있다. 평사리에는 사진작가 이창수가, 악양면에는 목공예(청호산방)를 하는 김용회씨가 있다. 구례 문척면 마고실에는 소설 ‘국경’의 작가인 김남일씨가 칩거하고 있다.

동편제 판소리로 유명한 김소연씨는 악양면의 폐교된 초등학교 자리에 터를 잡았다. 소리꾼들 사이에는 판소리의 명인 송만갑이 남원, 운봉, 구례를 옮겨다니며 살다가 악양에서 득음(得音)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김소연씨는 이를 듣고 악양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지리산은 남쪽 지역인 구례, 하동, 악양, 화개가 살기 좋다. 따뜻하고 섬진강이 있어 풍광이 좋고 은어도 많다. 그런데 악양은 들판이 넓어서 예로부터 부자가 많이 살았으나 화개는 궁벽진 산골짜기라서 가난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관광지가 된 데다가 80∼90년대 작설차가 붐을 타면서 차 생산지였던 화개는 부자동네로 변했다. 과거에는 화개 사람들이 악양에 가서 품을 팔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악양 사람들이 화개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IMF 사태가 터지면서 화개의 작설차 농장들이 상당수 타격을 받았다. 시설 과잉투자로 인해서 서리를 맞았던 셈. 화개가 주춤하면서 다시 악양이 좋아졌다고 한다.

7∼8년 전에는 지리산의 기운이 악양 쪽으로 흐른다고 해서 승려들이 악양에서 많이 살았다. 도 닦는 사람들은 산세의 기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산세의 기운을 받기 위해서 유목민처럼 흐름 따라 이동한다. 그래서 한때 악양에는 승려 100여명이 몰려들었다.

지리산 북쪽은 해발이 높고 경치도 좋지만 춥다. 남쪽에 비해서 기온이 5℃ 정도 낮다. 연중 기온이 강원도 오지마을과 비슷하다. 전답도 부족하고 기온이 낮아서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다. 반면 공부하는 수행자들이 살기에 알맞다고 한다.

요즘에는 귀농자들이 이쪽에 많이 들어와 산다. 특히 실상사 주변에 젊은 귀농자들이 모여 있다. 대략 30∼40명쯤 된다. 도법스님이 세운 실상사 귀농학교가 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다른 지역은 젊은 사람을 구경하기가 힘들지만 실상사 주변의 산내면(山內面)에는 젊은 사람들로 북적거려 활기가 있다. 귀농자들의 출신성분은 광고기획, 언론사, 출판사, 대기업 종사자 등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도시가 싫어졌다는 점이다.

1년 생활비 600만∼700만원

도시 사람들이 산에 와서 살지 못하는 이유는 보통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시골에 와서 뭐 해먹고 사느냐. 둘째, 아이들 교육문제는 어떻게 하느냐. 셋째, 답답하지 않느냐. 넷째, 모기와 같은 벌레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느냐.

그런데 첫째 문제는 도시와 시골의 ‘환율’이 다르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해결된다. 도시에서 월급을 200만원 받았다면 시골에서는 녹차 만드는 일만 보조해도 월 100만원은 받는다. 섬진강 올갱이를 잡아도 일당 10만원이다. 산나물 채취는 일당 5만∼6만원. 그 대신 소비는 도시의 30%면 충분하다. 의복비, 외식비, 관람비, 차량 운영비가 들지 않는다. 어지간한 반찬거리는 텃밭에서 자급자족한다. 간소하게 살면 한달 생활비는 50만∼60만원, 1년에 600만∼700만원이면 충분하다. 서울에서 3억짜리 아파트 한 채 팔아서 내려오면 10년 이상 놀고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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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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