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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클라크 前 백악관 테러담당조정관의 ‘모든 적에 맞서서’

“부시는 9·11 후 빈 라덴보다 후세인에 더 집착했다”

  • 요약·정리: 박성희재미언론인 nyaporia@yahoo.com

리처드 클라크 前 백악관 테러담당조정관의 ‘모든 적에 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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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진다고 느꼈지만, 나는 내친김에 뿌리를 뽑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알 카에다는 미국을 강타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또한 알 카에다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정권을 무너뜨리고 급진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신성국가를 세운 다음 이교도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 하고 있어요. 알 카에다는 그런 계획들을 이미 문서로 발표했어요. 마치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훨씬 전에 쓴 ‘나의 투쟁’에서 장래의 계획을 밝힌 것처럼 말입니다(오사마 빈 라덴이 발표한 문건들 가운데 ‘빈 라덴 서한: 전쟁 선언’(1996년)과 ‘유대인과 십자군에 저항하는 세계이슬람전선의 성전’(1998년)이 중요한 것으로 꼽힌다. 문건에 따르면 시오니즘(이스라엘)과 십자군(미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국가)의 연합세력이 회교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다면서 이들 이교도들에 맞서 투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역자).”

그러자 유대인인 월포위츠가 발끈했다. “유대인들을 대량학살한 히틀러와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테러리스트(오사마 빈 라덴)를 견주지 말아요!” 이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견주자는 게 아닙니다. 히틀러처럼 빈 라덴도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미리 말했다는 얘기지요. 우리가 그걸 무시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놀랍게도 그 순간 리처드 아미티지 부국무가 나를 지원사격하는 발언을 하며 끼여들었다. “리처드 말이 옳아요. 우린 알 카에다가 중대한 위협이고, 따라서 우선적으로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예전에 내가 콜린 파월 국무에게 브리핑했던 효과가 나타난 셈이었다.

수차례 테러 경고 외면



여러 해 동안 조지 테닛 CIA 국장은 테러위협에 관한 믿을 만한 첩보나 정보가 들어오면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CIA 전문가들과 함께 그런 보고서들을 검토했다. 가끔씩 그들은 “그 정보보고는 잘못됐어요. 확인해보니 사실이 아니더군요”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2001년 들어 테닛 국장은 내게 더 자주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입수하는 테러관련 정보도 전보다 더 정확해졌다. 알 카에다가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는 더욱 많이 들어왔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정보기관의 활동으로 알 카에다 세포조직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중동 바레인에 있는 미 해군기지를 공격해올 것이란 정보를 듣고, 내가 직접 지중해에 떠 있는 한 요트로 전화를 걸어 바레인 왕세자에게 협조를 요청한 적도 있다.

2001년 6월말 테닛 국장과 나는 “뭔가 심각한 테러사건이 벌어질 게 틀림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테닛 국장은 “순전히 내 육감이지만, 알 카에다 그들이 다가오고 있어요. 이번엔 아주 큰일이 터질 것 같은데”라고 걱정했다. 그 누구도 테닛 국장만큼 알 카에다 문제로 속을 끓인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그런 테닛조차도 CIA 요원들로 하여금 아프간의 알 카에다 심장부를 파고들도록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CIA의 한 정보분석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 카에다 테러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실제로 알 카에다는 미국의 심장부를 노리고 있었다.

앞서 월포위츠 부국방과의 입씨름이 상징하듯, 테러대책을 논의하는 부장관-차관급 연석회의는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그런 과정을 거쳐 보다 결정권이 강한 관련 장관급회의가 열린 것은 9·11 테러 딱 1주일 전인 2001년 9월4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테닛 CIA 국장과 나는 “알 카에다 위협이 매우 심각하고 머지않아 수백 명의 미국인들이 테러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무도 그런 판단이 잘못됐다고 토를 달지 않았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파키스탄 무샤라프 정권에 압력을 넣어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 알 카에다에 관한 한 파키스탄이 우리 편에 서도록 만들겠다”는 공격적인 전략을 밝힌 후 “그러려면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할텐데”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재정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회의 내내 딴전을 피우는 모습이었다. 그는 부하인 월포위츠 부국방과 마찬가지로 “테러대책에 관한 한 미국은 알 카에다보다는 이라크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9·11의 비극은 한 걸음씩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전쟁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 동원할 것”

2001년 9월11일 아침 나는 백악관에서 세 블록 떨어진 로널드 레이건 빌딩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중이었다. 나와 함께 백악관 대(對)테러 팀에서 일하는 여직원 리사 고든해저티가 전화를 걸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부딪혔어요. 지금껏 아는 소식은 그것뿐이고, 더 나쁜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나는 그 놀라운 뉴스를 듣는 즉시 “CSG 비상을 걸어! 5분 안에 백악관으로 들어갈게”라고 말했다(CSG란 Counter-terrorism Security Group의 줄임말로, 미 연방정부의 대테러 관련 기관장들이 비디오 화상(畵像)으로 현안을 조율하는 협의기구를 가리킨다-역자). 지난 1992년부터 나는 이 CSG 모임을 주관해왔었다. 차를 몰고 백악관 첫 번째 문에 들어섰을 때 리사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방금 전에 (세계무역센터) 두 번째 빌딩에도 비행기가 부딪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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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리: 박성희재미언론인 nyaporia@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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