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국 무협소설 명인열전 ⑤

치열한 비극적 서정의 화신 진산

삶의 결핍 속에서 감정의 진실 찾기

  • 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junaura@snu.ac.kr

치열한 비극적 서정의 화신 진산

2/5
치열한 비극적 서정의 화신 진산

서정적 문체와 서정적 비극성의 이야기로 새로운 무협세계를 선보인 진산.

진회하의 물빛에 대한 이 두 개의 묘사 사이에 주인공 소운비가 진회하를 떠나 무림에서 갖은 곡절을 겪은 뒤 다시 진회하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금릉, 즉 오늘날의 난징을 흐르는 진회하는 진산의 상상세계 속에서 풍부한 울림을 지닌 장소이다. ‘대사형’에서도 진회하는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의 진회하는 진산이 그린 것처럼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다).

다른 예를 더 들어보자.

그날 아침, 평원(平原)에 떠오른 해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너무 붉지도 않았고 너무 뜨겁지도 않았다. 너무 오래 머무르지도 않았고 너무 빨리 지지도 않았다.햇살의 광휘(光輝)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별들의 운행도 침착했고 바람도 습기도 지나치지 않았다.땅을 벗어난 모든 하늘의 일들이 그렇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오천(五千)의 생명이 제 근본인 흙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생겼다.

첫 장편 ‘홍엽만리’의 서두로서, 관군과 무림맹의 연합 세력이 홍교(紅敎)를 토벌하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다(여기서 홍교는 역사상의 백련교에 해당하는 종교이지만 동학의 모습이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특히 5000명이 부적을 붙인 채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전투 장면은 동학의 우금치 전투를 옮겨놓은 것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을 하늘의 항상적 운행과 대비시킴으로써 서정성을 극대화한 묘사는 이 작품의 서술 전체와 내밀한 연관을 맺는다. ‘정과 검’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또 어떤가.

…오감도 흐트러지고 마구 뒤섞였다. 소리가 보이고 사물이 들리고 냄새가 만져졌다.



진산의 서정적 묘사는 섬세한 감성과 절제되었으면서도 뉘앙스가 풍부한 언어, 그리고 야설록이 진산을 평하며 사용한 단어를 그대로 원용하자면 ‘수려한’ 문장 등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서정성의 내용이다. 진산의 서정성은 소녀적이고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서정성이다. 비극적 서정성을 핵심으로 한 선배 무협작가로는 1930년대에 활동한 중국 구파무협소설 작가 왕두루(王度廬)가 대표적이다(영화 ‘와호장룡’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가 바로 왕두루이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하건대 진산 쪽이 비극성의 열도(熱度)가 훨씬 높다).

진산의 비극성은 운명과 관계되는 것으로 카타르시스 효과를 수반하는 고전적 의미의 비극성으로 시작됐다. 첫 작품인 단편 ‘광검유정’에서 운명은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설정으로 나타난다. 신라를 배경으로 쓰여진 중편 ‘청산녹수’에서는 신라의 어린아이가 백제의 왕을 찔러 죽이리라는 무녀의 예언으로 운명이 암시된다. 첫 장편 ‘홍엽만리’에서는 술김에 누이동생을 범한 죄업이 주인공 뇌가도의 운명이고, 소홍은 그 운명적 죄업에서 태어났다(작가 자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설정은 번안가요 ‘제비’에서 착안한 것이다. 멕시코 민요인 ‘제비’는 가난한 멕시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누이동생을 겁탈하고 평생을 죄의식 속에서 살다 죽어간 한 갱에 대한 노래라고 한다).

뇌가도가 홍교에 가입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홍엽만리’는 뇌가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홍교라는 종교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홍교는 관부와 무림 양쪽의 공격을 받고 종교 내부에 갈등이 빚어져 멸망하게 된다.

홍교의 멸망은 유토피아란 현실에서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며 그것을 향한 추구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좌절을 통해 비극성은 더욱 고조되고 삶의 근본적 결핍은 독자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이는 비극적 유토피아주의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한편 뇌가도는 역시 비극적 운명을 가진 인물 검아(그녀는 홍교의 전 교주와 그의 여제자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그녀의 모친은 뇌가도의 칼에 죽었다)와 함께 소홍을 지키려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후일담이 붙어 있다. 십 년 뒤에 홍교의 후계자로 성장한 소홍이 서역에서 중원으로 돌아와 구대문파와 한 약속을 남몰래 실행하고, 뇌가도와 검아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신화적으로 보자면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거쳐 운명의 죄업을 씻었다는) 암시가 주어진 것이다. 이 후일담은 일종의 승리의 전망을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비극성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 전망은 어디까지나 비극성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개념 자체부터 극복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이미 운명이 아니다. 그렇다면 운명에는 항상 굴종의 길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진산의 비극성은 운명의 극복이나 운명에의 굴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서 근본적인 결핍이라는 삶의 조건을 발견하는 데서 나온다.

2/5
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junaura@snu.ac.kr
목록 닫기

치열한 비극적 서정의 화신 진산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