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종 전환이나 사업장 전환배치 등과 관련한 노조의 과도한 요구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직장폐쇄와 한국철수설로 이어지기까지 했던 한국네슬레 사태 역시 발단은 영업부 직원의 전환배치였다. 한국네슬레측이 외주업체와 판매대행 계약을 하고 기존 영업부 직원 44명을 신규부서로 전환배치하자 노조가 ‘구조조정시 노조와의 사전협의’조항을 들고 나오면서 장기 파업사태의 불을 붙인 것. 이에 대해 한국네슬레측은 경영권 간섭이라며 직장폐쇄로 맞서는 등 노조의 경영참가 부분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한국네슬레 사태에서 보듯 노조의 경영참가 수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이냐는 한국에서 신규사업에 나서는 외국기업들에게는 투자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인투자 옴부즈만사무소 김완순 소장은 “특히 한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외국기업 관계자들은 노조전임자 문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한국오웬스코닝 노사분규 당시에는 근로자 30~40명의 기업에서 노조전임자 3명을 두겠다고 해서 극심한 노사갈등을 빚기도 했었다는 것.
경영 실패의 책임은?
일본계 다이와증권 이창희 이사는 “자본주의의 룰을 벗어나는 수준의 노조 경영참가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노조의 참여로 인해 경영성과가 좋다면 모를까 잘못된 결과가 나올 경우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 결국 경영진의 책임 아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런 인식은 외국계 투자자들이 노조의 경영참가 요구에 대해 특히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를 잘 나타내준다.
노무현 정부 2기 출범을 바라보는 미국 월가의 시선은 어떨까. 굿모닝신한증권 뉴욕현지법인 세일즈 담당인 리처드 정은 “월가 투자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초기 ‘친노조적’이라는 비판을 들었던 만큼 이에 따른 학습효과로 인해 2기 정부에서도 지나치게 노조편향적 태도를 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낙관했다. 오히려 대통령의 업무 복귀가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리처드 정은 “5월 중순 한국 증시의 폭락장세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은 다시 한국 주식을 사들일 태세”라고 전했다.
종합주가지수 800선 붕괴 등 외국인들의 연이은 매도공세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주도하는 증시 주변에서 이를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과 연관짓는 시각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브릿지증권 김경신 전 상무이사는 “중국 쇼크와 미국 금리인상 우려가 겹쳐 외국인들이 매도공세에 나섰지만 경제정책 불신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최근 한국내 사업 규모를 늘리겠다고 선언한 리먼브러더스 윤용철 상무도 외국인들이 아직까지 원내 제1당으로 부상한 열린우리당이나 참여정부 2기의 경제정책에 대해 갖는 의구심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인들은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열린우리당이 분배 쪽에 무게를 둔 정책을 펴지 않겠느냐는 느낌을 갖고 있는 정도이다. 게다가 재벌개혁과 관련한 정책들은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환영할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당장 외국인들이 참여정부 2기 이후 경제정책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서울 증시에 참여하는 외국계 증권사들 일부에서는 최근 들어 삼성물산 금호산업 한화 등 그룹내 지주회사 주식을 외국인들이 사들여온 것을 놓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배구조 개선에 주목하고 있는 증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외국인들도 이제 무조건 업종주도주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자회사 수익에 의존하는 지주회사 주식 매수에 나서는 것을 보면 한국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노력이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예상밖 선전은 외국인 투자자들로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만큼 민노당 변수에 대해 외국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대다수 외국인 투자자들은 민노당의 원내 진입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도권 진입은 긍정 평가
일부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제도권에 진입하고 이수호 위원장이 이끄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온건하고 합리적인 대중노선을 표방함에 따라 불법파업이나 과격시위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윌리엄 오벌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소장 같은 사람은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 인사. 오벌린 소장은 세계경제연구원 초청 특별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국회내 민주노동당의 존재는 아주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민노당의 원내 진입은) 토론이 가능한 국회로 모든 문제를 가져오게 될 것이고 원내 진입으로 인해 주어지는 사회경제적 의무 역시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텐트 안으로(inside the tent)’ 들어오는 것은 늘 좋은 일이다. 민노당이 ‘시스템’의 일부로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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