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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⑥

30대 유명역술가 박청화

“정해진 것은 없다. 단지 정해진 것처럼 보일 뿐”

  •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30대 유명역술가 박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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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은 대부분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왠지 모르게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 먹고사는 데 정신 없다가 그 나이가 되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 싶어지기 때문일까. 그때부터 음양오행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음양오행은 이론을 공부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드시 어떤 고비를 넘어야 한다. 그 고비를 넘으려면 일정기간 입산(入山)이나 면벽(面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겪지 않으면 깊이가 없다.

이 과정에서 대개 비몽사몽간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결정적인 내용을 알려주기 마련이다. 한 고개를 넘긴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꿈에 교시를 받는다는 것, 이는 어떤 의미인가.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 즉 무의식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이를 ‘가피(加被)를 입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정신세계로부터 받는 도움을 뜻한다. 의술을 공부하는 사람은 의술과 관련 있는 정신세계로부터 가피를 받고,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은 풍수와 연결된 정신세계로부터 가피를 받는다.

사주도 마찬가지이다. 가피를 촉진시키기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주문(呪文)이다. 주문은 신들을 설득하는 소리이다. 반복해서 암송하면 반드시 감응이 있다. 문제는 가피를 입는 단계까지 도달하는 일이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노력에 달려 있다. 어떤 분야든 지극한 정성을 바치면 반드시 정신계로부터 감응이 있다. 박청화씨가 반야사에서 스님 옷을 입은 선인과 대화를 나눈 것은 이런 과정을 통과했음을 말한다.

-11가지 논법을 주고받았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해 줄 수 있는가.

“첫째, 오행은 없고 음양만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명리학이 간지학(干支學)이라는 점, 셋째는 있을 것이 있어야 진짜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재물이 그 사람이 태어난 해에 있느냐, 시(時)에 있느냐에 따라 비중과 의미가 다르다. 태어난 해에 있으면 조상으로부터 재물을 물려받는다는 의미가 강하고, 시에 있으면 자기가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쟁취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넷째, 명리 해석에서 무자(無字)는 해석의 가장 큰 틀이다. 여자의 팔자에 불(火)이 없으면 모든 것이 늦어진다. 남편도 늦고, 재물도 늦고, 자식도 늦다. 불이 없다는 것 하나가 이처럼 그 사람 인생에서 중요한 작용을 한다. 역술가는 이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야 한다. 다섯째, 팔자를 볼 때 2초 이상 걸리면 아마추어이다. 프로는 2초 이내에 그 사람 팔자의 강약을 파악한다. 말하자면 한 큐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서 잘 보는 것이 아니다.”



박도사·강태호·백포선생·무공선생

-특히 부산에 역술의 고수가 많이 포진해 있는 것 같다. 부산의 역술 고수들에 대해 설명해달라.

“부산에는 기문둔갑, 육임, 육효점, 상수점 등 각종 문파가 활동하고 있다. 자기 실력을 검증해보고 싶다면 일단 부산에 와서 제방의 고수들과 한판 승부를 겨뤄보라. 그러면 자기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박도사도 지리산에서 공부를 마치고 부산에 와서 고수들과 진검승부를 벌였다. 그리고 나서 부산 서대신동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당시 박도사와 이론 논쟁을 한 사람들이 김홍기(金弘基)와 허남원(許南源)이다. 이 두 사람은 부산 최고의 명리 이론가다. 반면에 박도사는 이론이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실전에선 전혀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주 모여 논쟁도 하고 승부도 벌이며 친해졌다. 부산의 명리 이론가인 이들이 박도사에게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속아도 책에 속는다’. 비록 명리서에 나온 이론이 맞지 않더라도 책을 버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이론에 나오지 않은 방법으로 사주를 맞히는 박도사의 노선을 추종할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명리학자로서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타계했지만 마산에 있던 강태호도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는 ‘천기도수’라는 자기만의 독자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부산 온천장 부근에서 영업했던 ‘동래 외팔이’도 유명했다. 그는 6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걸쳐 활동했다. 80년대 초에 숨진 박갑동은 풍수, 관상, 명리 3박자를 갖춘 인물이었다. ‘지리박사’라고까지 불렸다.

그런가 하면 관상의 대가는 70대 초반으로 생존해 있는 백포(白浦) 선생이다. 부산의 연산로터리에서 영업하면서 70년대를 주름잡았다. 관상을 보는 구체적인 방법과 실전 노하우는 물론 역대 관상의 대가를 많이 알고 있다. 관상을 배우기 위해 전국의 내로라하는 대가들을 직접 섭렵했기 때문이다. 나도 초기에 백포선생에게 지도받았다. 현재 50대 초반으로 부산에서 서울을 왕래하면서 활동하는 무공(無空)선생도 있다. 무공의 특징은 간판을 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골 고객들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한국 역술계의 메카, 부산

필자가 보기에도 부산은 한국 역술계의 메카다. 왜 부산이 역술계의 메카가 되었을까.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6·25 때 이북에 살던 사주의 고수들이 부산에 피난와서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대로 주저앉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이북 사람들은 지역차별을 받아서 벼슬길에 오르기 어려웠다. 실력이 있어도 등용이 안 되니 자연 실용적인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주, 풍수, 한의학이 그런 분야였다.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도 이북출신이고, 한의사를 하면서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명저를 남긴 한동석도 이북출신이다. ‘우주변화의 원리’는 한글로 된 책이면서도 한문 원전이 가진 깊이를 지니고 있다. 한의학도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로 통한다. 인문학을 깊게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회자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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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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