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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소설 명인열전 ⑥

前衛에 선 신세대 무협작가들

서술 실험으로 영웅주의 뛰어넘다

  • 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 junaura@snu.ac.kr

前衛에 선 신세대 무협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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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삼우인기담’은 세 권으로 끝나지 않고, 그 후의 이야기를 한 권 분량으로 덧붙이고 있다. 이는 3인칭 서술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특기할 점은 시간 순서에 따르지 않고 완전히 거꾸로 서술한다는 것이다.

스토리를 재구성해보자. 도망가려는 세 사람 앞에 백룡회주 딸의 조부가 나타나고 그에 의해 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흑사회와 백룡회는 5년동안 협력하기로 약속하고, 주인공 세 사람은 백룡회로 가서 1부2처(一夫二妻)의 가족을 이룬다. 이곳에서 남자에겐 흑사회와 백룡회 사이의 연락책 역할이 주어진다. 남자는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은연중에 능력도 개발한다(무공이 제법 높아진다). 남자는 두 여자와 두 여자가 낳은 자식들과 함께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꾸민다.

이렇게 보자면 일종의 ‘바보 온달’ 이야기에 가까워진 셈인데, 스토리 끝에는 결정적 파탄이 마련되어 있다. 협력을 통해 추진하던 사업이 완수되자 두 집단은 다시 대립관계로 돌아가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걸림돌, 즉 1부2처의 가족을 제거하자는 합의와 함께 말이다. 이것이 ‘바보 온달’ 이야기의 뒤집기라면 시간 순서에 정반대가 되는 서술은 바로 그 뒤집기의 형태적 표현이라고 하겠다.

처음은 현재이다. 백룡회 쪽 장인 회갑연에 참석한 남자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 그려진다. 그 다음은 그로부터 2개월 전인데 남자가 처가에서 독립하여 표국을 운영하고 있다. 그 다음은 2년 전이다. 모두 출전하고 텅 빈 처가에서 남자가 외적의 침입을 무사하게 물리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다음은 4년 전이다. 두 집단 사이에서 연락책을 맡아 열심히 일하던 남자가 흑사회의 훈련교관으로 임무를 바꾼다. 그 다음은 5년 전이다. 백룡회에서 남자와 두 여자 사이의 결혼식이 열린다. 그 다음은 탈출 장면이다. 백룡회주 딸의 외조부의 중재로 세 사람이 위기를 벗어나는 장면이 그려진다. 마지막은 한 페이지짜리 에필로그인데, 시간적으로 처음의 현재보다 더 최근이며 다음과 같이 여섯 줄의 대화로 되어 있다.

“평화는 지루하군.”“반년 남았소.”“앞당기고 싶소.”“지금부터?”“걸림돌이 사라질 때.”“좋소! ”



세 개의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처음 세 권의 서술방식과 비교할 때 제4권의 서술은 아무래도 필연성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제4권의 서술방식이 개별자의 실존에 대한 비관주의적 전망을 드러내기 위한 의욕의 소산임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문학 일반의 전위에 서는 무협소설

이상 살펴본 세 편의 작품이 보여주는 실험은 확실히 무협소설 장르 안에서 전위의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 일반의 지평에서 볼 때도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미 고급문학에서 개척된 것을 단지 원용했을 뿐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사실상 대중문학에서의 서술 실험이 낯선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대중문학은 고급문학으로부터 늘 영향을 받아왔고, 고급문학에서 개척되는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나름대로 흡수해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식의 흐름 기법이 예전에는 모더니즘의 대명사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적지 않은 대중문학 작품에서 상당히 세련되게 사용되고 있다.

대중문학이 고급문학의 시도와 실험을 원용했다는 점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실험이나 시도가 장식에 그치지 않고 서술내용과의 관계에서 적절성과 필연성을 획득하는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고급문학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어찌 문제가 될 것인가. 그러한 영향은 고급문학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다만 욕심을 내자면 고급문학으로부터의 원용을 통해 무협소설의 전위를 확보하는 단계를 넘어 문학 일반의 지평에서 전위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실험으로까지 나아갈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세 작품만으로는 분명하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본래적으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은 내릴 수 있겠다. 이 작품들이 반(反)영웅주의 입장에 서 있음은 물론이요, 나아가서는 허무주의와 비관주의를 기조로 하여 삶에 대한 지배 담론의 의미 부여를 예리하게 해체하고 있는 점은 결코 낮추어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무협소설 명인열전’은 이번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신동아 200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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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 junaur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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