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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논쟁

왜 지금 이순신인가

드라마·소설·평전 재조명 열풍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khmzip@donga.com

왜 지금 이순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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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이순신인가

1592년 4월13일 조선과 일본군의 부산진 전투 장면을 기록한 그림 ‘부산진순절도’. 이순신의 일기책 7권을 모아 엮은 ‘난중일기’.

그럼에도 그가 1576년 식년무과에서 병과(丙科)로 합격했을 때 이미 서른둘이었다. 그나마 병과는 무과 합격자 중 최하위 등급(갑,을,병 순)으로 종9품(오늘날 하사급)밖에 되지 않았다. 훗날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순신은 상관의 인사청탁은 물론 병조판서가 서녀를 첩으로 보내겠다고 하는 것을 “권세가 있는 집안에 의탁해 승진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할 만큼 원칙에 충실했다. 꼬장꼬장한 성품은 전라도 발포 만호(오늘의 중령급) 시절 유명한 오동나무 사건(직속 상관인 전라좌수사가 거문고를 만들려고 발포객사의 오동나무를 베어가려 하자 이순신이 관청의 물건임을 들어 제지한 사건)에서 잘 나타난다.

이런 일화들이 입소문 나면서 이순신의 이름이 서서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그의 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38세에 병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당했고 다행히 4개월 만에 복직했으나 종8품 훈련원 봉사(소위 바로 아래 직책에 해당)였다. 임진왜란 때 명성을 떨쳤던 신립, 이억기 등은 비슷한 시기 도호부사로 별 1개의 준장급이었고, 원균도 중령급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순신의 관직생활은 승승장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김태훈씨는 이런 이순신의 생애를 한마디로 “평범에서 비범으로”라고 요약했다.

1591년 2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불과 1년 전 이순신의 전라좌수사 임명을 놓고 조정이 시끄러웠다. 사간원은 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의 파격승진(김태훈씨는 대위와 중위 사이의 계급에서 별 2개의 소장으로 승진한 것에 비유했다)에 대해 ‘관작 남용’ ‘요행길’이라며 반대했으나 선조는 이를 물리쳤다.



선조를 직접 움직인 이는 유성룡이었다. 유성룡은 선조에게 “신의 집이 이순신과 같은 동네에 있기 때문에 신이 이순신의 사람됨을 깊이 알고 있다”고 한다(선조실록). 하지만 국가의 재상이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이유 하나로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발탁했다고 믿기 힘들다. 이보다는 이순신의 강직한 성품을 잘 아는 유성룡이 파직과 백의종군으로 47세에 지방현감이라는 낮은 직위에 머물고 있는 이순신을 과감히 추천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김태훈).

송우혜씨는 1589년 선조가 북방의 여진족을 토벌한 후 남방 왜적을 대비하기 위해 불차채용(不次採用: 차례를 뛰어넘어 벼슬을 줌)을 명했을 때 이산해와 정언신이 이순신을 추천한 사실을 들어, 이미 계미년 니탕개난 이후 무장으로서 이순신이 성가를 올리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병조판서 정언신은 니탕개난 토벌 때 총지휘를 맡은 순찰사로 당시 전투에 참가한 장수들의 역량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입장이었다.

반면 원균을 추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송씨는 소설 ‘불멸’에서 오랑캐 토벌전 이후 원균을 ‘육진의 수호신’이라 묘사하는 것은 근거 없는 과장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소설 ‘불멸’은 이순신과 유성룡의 관계를 사림과 훈구의 대립구도 속에서 피어난 일종의 ‘동지애’로 풀어간다. 이순신은 덕수 이씨 출신으로 조선시대에 고관대작을 많이 배출한 뼈대 있는 가문이었으나 중종 때 ‘기묘사화’(조광조의 급진적 개혁이 훈구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사림이 숙청당한 사건)로 이순신의 할아버지 이백록이 죽자 아버지 이정은 관직진출을 포기하고 처가가 있는 충남 아산으로 낙향한다. 소설에서 어린 이순신이 친구들로부터 “죄 짓고 도망쳐온 집안 자식 놈”이라고 욕을 먹자 “헛소리 마. 우린 역적 집안이 아니야”라고 항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탁환씨는 “유성룡은 이순신을 ‘어릴 적 친구’나 ‘무예가 뛰어난 장수’로 본 게 아니라, 자신이 존경하는 조광조와 개혁을 도모했던 집안의 자손으로서 ‘이념적 동지’라고 생각했다는 설정 아래 소설을 전개했다”고 설명한다. 소설에서 같은 건천동 출신 원균은 유성룡·이순신과 유년기를 함께하지만 자라면서 대립각을 이룬다.

원균의 아버지는 경상좌병사까지 지냈으며 대대로 무사 집안. 한마디로 엘리트군인 출신이다. 용감한 ‘돌격대장형’ 원균은 이순신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으나 전쟁을 치르면서 기존 전투방식을 고수하는 원균과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전법을 구사하는 이순신 사이에 틈이 생기고 이것이 훈구(원균)와 사림(이순신)의 갈등으로 확대된다는 게 소설 ‘불멸’의 구도다. 그러나 경상도 의성에서 자라다 13세 때 서울로 이사 온 유성룡이 15세의 원균, 10세의 이순신과 어울려 전쟁놀이를 했다는 유년기의 설정은 아무리 소설이라도 가당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송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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