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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⑧|문경새재에서 싸리재까지

라일락 향기, 철쭉꽃 잔향 “산마다 냄새가 다르다오”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라일락 향기, 철쭉꽃 잔향 “산마다 냄새가 다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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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향기, 철쭉꽃 잔향 “산마다 냄새가 다르다오”

남한강 한가운데 솟아 있는 도담삼봉.

대미산 정상은 여러 사람이 쉬어가기에 넉넉하다. 대미산에서 남쪽으로 곧장 내려서면 여우목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 안내판에는 이런 글이 써 있다. ‘천주교 103위의 한 사람인 이윤일(요한) 성인이 머물다가 신자 30여명과 함께 체포돼 상주를 거쳐 대구로 끌려가 참형당했다.’

마르지 않는 대미산 눈물샘

대간은 대미산에서 왼쪽으로 뻗는데 정상에서 15분쯤 내려가면 눈물샘 안내판이 나온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대미산의 본래 한자명은 ‘黛眉山’이었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검푸른 눈썹처럼 생긴 산이라는 뜻이다. 눈물샘은 눈썹 밑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셈이다. 눈물샘의 물은 어지간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물맛이 좋기로도 유명한데, 금천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는 법이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었지만 동쪽 하늘은 벌써부터 붉게 물들고 있었다. 산 뒤편에서는 들짐승이 돌아다니는지 이따금 괴상한 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구른다. 새삼 그들이 이 산의 주인이고 우리가 불청객임을 느낀다. 눈물샘의 물을 두 컵이나 마시고 텐트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데 텐트 밖으로 붉어지는 모습이 갈수록 장관이다. 본격적인 일출이 시작된 것이다.

눈물샘에서 북으로 향하던 대간은 1051m봉에서 다시 동으로 휘어진다. 여기서부터는 경북 문경땅으로 삼림욕장을 방불케 하는 시원스런 낙엽송지대가 이어졌다. 981m봉을 기분 좋게 내려서면 왼편으로 표지판이 하나 보이는데 백두대간 종주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포항셀파산악회가 실측한 거리 안내판이다. 이들의 계산에 따르면 백두대간 남쪽의 총 길이(천왕봉-진부령)는 734.65km이고, 이 지점이 정확히 그 중간지점인 367.325km가 되는 곳이다.



백두대간 중간점에서 계속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차갓재가 나오고 이곳에서 15분쯤 더 가면 작은 차갓재가 나온다. 황장산(黃腸山·1077.3m) 등산의 기점이 되는 곳이라 등산객이 많이 오간다. 황장산은 천천히 몸을 풀다가 막판에 불끈 큰 바위로 솟은 모양새가 희양산이나 포암산과 닮았다. 황장산의 명물 묏등바위로 오르려면 로프에 의지해야 하고, 정상 문턱에서는 아슬아슬한 바위벼랑을 조심스럽게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 발밑을 바라보면 수십 미터에 달하는 짜릿한 절벽이고, 멀리 굽어보면 문경과 제천의 산골마을이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황장산이란 이름은 이곳에서 많이 생산되는 황장목에서 나왔다. 황장목은 춘양목과 더불어 좋은 목재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데, 나무 색깔이 노란색이어서 예로부터 대궐의 건축자재나 임금의 관을 만드는 데 쓰였다. 조선 숙종 때는 이 산이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해지기도 했다. 이를 입증하는 표지석이 지금도 남아 있다. 황장산은 문헌에 따라 황정산 또는 작성산 등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황장산 정상에서 감투봉으로 가는 길은 칼날 같은 바위능선이고, 감투봉에서부터는 밧줄을 잡고 내려서는 가파른 코스가 이어진다. 또한 황장산 아래 황장재부터 1004m봉까지는 1시간 남짓의 시원한 암릉구간이 펼쳐져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황장산은 당일 등산코스로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있다. 1004m봉을 끝으로 대간은 다시 하강을 시작한다. 1시간 남짓 편안하게 즐기면서 내려서면 벌재다. 이곳엔 문경과 단양을 연결하는 33번 도로가 지난다.

고요한 숲속의 아침

벌재에서 황정약수터로 가는 길 양쪽 산허리는 절개지 보수공사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조림은커녕 맨살이 드러난 산 흙조차 막지 않아 큰비라도 오면 토사가 그대로 도로와 배수로에 흘러들 판이었다. 황정약수터 앞에는 트럭을 개조한 포장마차가 서 있고, 그 옆으로 아주머니 다섯 명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소주병만도 5병. 벌써 각 1병씩은 마신 듯했다.

저녁준비를 하다가 술안주 생각이 나서 포장마차 아주머니에게 약간의 부식을 부탁했더니 아주머니는 찌개양념에 김치까지 듬뿍 담아주셨다. 거기에 어묵과 고추장을 풀어넣으니 근사한 소주안주가 만들어졌다. 낙엽송 숲에서 우리는 또 다시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이번 산행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산에서 밤을 보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밤 9시만 돼도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둡다. 일찍 잠들고 새벽에 깨어 밤하늘을 바라보는 여유가 벌써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아침이다. 숲속의 아침은 더욱 고요하다.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는 듯해서 서둘러 아침을 먹고 대간으로 붙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부을 것만 같다. 낮은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땀은 알맞게 배어났다가 흐르기 전에 식었다. 이런 날씨에 걷는 오솔길은 꽤 매력적이다. 산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나기 때문이다. 때늦은 라일락 향기와 이미 떨어진 철쭉 꽃잎의 잔향도 음미할 만하다. 이 대목에서 함께 걷던 김경수씨는 “산마다 냄새가 다르다”며 고수다운 내공을 보여주었다.

문봉재(1040m)와 옥녀봉(1077m)을 지나 평탄한 능선을 달려가자 오른쪽으로 삼율광산의 돌 캐는 소리가 들려오고 조금 더 나아가자 왼편으로 소백산관광목장이 보였다. 여기서부터 왼편은 충북 단양이고 오른편은 경북 예천이다. 소백산관광목장을 지나 고개를 두 개 넘어서면 927번 지방도가 지나는 저수령(低首嶺)이 나온다. 저수령의 유래는 두 가지다. 너무 험난해서 이 길을 지나는 길손들의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는 설과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의 머리가 모두 날아갔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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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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