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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군부독재 위해 일하는 그 날부터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김정원

  • 글: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 kimjw02@sejong.ac.kr

“군부독재 위해 일하는 그 날부터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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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언론인 못지않게 시인으로 불리는 것을 즐겼던 낭만주의자였다. 아버지의 시는 주로 대자연을 노래한 것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본업인 언론사와 출판사 외에 영화사까지 설립하는 등 문화사업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윤형남 선생이신데, 두 분은 광주사범 동기시다. 제3대 국회 때부터 내리 3선을 했던 선생은 아버지와 둘도 없는 술친구였다. 취기가 오르면 두 분 모두 문학소년으로 돌아갔다. 시내에서 모임이 있는 날은 늘 2차로 명륜동에 있는 우리집을 찾으셨다.

아버지는 술 한잔 하실 때마다 창작시 한 수를 읊으시곤 했다. 두 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를 암송하실 때도 있었지만, 감정을 실어 절규하는 목소리로 시를 읊을 때면 온 가족이 잠을 설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던 동생들과 나는 아버지의 시 낭송 소리에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낭만과 풍류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처럼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지금도 주량은 맥주 1~2잔을 넘지 않는다.

아버지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셨지만,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문학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셨다. 당시 서울신문에 연재되었던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베스트셀러였는데, 교수 부인의 불륜이라는 주제와 함께 과감한 애정묘사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나도 친구들의 권유로 책을 사서 틈틈이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방에서 그 소설을 읽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내가 공부하는 줄 알고 들어오셨던 아버지 눈에 하필이면 소설책, 그것도 ‘자유부인’이 띄고 말았다. 아버지는 “네가 지금 이런 책을 볼 시기냐”고 호통을 치신 뒤 내가 보는 앞에서 소설책을 모두 찢어버리셨다. 학생 신분에 맞지 않는 소설을 보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원칙 때문에 그날 밤 나는 집에서 쫓겨나 친구 집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늘 우리나라가 살 길은 교육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일본 통치하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문맹률이 높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열심히 지식을 습득해야만 우리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고 굳게 믿으셨던 것이다. 즉,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바로 애국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보낸 흰 봉투 하나

그런 소신 때문에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다. 치밀한 준비 끝에 나는 하버드, 예일 등 미 동부의 유명 사립대학들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하버드와 예일대는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조건이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원래 목표대로 하버드대를 선택했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이렇게 파격적인 장학금을 제시한 것은 나의 SAT 성적뿐 아니라 스포츠 활동과 웅변대회 수상 등의 경력을 매우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로부터 학비와 생활비까지 지급받았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기숙사의 내 방에는 언제나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고국이 생각나거나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나는 태극기를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

부모님은 학비를 보내주겠다고 여러 차례 전보와 편지를 보냈지만 나는 사양했다. 신문배달을 할 때 만났던 얼굴들,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고학하는 학생들,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학생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달러였고 나의 1년 학비는 1400달러였다. 1인당 국민소득의 20배가 넘는 금액을 나의 1년 학비로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그 돈으로 최소한 50~100명의 한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그러자 이후 아버지는 정말 단돈 1달러도 송금해주지 않았다. 그 후로는 오로지 장학금을 받아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김준현 국회의원이 하버드대를 방문했다. 김준현 의원은 나의 이모부로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정도로 유력한 정치인이었다. UN대표단을 이끌고 뉴욕에 왔다가 나를 보러 온 것이었다. 나는 성심성의껏 일행을 안내해드렸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이모부께서는 갑자기 작은 봉투 하나를 손에 쥐어 주셨다. “아버지가 보낸 것이니 요긴하게 쓰거라.”

순간 언제나 근엄하지만 남몰래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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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 kimjw02@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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