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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노무현의 ‘腹心’ 이광재, 밀사·메신저로 종횡무진

  • 글: 이 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reamland@donga.com

노무현의 ‘腹心’ 이광재, 밀사·메신저로 종횡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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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밖에서 아무 일 안하고 있으면 일 안하고 놀고 먹는다고 뭐라 할 테고, 연구소라도 만들면 실세가 사설 연구소를 통해 국정을 농단한다고 할 테고, 할 수 있는 게 출마밖에 더 있겠어….”

결심을 굳힌 그는 노무현 선거캠프에 있던 선거전문가들로 팀을 꾸려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뛰어들었다. 후원회장도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이던 이기명씨가 맡았다.

고향인 강원도 평창에서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굳혔지만 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당내 경선에서 현역인 김택기(金宅起) 의원을 꺾어야 했고, 본선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 2명을 물리쳐야 배지를 달 수 있었다.

선거구 획정 문제가 해결된 3월2일 ‘조용히’ 당내 경선 후보로 등록한 그는 면적이 서울의 7배나 되는 강원도 영월-평창-태백-정선 지역구를 발로 뛰기 시작했고, 결국 의원 3명의 벽을 넘었다. 강원도 사람들은 보수적이며 친(親)한나라당 성향이지만 동시에 ‘권력지향적’이기도 하다. 이제 불과 40세의 젊은 그를 선택한 것은 뒤처지고 소외된 강원도를 살려달라는 대통령 측근에 대한 호소이기도 했다.

이 의원은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하루에 소주 50잔을 마신 적도 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노인들이 “술 안 먹으면 표 안 준다”고 하기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먹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설명이다. 선거구가 워낙 넓어 아무리 돌아다녀도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이 선거운동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한다. 특히 탄탄한 지역기반과 조직을 갖고 있는 현역 의원들과 경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선거전문가들도 이광재의 당선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예상했을 정도다. 하지만 “힘있는 젊은 측근”이라는 이미지와 발로 뛴 선거 운동은 결국 그에게 승리를 안겼다.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와중에 청와대 참모들과 총선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노 대통령은 텔레비전 화면에 ‘이광재 당선 확실’ 자막이 뜨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흥분한 얼굴로 “저 녀석 내 앞에서도 만날 맞담배 피우는 놈인데, 의원이 되면 더 건방질 텐데 이거 어쩌지…”라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는 후문이다.

원내 대통령 국정상황실장?

의원회관 207호실은 여느 의원 사무실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들어서자마자 보좌관, 비서관 책상 건너편에 이 의원이 사비로 장만한 대형 책장이 있다. 대다수 의원이 소파를 놓고 개인 사무실로 쓰는 방도 이 의원은 개인 용도가 아니다. 역시 사비를 들여 장만한 대형 회의테이블이 방 한가운데 놓여 있고, 이 의원의 책상은 칸막이가 쳐진 상태로 한쪽 구석에 있다.

칸막이로 쓰는 화이트보드에는 현재 추진하는 일의 상황을 나타내는 ‘진행표’가 붙어 있고 거기에 화살표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이 의원의 보좌관들은 저마다 이채로운 경력을 지녔다. 보좌관 1명은 미국 유명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경제 전문가이며, 수행비서는 사법고시 1차에 패스하고 보험회사를 다니던 인재다. 여비서 중 한 명은 지방대에서 자동차공학을 전공한 석사 출신이다. 이들은 단순한 보좌진이 아니라 치열한 토론과 연구를 통해서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스태프’다.

이 의원은 선거운동 과정에 강원도 지역구민에게 두 가지 큰 공약을 했다. 하나는 299명의 국회의원 중에서 ‘의정활동 3위 이내에 들겠다’는 것과 ‘뒤처지고 소외된 강원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의원을 하면서 ‘지역구의 노예가 되지는 않겠다’며 지역민들에게 이해와 지지를 호소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 시절과 마찬가지로 요즘도 매일 오전 7시에 의원회관에 출근한다. 대개는 조찬 약속이 있다. 오전에는 국회와 당의 공식 행사에 시간을 쓰고 오전 11시 반부터는 찾아온 지역 구민을 만나 민원을 듣고 보좌관들과 점심식사를 한다. 지역구민의 민원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시간을 정해놓았다는 게 본인의 설명이다. 점심식사 약속은 이미 한 달 이상 잡혀있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국회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 속한 그는 관련 전문가나 정부 관계자를 의원회관으로 불러 비서들과 함께 매일 세미나를 갖는다. 저녁에도 이런 저런 약속으로 늘 바쁘다.

하지만 이 의원의 이와 같은 생활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실제 그의 행동반경은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 있다는 게 정확하다.

심상찮은 ‘미국행 휴가’

일례로 이 의원은 지난 5월 중순경 노 대통령의 갑작스런 지시를 받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당시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일부를 철수하기로 결정한 직후다. 국내에서는 ‘한미동맹 관계 비상’이라는 컷이 연일 신문 1면 머리를 장식했고, 현 정부의 대미외교 문제점을 비판하는 기사가 쏟아지던 시점이었다.

이 의원은 주변에 “선거과정에 너무 지쳐서 미국에 휴가를 간다”고 말했지만 미 행정부와 의회의 한반도 전문가를 잇달아 만나면서 주한미군 재배치에 대한 미국의 의중과 한미동맹 전반에 대해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누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전 원내대표의 입각 문제가 현안이 된 당시에는 둘을 각각 따로 만나 정확한 의중을 듣고,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령’ 노릇을 수행했다. 또 개각시 장관 물망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인물평 등을 수집해 대통령에게 수시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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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 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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