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호

노무현의 ‘腹心’ 이광재, 밀사·메신저로 종횡무진

  • 글: 이 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reamland@donga.com

    입력2004-07-28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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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李光宰) 전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이 의원 ‘배지’를 단 지도 두 달 가까이 흘렀다. 이른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많지만, 노 대통령의 속내를 정확히 읽고 이해하는 사람은 이광재 의원이 유일하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16년간의 보좌관 생활 끝에 배지를 단 이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해서 많은 이가 궁금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 두 달간 그의 활동은 거의 알려진 바 없다.

    탄핵바람을 타고 17대 국회 입성에 성공한 열린우리당 초선 정치인들이 자신의 존재와 얼굴을 알리기 위해 이슈가 있을 때마다 튀는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고, 때로는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의원은 당선 이후 의원총회를 비롯해 본회의 상임위원회의 등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공식행사에는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언론과의 인터뷰라든지 개인적 소신을 밝혀야 하는 자리는 ‘은둔’에 가까울 정도로 피했다. 기자들의 전화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국정상황실장 시절과 다름없고, 현안에 대해서도 일절 말하지 않아 이제는 기자들의 취재원 ‘리스트’에서도 빠져 있다.

    현 정권에서 노 대통령을 빼고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이 의원은 지금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을까.



    “4년 뒤 다시 모시겠습니다”

    이 의원의 과거 청와대 생활은 오전 7시부터 자정을 넘기는 시간까지 계속되는 ‘중노동’이었다는 게 본인의 고백이다. 술고래로 알려진 이 의원은 전날 아무리 과음을 해도 오전 7시에는 정확하게 사무실에 나와 일을 챙기는 성실성으로 노 대통령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은 통치권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비중이 달라지는 위치다. 전직 대통령들은 이 자리를 그다지 크게 활용하지 않았지만 이 의원의 기획력과 통찰력을 높이 평가하는 노 대통령은 국가의 주요 현안에 대해 공식적인 보고라인 이외에 이 의원이 국정상황실을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입수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위한 해법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국정상황실을 초호화 멤버로 꾸렸다. 연세대 화학과에 입학했다가 법학과에서 졸업한 그는 최종학력이 학사지만 실원 대부분은 해외 유수 대학의 박사 출신이었다.

    이 의원의 업무 능력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폭넓은 독서에서 나오는 전문가 이상의 식견, 정치 감각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특히 16년간 ‘정치인 노무현’을 보좌한 ‘동지’이면서, 주요 국정 현안을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자리를 맡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은 곱지 않았다. 늘 그를 시기의 대상으로 삼아 비판했고, 행여 꼬투리라도 잡히면 사정없이 ‘물어뜯기’ 일쑤였다.

    이런 분위기 탓에 이 의원은 청와대 생활 8개월 동안 인생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살았다고 자부할 만큼 금욕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평가다.

    문희상 비서실장의 출근 시각에 맞춰 현관에 나와 대기하면서 승용차 문을 열어주고 가방을 들고 사무실까지 안내한 일화는 이 의원의 청와대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의원과 절친한 사람들은 그가 ‘룸살롱’이라고 부르는 포장마차를 안다. 서울 평창동 집 주변에 있는 이 포장마차에서 소주 폭탄주를 마시는 게 이 의원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금욕적인 생활’에도 이 의원은 지난해 10월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현재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당시 통합신당 의원총회에서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는 문제의 핵심인물을 반드시 경질해야 한다. 이 실세를 바꾸지 않고는 전면쇄신해봐야 실효가 없다”며 이 의원을 겨냥했다. 명백한 잘못이 없는 한 부리는 수족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스타일로 정평이 난 노 대통령은 곧바로 사의를 표명한 이 의원을 끝까지 만류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대통령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다”며 며칠 뒤 사표를 제출했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 의원이 대통령에게 ‘저 때문에 의원님(이 의원은 대통령을 지금도 노 의원이라고 부른다)이 부담을 갖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직을 훌륭히 수행하시고 은퇴하시는 4년 뒤에 다시 모시겠습니다’고 말하자 노 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흘렸다.”

    할 수 있는 게 출마밖에 더 있나

    이 의원은 사표 제출 후 “나에게 이 자리는 권력이 아니라 의무였고 사명이었다.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나 때문에 대통령에게 누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깨끗이 물러나는 길을 선택하겠다. 대통령에게 힘과 용기를 모아 달라. 그래서 대통령과 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성숙한 풍토가 조성되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 의원은 곧바로 고향인 강원도로 내려갔다. 그때부터 강원도의 산을 오르며 인생에 대한 장고(長考)에 들어갔고, 총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다. 물론 이 의원의 총선 출마는 본인이 원해서라기보다는 노 대통령을 위한 차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1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난 이 의원은 수줍음이 아주 많다. 1만여 권의 장서가 말해주듯 책읽기와 사색을 좋아하지만, 남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다. 이 의원은 총선 출마를 결심하고 나서 아내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내가 밖에서 아무 일 안하고 있으면 일 안하고 놀고 먹는다고 뭐라 할 테고, 연구소라도 만들면 실세가 사설 연구소를 통해 국정을 농단한다고 할 테고, 할 수 있는 게 출마밖에 더 있겠어….”

    결심을 굳힌 그는 노무현 선거캠프에 있던 선거전문가들로 팀을 꾸려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뛰어들었다. 후원회장도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이던 이기명씨가 맡았다.

    고향인 강원도 평창에서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굳혔지만 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당내 경선에서 현역인 김택기(金宅起) 의원을 꺾어야 했고, 본선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 2명을 물리쳐야 배지를 달 수 있었다.

    선거구 획정 문제가 해결된 3월2일 ‘조용히’ 당내 경선 후보로 등록한 그는 면적이 서울의 7배나 되는 강원도 영월-평창-태백-정선 지역구를 발로 뛰기 시작했고, 결국 의원 3명의 벽을 넘었다. 강원도 사람들은 보수적이며 친(親)한나라당 성향이지만 동시에 ‘권력지향적’이기도 하다. 이제 불과 40세의 젊은 그를 선택한 것은 뒤처지고 소외된 강원도를 살려달라는 대통령 측근에 대한 호소이기도 했다.

    이 의원은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하루에 소주 50잔을 마신 적도 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노인들이 “술 안 먹으면 표 안 준다”고 하기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먹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설명이다. 선거구가 워낙 넓어 아무리 돌아다녀도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이 선거운동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한다. 특히 탄탄한 지역기반과 조직을 갖고 있는 현역 의원들과 경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선거전문가들도 이광재의 당선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예상했을 정도다. 하지만 “힘있는 젊은 측근”이라는 이미지와 발로 뛴 선거 운동은 결국 그에게 승리를 안겼다.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와중에 청와대 참모들과 총선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노 대통령은 텔레비전 화면에 ‘이광재 당선 확실’ 자막이 뜨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흥분한 얼굴로 “저 녀석 내 앞에서도 만날 맞담배 피우는 놈인데, 의원이 되면 더 건방질 텐데 이거 어쩌지…”라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는 후문이다.

    원내 대통령 국정상황실장?

    의원회관 207호실은 여느 의원 사무실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들어서자마자 보좌관, 비서관 책상 건너편에 이 의원이 사비로 장만한 대형 책장이 있다. 대다수 의원이 소파를 놓고 개인 사무실로 쓰는 방도 이 의원은 개인 용도가 아니다. 역시 사비를 들여 장만한 대형 회의테이블이 방 한가운데 놓여 있고, 이 의원의 책상은 칸막이가 쳐진 상태로 한쪽 구석에 있다.

    칸막이로 쓰는 화이트보드에는 현재 추진하는 일의 상황을 나타내는 ‘진행표’가 붙어 있고 거기에 화살표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이 의원의 보좌관들은 저마다 이채로운 경력을 지녔다. 보좌관 1명은 미국 유명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경제 전문가이며, 수행비서는 사법고시 1차에 패스하고 보험회사를 다니던 인재다. 여비서 중 한 명은 지방대에서 자동차공학을 전공한 석사 출신이다. 이들은 단순한 보좌진이 아니라 치열한 토론과 연구를 통해서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스태프’다.

    이 의원은 선거운동 과정에 강원도 지역구민에게 두 가지 큰 공약을 했다. 하나는 299명의 국회의원 중에서 ‘의정활동 3위 이내에 들겠다’는 것과 ‘뒤처지고 소외된 강원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의원을 하면서 ‘지역구의 노예가 되지는 않겠다’며 지역민들에게 이해와 지지를 호소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 시절과 마찬가지로 요즘도 매일 오전 7시에 의원회관에 출근한다. 대개는 조찬 약속이 있다. 오전에는 국회와 당의 공식 행사에 시간을 쓰고 오전 11시 반부터는 찾아온 지역 구민을 만나 민원을 듣고 보좌관들과 점심식사를 한다. 지역구민의 민원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시간을 정해놓았다는 게 본인의 설명이다. 점심식사 약속은 이미 한 달 이상 잡혀있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국회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 속한 그는 관련 전문가나 정부 관계자를 의원회관으로 불러 비서들과 함께 매일 세미나를 갖는다. 저녁에도 이런 저런 약속으로 늘 바쁘다.

    하지만 이 의원의 이와 같은 생활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실제 그의 행동반경은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 있다는 게 정확하다.

    심상찮은 ‘미국행 휴가’

    일례로 이 의원은 지난 5월 중순경 노 대통령의 갑작스런 지시를 받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당시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일부를 철수하기로 결정한 직후다. 국내에서는 ‘한미동맹 관계 비상’이라는 컷이 연일 신문 1면 머리를 장식했고, 현 정부의 대미외교 문제점을 비판하는 기사가 쏟아지던 시점이었다.

    이 의원은 주변에 “선거과정에 너무 지쳐서 미국에 휴가를 간다”고 말했지만 미 행정부와 의회의 한반도 전문가를 잇달아 만나면서 주한미군 재배치에 대한 미국의 의중과 한미동맹 전반에 대해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누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전 원내대표의 입각 문제가 현안이 된 당시에는 둘을 각각 따로 만나 정확한 의중을 듣고,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령’ 노릇을 수행했다. 또 개각시 장관 물망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인물평 등을 수집해 대통령에게 수시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지금도 현안이 있을 때마다 이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거 준비해 오라”고 지시한다고 한 측근은 전한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면 이 의원은 밤을 새워가면서 논리를 개발하고, 핵심을 요약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큰 논란을 빚고 있는 신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것이다. 이 의원은 공식적인 당직을 맡지 않았지만, 현재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한 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역구가 강원도인 까닭에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이 의원이 행정수도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의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수도를 이전해야 하는 논리가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져 올라 있다.

    의회와 청와대의 ‘연결고리’

    요즘 이 의원은 당내에서 이화영(李華泳) 김진표(金振杓) 김태년(金太年) 윤호중(尹昊重) 서갑원(徐甲源) 김재윤(金在潤) 백원우(白元宇) 의원과 함께 ‘의정활동연구센터’를 만들어 활동중이다. 이 센터는 국회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지 않는 열린우리당의 자생적인 의원연구모임이다. 청와대와 함께 국정 ‘어젠더’를 만들고, 의회 차원에서 이를 백업하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다. 즉 의회와 청와대의 ‘연결고리’인 것이다. 이 의원은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막후에서 모임을 주도하면서 청와대와 의회의 가교 노릇을 맡고 있다.

    이 의원은 언젠가 노 대통령을 ‘2대 대통령’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1대 대통령은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온 이승만부터 김대중까지고, 2대 대통령은 탈권위주의 시대를 연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얘기다. 그는 또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에 남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가장 활발하게 노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 의원의 ‘정중동(靜中動)’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다시 한 번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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