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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남미형 몰락 피하려면 재정개혁부터 시작하라

국책사업 남발에 대한 경고

  • 글: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jjun@ewha.ac.kr

남미형 몰락 피하려면 재정개혁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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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립적 정책환경 조성에 동반자 노릇을 한 것은 참여정부 초기 다수 의석을 점했던 한나라당이다. 정책 입법을 주도할 수 있는 국회 제1당으로서 정책정당의 면모를 보이기는커녕 야당의 선명성을 드러내며 민생과 경제를 위한 정부 비판을 주도하는 데도 실패했다. 자신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보수계층과 개혁적인 정부 비판그룹 사이에서 어정쩡한 줄타기를 하며 그때그때 정책 현안에 끌려다니는 모습밖에 보이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동북아 허브 전략이 현실성이 없는 비전이라면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소득 2만달러가 공허한 약속이라면 민생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 다수 야당이 당연히 해야 할 몫이었다.

외환위기라는 고비를 넘기고 우리 경제를 새로운 성장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국민이 목격한 것은 책임 있는 계층의 무책임한 충돌이었다. 막말과 삿대질이 오가는 정치판의 더러운 습성이 민생과 경제 영역에까지 전염되는 것을 보며 개탄과 분노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당연히 해야 할 개혁, 이념과는 무관한 정책들까지 정쟁의 대상이 되다 보니 자연히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견제가 약해진 사회에서 무책임한 주장이 난무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도대체 요즘 경제 문제 중에서 싸움의 소재가 되지 않는 것을 찾기 힘들 정도다. 자신과 의견이 조금만 다르면 상대의 심중이나 배경까지 멋대로 분석하며 편가르기를 한다.

교육 부동산 노동시장 금융부실 국민연금 빈부격차 공정거래 정부혁신 지방분권 등 중요한 경제현안치고 정쟁의 대상이 아닌 것이 드물다. 싸움의 주역도 다양해 여당, 야당, 청와대, 정부 부처에다 언론 및 사회단체까지 얽히고설키는 통에 도대체 누가 누구의 이익을 반영하는지 헷갈릴 때가 적지 않다. 이런 와중에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극심한 사회혼란과 대립이 야기되고 있다. 여기에다 국가균형발전, 농어촌특별대책, 장기공공임대주택 건설, 자주국방 등 대규모 국책사업의 타당성과 재원 조달을 둘러싼 논란까지 가세하면서 세상이 온통 말싸움 천지로 변해버렸다.

경제현안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끊임없는 논쟁의 결과는 무엇인가. 결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질 것은 뻔한 이치다. 모두 하나같이 국민 후생과 나라 장래를 위한다고 외쳐대지만 경제는 가라앉고 있다. 정책을 얘기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무대에서 사라지고 얄팍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만 기세등등하게 거리를 누비는 천박한 ‘갈라먹기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평범한 소비자나 기업가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뭔가 앞이 보여야 계획을 세워 돈을 쓰거나 사업을 벌일 것이 아닌가.



생산을 하지 않는 경제는 성장할 수 없다. 성장하지 않는 경제일수록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이념과는 상관없는 평범한 세상살이의 한 단면일 뿐이다. 최근 우리 경제를 둘러싼 각종 논쟁과 갈등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제 뚜렷한 이념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많지 않다. 다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분배가 공평하지 않으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성장일변도 정책의 후유증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다. 경제구조에 누적된 비효율은 외환위기로 표출됐지만 사람들 마음속에 쌓인 불공평 심리가 해소되려면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성장과 분배가 함께 좋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를 대충 이해하는 사람들이 가장 멋대로 쓰는 표현이 성장과 안정, 성장과 분배의 상충관계이다. 예전에는 장관이 새로 임명되면 그가 성장론자냐 안정론자냐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요즘은 성장론자와 분배론자를 구분하는 것으로 유행이 바뀌었다. 일반 국민이야 언론에 의존하다 보니 그렇다 치더라도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이렇게 유치한 논법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장이 안정 또는 분배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단기적인 현상이다. 경제는 생산과 수요가 균형을 이뤄야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생산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수요가 늘면 당장은 생산이 늘고 실업이 줄겠지만 물가 상승 등 불안정을 초래하기 쉽다. 그러나 물가 불안이 지속되어 가격의 자원배분 기능이 파괴되면 경제활동이 위축되며 남미 국가들처럼 만성적인 경제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안정 없이 성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의 통합으로 실물경제의 충격이 국경을 넘어 쉽게 전파되는 개방적 환경에서는 안정이 성장의 필수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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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jjun@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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