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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향한 진중권의 직격탄

개혁 팔아 집권했으면 제발 개혁 좀 해라

  • 글: 진중권 칼럼니스트·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com

참여정부 향한 진중권의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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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씨는 그야말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커다란 기대를 안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 몇 달 만에 지지율은 바닥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새 지지자의 절반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파병, 대미외교, 노동, 환경 등 주요 사안에서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는 반대자들도 놀랄 만큼 수구적이었다.

이때 노무현 지지자들은 “소수 정권의 한계”와 “소수 정당의 비애”를 논했다. 대통령의 반개혁적 행보는 다수당인 한나라당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므로 진정으로 개혁하기를 바란다면 열린우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유권자를 향해 “국민 여러분, 민주개혁을 위해 다수 의석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탄핵 역풍을 타고 열린우리당은 잃었던 지지층을 일거에 재결집할 수 있었다. 여당은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이제 기다리던 개혁이 올 것인가?

하지만 이번에도 개혁은 오지 않았다.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선거 때에 써먹은 개혁의 플래카드를 걷어치우고, 간판을 새로 달았다. 열린우리당은 자칭 ‘중도보수 실용주의 정당’이란다. 이 나라에서 유권자는 선거가 끝나야 비로소 자기가 표를 던진 정당의 실체를 알게 된다. 어쨌든 국민이 몰아준 다수 의석을 가지고 열린우리당이 힘차게 밀어붙인 ‘민주개혁’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추가파병 결정, 아파트분양원가 공개 철회,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텅 빈 개혁의 레토릭이 그 정체를 들키지 않고 유지될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보수야당과 언론의 공이다. 특히 탄핵사태는 이미 거덜난 개혁의 레토릭을 정치적으로 부활시킨 악수(惡手)였다. 솔직히 정치권에서 탄핵 얘기가 오갈 때만 해도 “설마 의결까지 가겠느냐”고 생각했다. 의결을 강행하면 거대한 역풍이 불 것이 틀림없고, 설사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릴 리 없기 때문이다. 제 몫 챙기는 데 도가 튼 이들이 어떻게 이토록 현실감각을 잃을 수 있을까.



탄핵의 도화선은 한 일간지가 실시한 이른바 ‘전문가 여론조사’였다. 어떤 근거인지 모르지만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라 불리는 이들 사이에서 탄핵 찬반 견해가 50 대 50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처음에는 다소 반발이 있겠지만, 그 냄비들이 얼마나 오래 뜨겁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탄핵을 저지른 것이다. 덕분에 이제까지 부진한 개혁은 여당 탓이 아니라 야당의 발목 잡기 탓이라는 가설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졌다. 개혁이라는 빈 깡통은 이렇게 야당과 언론의 미련함으로 채워진다.

정신분열증과 편의적 망각

후보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 가서 사진 찍는 것 외에 특별히 한 일이 있던가. 차라리 사진만 찍고 돌아왔으면 나았을 것이다. “반미(反美) 좀 하면 어떠냐”고 했던 그가, 정작 미국에 가서는 “미국이 아니었다면 강제수용소에 있을 것”이라고 아부를 했다. 반미 안 해도 좋고, 자주 안 해도 좋다. 한 나라의 국가원수라면, 최소한 이런 유치한 화법으로 나라 망신은 시키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행보는 어떤가. 그는 불과 몇 달 전 정부 외교와 안보 라인의 숭미(崇美)주의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정작 미국에 가서는 어떻게 했는가. 김선일씨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져도, 대한민국 정부는 신속하게 파병방침 불변을 천명할 것이라고 했다. 압권은 동포들을 만난 자리에서 했다는 부친 자랑. “아버지가 빨치산 때려잡던 토벌대장이었다.” 도대체 이게 자랑거리인가.

‘리틀 노무현’ 유시민 의원은 어떤가. 작년까지만 해도 그는 “파병반대로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주자”고 주장했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는 “파병찬성으로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주자”고 외치고 있다. 한 사람이 파병반대와 파병찬성을 동시에 하려면,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인격이 분열되어야 한다. 그러잖아도 피곤한 세상, 참 고단하게 산다.

서로 모순되는 저 두 발언에서 상수(常數)는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주자”는 것. 이것이 분열의 고통 속에서도 그를 지탱해 주는 인생의 일관성이다.

민생 문제로 돌아가 보자. 노동자가 줄줄이 분신하는 것은 사회문제가 안 되고, 농민이 줄줄이 음독해도 경제문제가 안 되고, 서민이 줄줄이 투신해도 정치문제가 안 되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노동자가 분신하는 것은 ‘욱하는 성격’ 탓이고, 농민이 음독하는 것은 부족한 경영 마인드 탓이며, 서민이 투신하는 것은 무분별한 과소비 탓 아닌가. 본디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하는 법. 게다가 이 모든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는가. 나라 경제를 좀먹는 ‘노동귀족들’의 폐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따라서 이 분야에 관해서는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하지만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어떤가. 이것은 자기들 스스로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아닌가. 선거에 실컷 써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시장원리에 위배’된단다.

아니, 시장원리에 위배되는 것을 왜 버젓이 공약으로 내세우는가. 대통령의 개인적 ‘소신’이란다. 그래서 당의 공식 방침은 아니란다. 당의 공식방침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대통령이 그런 소신을 뭐 하러 흘리고 다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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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진중권 칼럼니스트·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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