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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호주 소년병 론 캐시맨의 인생유전

“나는 자랑스런 ‘가평대대’ 용사, 내 삶은 무너졌지만 후회는 없다”

  • 글: 윤필립 재(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한국전 호주 소년병 론 캐시맨의 인생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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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의 집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주경기장이 있는 홈부시에 있었다. 한인 밀집 거주지역인 스트라스필드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기찻길 옆 오두막집’이다. 홈부시는 오래 전부터 철도 노동자가 많이 살았다. 론이 그곳에 정착한 것은 참전 상이용사 전용병원이던 콩코드 병원(지금은 상이용사가 많지 않아 일반병원으로 바뀌었다)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가스난로가 피워진 작은 거실엔 오전 햇살이 가득했다. 그가 마시다 말았을 잔엔 커피가 절반쯤 담겨 있었다. 그는 졸고 있었다. 아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함께 간 에디가 “좀 기다리면서 집안이나 둘러보자”고 했다. 거실과 서재, 하물며 침실에까지 한국전쟁과 관련된 사진이 붙어 있었다. 한국인 전우 김흥규와 찍은 사진은 큰 족자로 만들어서 걸어뒀고, 전쟁 때 사용했다는 지도까지 붙여놓았다.

그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부인 베티가 다가가 어깨를 감싸안자 론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주름진 눈가엔 눈물자국 같은 것이 남아 있고….

“소대장님! 오늘 행군 중에 아무 이상 없었습니닷!”



에디가 느닷없이 부동자세로 론에게 거수경례를 붙이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보고를 했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론은 낮은 목소리로 “쉬어!”라고 하더니 에디를 얼싸안았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고왕산 355고지에서 2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였다. 어느 날 소대장이 중상을 입어 소대원을 지휘하지 못하게 되자 전투력과 통솔력이 강한 론에게 소대장 임무를 맡겨 에디가 론의 부하가 된 것.

“Where do I start?”

필자는 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당신의 얘기를 듣기만 하겠다”고 했다. 그에 관한 책 ‘Keep Off The Skyline’과 TV 다큐멘터리 ‘Korean ANZAC’는 진작에 입수했지만, 그를 직접 만나보기 전에 보면 선입견이 생길까봐 미루고 있던 터였다.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던 론이 한동안 눈을 감고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눈치채지 않도록 소형 녹음기를 작동시키고는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가 마치 유령의 음성처럼 “Where do I start?”라고 말하고는 쓸쓸하게 웃었다.

“사랑 얘기도 아닌데 영화 ‘러브스토리’ 첫 대사처럼 시작하네, 허허. 기왕 말이 나왔으니, 러브스토리는 아니지만 자네 마닐라에서 길거리 여자에게 동정을 바친 얘기부터 시작하면 어때?”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고 에디가 한마디 하고는 껄껄 웃어댔다. 사내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베티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뒤뜰로 나갔다. 같이 앉아 듣다보면 무슨 얘기가 튀어나올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베티는 늘 그런 식이었다고 한다. 론이 참전 1년 후 시드니로 휴가를 나왔을 때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그후 1년 동안 편지로 교제하다가 론이 호주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결혼했다.

두 사람은 딸만 넷을 낳았다. 론에게서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난 것은 결혼 초기였지만, 상태가 그리 심하지 않아 병원에 다니면서 가정과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내가 태어날 때쯤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모든 게 엉망이 됐다.

소대장 출신의 론 대신 베티가 소대장이 되어 집안 살림을 꾸리면서 론의 병 수발도 해야 했다. 베티는 강한 여자였다. 론의 증상이 나타나면 그녀는 조용히 아이들을 론에게서 격리시키고 자신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상황이 급박해지면 앰뷸런스를 부르곤 했다.

몇 마디 말하곤 또다시 생각에 잠겨드는 론에게 에디가 제안했다.

“클론커리(Cloncurry) 작전부터 얘기하는 게 어떨까? 자네를 40년 동안이나 잠 못 들게 했던 전투였으니….”

론은 클론커리 작전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가면서 서너 번 몸서리를 쳤다. 목이 메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때마다 에디의 눈시울도 붉게 물들고.

작전이 있던 밤엔 산 아래로 임진강의 한 줄기인 사미천이 흐르고 그믐달이지만 은은한 달빛까지 함께 흘렀다고 했다. 그 아름다운 산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아직도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론의 얘기를 들어보자.

함께 싸우지만 혼자 죽는다

1952년 5월13일. 내가 소속된 제6소대는 호주군 3대대와 중공군 진지의 중간지점인 클론커리 지역을 정찰하라는 명령을 받았어. 중공군이 15명 정도 출몰했다는 정보가 입수됐기 때문이지.

신참소위인 소대장은 소대원 중 16명을 차출해 정찰에 나섰어. 달빛조차 없는 캄캄한 밤이었지. 막 정찰을 떠나려는데 같은 소대의 존 케네디 일병(나중에 론 캐시맨의 용맹스런 전투를 보고해 훈장을 받게 한 전우)이 내게 오더니 “오후에 정찰을 나갔을 때 능선 쪽으로 중공군 50∼60명이 보였다”고 했어.

정찰을 시작한 지 1시간쯤 흘렀을까. 갑자기 중공군들의 함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수류탄이 터졌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소대원이 부상을 입었지. 나는 중공군이 수류탄을 내 쪽으로 던지는 것을 보고 무작정 계곡 아래로 굴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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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필립 재(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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