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스타 경영인’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의 나라 걱정

“외국 학생은 기술에 관심, 한국 학생은 취업에 관심”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ky3203@donga.com

‘스타 경영인’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의 나라 걱정

3/5
‘스타 경영인’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의 나라 걱정

임원 제의를 마다하고 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한 황창규 사장은 회의에서도 늘 실무진의 의견을 중시한다고 한다.

-연구진들에게 학회 활동을 유독 강조한다면서요.

“삼성에 와 보니 연구진들이 현업에 바쁘다는 이유로 논문을 쓰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반도체 분야의 3대 학회라고 할 수 있는 ISSCC와 IEDM, VLSI 등에 논문을 내게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논문이 학회지에 실리기 위해서는 심사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심사위원회라는 것이 일본 심사위원과 미국 심사위원만 각각 15명씩 참여하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회장을 만나서 나를 심사위원에 넣어달라고 했어요. 마침 그 회장이 스탠퍼드 시절 잘 알던 친구였거든요. 그래서 심사위원이 됐죠. 그런데 심사를 할 때 1차 심사 결과를 갖고 일본으로 건너와서 통역을 앉혀놓고 일본말로 회의를 진행하는 거예요. 역시 안 되겠다 싶어서 또 나서서 심사위원회에서는 영어만 쓰게끔 바꿔버렸습니다. 그것만 한 것이 아니에요. 심사위원회에 400개의 논문이 들어오면 그걸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싹 나누어주고 연구하게 했어요. 이게 바로 우리가 미래의 반도체 원천 기술을 갖게 된 계기입니다.”

-직원들의 불만은 없었습니까?

“대신 나는 삼성전자에 와서 토의문화부터 바꿔나갔습니다. 내가 회의를 주재할 때는 임원들이 보고하지 못하게 합니다.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물어보는 것은 실무 분야의 부장과 과장들입니다. 그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게 실권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의사결정이 빠르죠.”

경술국치일에 일본을 꺾다



황창규 사장이 삼성전자에 입사한 것은 36세인 1988년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56M D램 개발팀장을 맡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256M D램을 개발한 뒤부터이다. 1994년의 일이다. 황 사장은 이때의 일을 엊그제 이야기하듯이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256M D램 개발의 암호명은 ‘TX’였어요. ‘테크놀러지 엑셀런트(Techno- logy Excellent)’의 약자였죠. 70여명의 연구진이 2년 동안 매달린 끝에 1994년 여름, 드디어 10장의 웨이퍼를 투입해 칩의 동작을 최종 점검하는 날이 왔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숨죽여 8장의 웨이퍼를 검사했지만 셀이 100% 동작하는 제품이 도무지 나오질 않았어요. 실망한 연구원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2억 7000만개의 셀이 완벽하게 움직이는 제품이 나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 한 번의 공정으로 100% 동작률을 보이는 칩이 나온 사례가 없었거든요. 검사장비가 고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10번도 넘게 검사를 반복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연구원들이 얼싸안고 환호하는 거예요. 드디어 우리 반도체 기술이 일본을 꺾은 거죠. 공교롭게도 그날은 경술국치일인 8월29일이었습니다.”

이보다 2년 앞선 1992년에도 삼성이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당시 선두업체이던 일본은 삼성의 기술력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황 사장은 256M D램 제품의 개발과정에 확보한 새로운 기술을 국제학회에 미리 발표하게 했다. 그러자 비로소 일본 업체들도 삼성의 기술력을 인정하게 됐다.

그러고 나서 황창규 사장이 자신의 ‘브랜드’나 다름없는 ‘메모리 신성장 이론’을 발표한 것은 이보다 8년 뒤인 2002년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2000년부터 신성장 이론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성장 이론을 생각한 것은 플래시 메모리를 생각한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2001년 IT 경기가 불황으로 곤두박질칠 때 새로운 시장에 특성화된 제품, 그리고 우리만 만들 수 있는 제품을 구상했던 것이 바로 플래시라는 말이죠. 2002년 ISSCC 기조연설에서 신성장 이론을 발표하기 전 이미 2000~2001년에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세계적 반도체 학회인 ISSCC에서 한국인이 기조연설을 한 것은 황 사장이 처음이었다. 아시아권에서 보더라도 일본의 NTT 도코모 회장이 완성품 업체 대표로서 학회에서 발표한 적은 있지만 부품소재 쪽에서는 황 사장이 처음이었다.

“4000명 정도 모였는데 그 사람들은 대부분 ‘삼성’이라고 하면 PC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70장의 차트 중 PC용 메모리를 설명하는 차트는 딱 한 장 보여주고 나머지 69장에서는 하나같이 게임기 DTV 네트워크 시스템 PDA 등의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IT 제품에 반도체가 들어간다는 걸 보여준 거죠. 그러고 나서 모바일 기기 위주로 1년에 2배씩 집적도가 높아진다는 ‘메모리 신성장 이론’을 발표한 겁니다.”

-그 이후 ‘황의 법칙’대로 1년 단위로 집적도를 높이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켜만 보십시오.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3/5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ky3203@donga.com
목록 닫기

‘스타 경영인’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의 나라 걱정

댓글 창 닫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