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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의 종횡무진 中國탐험 ⑧

홍성범(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 박사와 함께 파헤치는 중국 과학기술의 전모

튼튼한 기초과학, 무서운 핵기술·우주과학, 일취월장 첨단산업기술

  • 대담·황의봉 동아일보 출판국 부국장·전 베이징특파원 heb8610@donga.com

홍성범(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 박사와 함께 파헤치는 중국 과학기술의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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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범(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 박사와 함께 파헤치는 중국 과학기술의 전모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 일대. IT산업의 중심지로 각종 연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사실은 군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원폭과 수폭실험의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1966년 12월 수폭실험 직후 베이징방송은 ‘미국이 7년4개월, 소련이 4년 걸린 원폭실험과 수폭실험을 중국은 2년2개월 만에 성공했다’고 자랑스럽게 보도한 바 있습니다. 둘째는 원자력 잠수함의 건조를 용이하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원자력 잠수함에는 작고 가벼운 농축우라늄 원자로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중국은 1969년에 벌써 원자력 잠수함 건조에 나섰습니다. 최근에는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원전건설에 치중하고 있는데, 2020년까지 50여개의 원전을 건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른 분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핵무기 개발이 앞서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요.

“중국이 핵무기 개발을 결정한 것은 1956년입니다. 당시 중국은 육해공군의 무기를 전면적으로 현대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막대한 자금과 자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중국의 경제적 능력으로는 어려웠습니다. 이 같은 형편을 잘 알고 있던 마오쩌둥(毛澤東)이 정치적, 전략적 이점을 최대로 살릴 수 있는 핵무기 개발에 역점을 두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955년에 설립된 제2기계공업부 주관으로 부속연구소(原子能究所)에 전국의 전문가들을 소집했습니다. 초창기 참가인원이 10만여명으로 추산될 정도로 활기를 띠었는데, 핵탄제조에는 덩자셴(鄧稼先), 궈융화이(郭永懷) 등 미국유학생 50여명과 딩다리(丁大利)를 비롯한 소련유학생 등 500여명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단기간 내 대대적으로 과학기술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체제와 자원의 집중이 성공의 큰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핵공격을 할 수 있는 미사일 분야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의 미사일 개발은 중·소 대립이 노골화되었던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직접 공격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에도 전력을 다했습니다. 소련의 원조나 기술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 기술로 ICBM 개발에 착수한 것이지요. 이때 로켓개발을 주도한 핵심인물이 1940년대 미국 로켓개발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첸쉐썬 박사입니다.



유도탄의 연구 및 제조는 NASA에서 귀국한 첸쉐썬을 비롯한 미국유학파와 쑨자둥(孫家棟), 쑹젠 등 소련유학파가 주축이 되어 1958년 10월에 설립된 국방부 제5연구원에서 전담하게 됩니다. 유도탄 발사기지는 1958년 간쑤(甘肅)성 쥬취안(酒泉)지역에 건립했고요.

ICBM의 전단계라 할 중거리 탄도미사일(MRBM)은 1964년 시험발사를 시작으로 1965년 최초의 지대공 미사일인 훙치(紅旗)1호를 개발한 후, 이어 2호와 3호가 잇달아 발사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룩합니다. 미 정찰기 U-2기를 격추시킨 것이 바로 훙치 미사일이었습니다.

위성발사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1980년 5월에는 사거리 1만2800km의 ICBM이 개발됐고, 공대함 미사일인 하이잉(海鷹) 잉지(鷹擊) 등 전술미사일에 이어 1982년 10월에는 잠수함의 미사일 수중발사에 성공하는 등 중국의 핵전력은 꾸준히 강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주과학의 영웅, 첸쉐썬

-인공위성 발사기술도 발달해 중국은 현재 다른 나라의 위성을 대신 쏘아 올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주과학 분야의 기술수준은 어떻습니까.

“미사일기술과 위성기술은 기본적으로 같은 계열입니다. 위성은 쏘아서 올려놓는 데 반해 미사일은 쏘았다가 떨어지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따라서 중국의 우주기술은 미사일 개발이라는 군사적 목적과 맞물리면서 그 발전속도가 빨라졌습니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1호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이에 자극받은 마오쩌둥은 그해 5월 인공위성 개발을 강력히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3년 후인 1960년 2월19일에 중국 최초의 실험용 로켓 T-7M을 쏘아 올리게 됩니다. 특히 중소대립이 노골화되면서 1960년대 말 저우언라이(周恩來)가 대규모의 운반로켓 및 위성을 개발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국무원내에 설치함으로써 중국의 우주기술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당시 중국정부는 과학기술자들을 중국운반로켓연구소에 집결시켜 연구에 박차를 가한 결과 1970년 직경 2.25m, 중량 300kg으로 저고도에 쏘아 올린 장정(長征)1호를 선보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1970년 4월24일, 쥬취안 우주기지를 떠난 173kg의 둥팡훙(東方紅)1호가 마오쩌둥 사상을 찬양하는 ‘둥팡훙 멜로디’를 송신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지요. 이 사건은, 말하자면 중국의 우주시대를 알리는 서막이었던 셈입니다.

1971년에 두 번째 위성을 발사한 후 문화혁명기의 혼란으로 4년 이상의 공백기를 거쳐야 했죠. 그래서 1975년 12월에야 제3호 위성을 발사하게 됐습니다. 이때 펑바오(風暴)1호라는 2단식 신형 로켓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미국의 ICBM, 타이탄II와 거의 같은 크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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