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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美 비밀문서로 본 격동의 80년대④

전두환, 정권 승인 대가로 美에 핵포기, 전투기 구매 약속

  • 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leescorner@hotmail.com

전두환, 정권 승인 대가로 美에 핵포기, 전투기 구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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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워싱턴을 뒤흔들었던 코리아게이트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이었으며, 레이건이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맞이한 두 번째 외빈이자 첫 번째 국빈이었다. 하지만 전두환의 방미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정상회담 자리에는 공식 통역관도 없이 한국의 외무장관이 통역으로 배석하고, 그나마 두 정상이 마주앉을 시간은 단 10분이었다. 양측의 통역 시간과 회동 앞뒤의 의례적인 인사말을 빼고 나면 길어야 5분. 서로 마주앉았다가 금방 일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대통령이 직접 선물을 주고받는 시간마저 배정되어 있지 않았다.

1시간30분 동안 진행될 백악관 오찬은 국무부 문서의 표현대로 ‘주최측의 사교모임’이었고, 2박3일 워싱턴 체류 기간에 마련된 두 번의 저녁식사는 모두 김용식 주미 한국대사가 마련한 것이었다. 도착 둘째날인 월요일 오찬 후의 ‘기타 회동’ 일정은 백악관 회동에 참석하지 못한 한·미 양국 고위관리들이 서로의 상대역과 실무회담을 하는 자리였다. 이 일정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노신영 외무장관의 상대역은 알렉산더 헤이그 미 국무장관이었다.

한국 국민을 대표했던 전두환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서럽기 짝이 없는 대접이 아닐 수 없었다. 푸대접이라기보다는 무대접에 가까웠다. 국무부 문서는 이를 ‘신임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정상적인 예우’라고 표현했다. 이런 대접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켜냈어야 할 ‘한국의 국익’을 전두환 대통령 자신은 무엇이라고 보았던 것일까? 그렇게 해서라도 지켜야만 했던 ‘국익’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핵확산방지정책에 계속 협조해달라”

대통령 전두환을 미국에 보낸 서울의 분위기는 워싱턴의 이런 실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안보에 대한 공통된 인식… 두 정상 의기투합’ ‘한·미 새 동반시대’ ‘철군 불안에 깨끗한 종지부’ ‘솔직하고 확신에 찬 연설… 분위기 휘어잡아’ ‘위트로 이끈 오찬장 화기의 폭소’ 등이 한국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전두환 방미 기사의 제목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 언론의 이런 제목들이 모두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전두환은 방미를 계기로 한·미간의 서먹서먹했던 관계를 깨끗이 청산했다. 12·12도 덮어졌고, 광주도 잊혀졌다. 한·미간에 12·12나 광주는 더 이상 현안이 아니었다. ‘한·미 새 동반시대’ 개막이라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전두환이나 레이건 모두 서로 만남으로써 잃을 것은 없었고 얻을 것은 많았다. 미국이 얻은 것은 국익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얻은 것도 국익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승인’을 받아냄으로써 전두환 정권이 정통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 최대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 컸다.

다음에 소개하는 대화록은 전두환의 워싱턴 방문 직후인 2월5일, 국무부가 작성해 백악관과 주한 미 대사관에 동시에 발송한 1급 비밀(Top Secret)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양국 외무장관 사이의 실무 대화록이다. 세 장짜리로 약간 긴 글이긴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워싱턴 방문을 통해 얻고자 했던 ‘한국의 국익’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단서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대로 옮긴다.

《제목 : 한국 전두환 대통령 방미 관련, 국무장관의 블래어 하우스 회동

1. 1급 비밀 - 전체 내용

2. 2월1일 일요일 오후 헤이그 국무장관은 전두환 대통령과 앤드루 공군기지에서 블래어 하우스로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비공식적인 대화를 나누었으며, 이어 블래어 하우스에서 노신영 외무장관과 잠시 만났음. 이 자리에는 공로명 외무차관과 허화평 대통령보좌관이 배석했으며, 글라이스틴 주한대사도 참석했음.

노신영 : 2월1일자로 되어 있는 공동선언문 초안에 우리 정부도 이의가 없다. 우리가 마련한 공동선언문 초안에는 한국의 정치 안정을 위해 전두환 대통령이 취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인정해주는(endorsing) ‘정치적’인 문구가 들어가 있었으나 2월1일자 초안에는 빠져 있다.

헤이그 :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빠졌다. 하나는 전두환 대통령을 초청한 행위 자체가 여러 말을 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한국 내정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레이건 행정부의 희망사항이기 때문이다.

노신영 : 이해한다.

(뒤이어 김대중 건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 교환 부분이 있으나 비밀문서에서는 삭제되어 있음. 다음에 보이는 헤이그의 말은 앞뒤 문맥으로 미루어보아 ‘김대중 건에 대해 미국이 압력을 넣지 않았으면 한다’는 노신영의 의견 피력에 대한 반응인 것으로 판단됨 : 옮긴이)》

“취임식에 최고위급 인사 보내달라”

《헤이그 : 미국이 그런 압력은 가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한국이 김대중 건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또는 내정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해 레이건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조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해줄 조언이 있다면 사적인 통로를 통해서 전달될 것이며, 한국의 대외관계에 영향을 미칠 만한 현안에만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고,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전달될 것이다.

공항에서 같이 차를 타고 오면서 전두환 대통령께 한국이 이제는 국무부뿐만 아니라 백악관에도 친구를 두게 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렸다. 전두환 대통령께도 이미 설명했듯이, 한국이 우리의 핵확산방지 정책에 계속 협조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한국에 배치해놓은 핵무기는 그대로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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