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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奇人·名人 ②

여행가 정란|청노새 타고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선 최초의 전문산악인

  • 글: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 ahnhoi@yumail.ac.kr

여행가 정란|청노새 타고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선 최초의 전문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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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 정란|청노새 타고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선 최초의 전문산악인
여기서 우리는 정란의 여행 목적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포부를 키우고 경험을 풍부하게 하여 창작에 도움을 얻으려는 것이고, 그 모범이 사마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천하를 두루 유람한 여행체험에서 나왔고 정란이 여행에 발을 들여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여긴 신국빈은 그에게 유학의 길로 돌아오라고 간절히 권유한 것이다.

이러한 신국빈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란의 여행에 대한 몰두를 창작을 향한 동기로 돌린 것은 고정관념을 벗지 못한 좁은 소견이다. 정란은 주자학이 아니라 더 큰 세상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청노새, 어린 종, 보따리, 이불 한 채

집을 나선 창해가 동반한 것은 청노새 한 마리, 어린 종 한 명, 보따리 하나, 이불 한 채였다. 그 무렵 명산 열풍이 불어 금강산에 오르지 않은 것은 식자층의 수치였다. 하지만 그들의 등산은 호사롭고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다. 친구를 불러 모으고, 때로는 기생과 악공까지 대동하며 말을 타거나 오르기가 힘들면 중을 동원해 남여(뚜껑 없는 가마)를 타고 산을 올랐다.

그러나 정란은 단출한 여장으로 고독하게 자연과 대면했다. 이렇게 해서 금강산 비로봉을 네 번이나 올랐다. 일생일대의 목표였던 백두산을 등반하기 전에 두 번, 백두산을 등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번, 마지막으로 1788년 강세황·김홍도·김응환을 비롯한 사람들과 함께 오른 일이 확인된다. 9월14일 강세황이 장안사에 묵고 있을 때 어디선가 정란이 표연히 나타난 일이 있다.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란은 금강산을 여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화가들에게 그려달라고 해서 ‘산행도(山行圖)’를 만들었다. 남경희는 ‘정창해전’에서 “그는 특히 금강산을 좋아하여 발길이 네 번이나 비로봉 정상에 이르렀는데 그림을 그려 감상 자료로 삼았다. 그림은 최북(崔北)이 그렸고, 찬(贊)은 혜환(이용휴)이 지었으며, 글씨는 표암(강세황)이 썼으니 이 셋을 삼절(三絶)이라 일렀다”라고 했다. 다음은 남경희가 말하는 이용휴의 찬(贊)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 산에 다녀갔다 해도 오히려 공산(空山)이었지. 오늘 금강산이 그대를 만나자 모든 바위와 골짜기가 반가운 얼굴을 하는구나! 그대를 두고 산문(山門)을 처음 연 분이라 해도 좋겠구나!》

이 화첩에는 정란이 앉았거나 선 모습, 길을 걷거나 청노새를 타고 홀로 가는 모습, 외로운 배에 홀로 기대 있는 모습, 지팡이를 짚고 먼 데를 가리키는 모습, 갓을 벗고 두 다리 쭉 뻗고 있는 모습 등등 갖가지 자세가 묘사되어 있다. 이 평에 따르면 정란은 금강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한 최초의 사람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이 금강산을 다녀갔지만 그저 다녀만 갔을 뿐 산의 비경을 발견해내지 못했고, 금강산과 감정을 나누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란이 금강산에 오르자 모든 바위와 골짜기가 반가운 얼굴을 한다고 했다. 과장이기는 하지만 그의 탐방이 금강산 바위 하나하나, 골짜기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금강산의 첫 문을 연 사람, 그가 바로 정란이라는 것이다.

야윈 노새 타고 타박타박

남경희의 ‘정창해전’에는 정란이 전국을 여행할 때 타고 다닌 청노새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충직한 청노새는 주인을 태우고 금강산을 오르고 관동팔경을 두루 구경하며 내려오다 그만 삼척 땅에서 병들어 죽었다. 정란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묻고 제문을 지어 애도했다. 그 제문은 처절하여 읽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청노새가 죽어 묻힌 곳을 청려동(靑驢洞)이라 불렀다.

그의 쓸쓸하고 지루한 여행길을 함께 한 것은 동료 양반이나 시인묵객이 아니라 청노새와 종 한 명이었다. 건장한 말이 아닌 야윈 청노새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에서 그의 여행의 멋을 짐작할 수 있다. 서둘러 목적한 장소로 이동하지 않고 타박타박 먼 길을 걷는 세 개의 그림자가 눈에 선하다. 자동차로 순식간에 산 바로 밑, 절 코앞까지 들이닥치는 오늘날 여행객의 행태와는 큰 차이가 있다.

청노새는 김홍도가 그린 ‘단원도(檀園圖)’에도 등장한다. 남경희는 ‘정창해의 청노새를 위한 노래’를 지어 분신과 같은 청노새를 잃고 시름에 잠긴 정란을 달랬다.

《창해 선생은 기이함을 좋아하는 분타는 것은 청노새로 말이 아니라네.청노새는 연하(煙霞)의 자태를 타고나붉은 도화마(桃花馬)처럼구슬 재갈을 물고 옥 안마를 얹은 채티끌세상에서 날마다 달리는 짓을 하랴.그저 맹호연(孟浩然)이나 진도남(陳圖南) 같은 오골(傲骨)들이높다랗게 앉아 어깨를 추스르고 타게 허락하지.선생이 이를 얻어 산수를 노닐어청구(靑丘) 땅 수천리를 걸어 다니네.편자와 재갈로 다루지 않아도 몹시 순해서동서남북 가자는 대로 가네.(…중략…)풍상에도 험한 데도 언제나 따라가니주인의 산수벽을 이해라도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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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 ahnhoi@yumai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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