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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책 박물관’ 건립하는 (주)화봉문고 여승구 대표의 古書 수집기

쓰레기더미 뒤져 귀중본 건지고, 외국서적 들여오다 밀수범으로 몰리고

  • 구술 정리: 최희정 자유기고가 66chj@hanmail.net

‘고서·책 박물관’ 건립하는 (주)화봉문고 여승구 대표의 古書 수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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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책 박물관’ 건립하는 (주)화봉문고 여승구 대표의 古書 수집기
내가 이토록 춘향전에 빠지게 된 것은 이광수의 ‘일설춘향전’ 초판을 우연히 손에 넣은 뒤부터다. 처음에는 단순히 수집욕구 때문에 춘향전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춘향전이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개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게 되면서 점점 더 매료되었다.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오페라 ‘심청전’이 서양인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했던 것은 효(孝)라는 지극히 동양적인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춘향전에는 남녀간의 사랑이 있고 불의의 권력에 대한 민중의 항거도 있어 외국인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문화상품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는 판단이 선 후 작으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 더욱 수집에 열을 올렸다. 또 우리 고전을 대표하는 작품이고 춘향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많지만 정작 작품들을 모으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더욱 애착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한번 제대로 춘향전을 수집해보겠다는 의욕에 불타서 춘향전이 있다는 곳이면 어디든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김옥균의 암살범인 홍종우가 1892년 파리에서 프랑스인과 공동번역한 프랑스어판 춘향전을 구하기 위해 파리 센 강변의 고서점을 수십 군데나 뒤졌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한 적도 있다. 그 책은 내가 갖고 있지 못한 단 한 권의 춘향전이어서 지금도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바르셀로나의 알거지

춘향전 다음으로 내가 애착을 갖고 수집한 고서는 바로 천로역정이다. 천로역정은 존 버니언의 종교소설로 서양에서는 성서 다음으로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라 한다. 내가 이 소설에 관심을 갖고 100권이나 되는 책을 수집하게 된 데는 약간의 사연이 있다.



1983년쯤이라고 기억되는데 일본 오사카를 여행하던 중 기차역 앞에 있는 한큐 지하상가에 있는 고서점가를 들른 일이 있었다. 한 서점에 들어가 “한국과 관련된 고서가 없느냐”고 했더니 깨끗한 천로역정 초판본 두 권을 내놓는 게 아닌가. 그것은 천로역정을 우리나라 판으로 찍은 것으로 삽화도 우리나라 화가가 그렸고 그림 속 주인공도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당시 고서수집을 시작한 지 몇 년 안 됐던 나는 물건을 만났구나 싶어 그 자리에서 구입했다. 그만큼 수집욕구를 억제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김포세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천로역정이 적법 절차를 밟지 않고 들여온 고가문화재였기 때문에 밀수품으로 분류돼 통관이 보류됐던 것이다. 애타는 마음에 문화공보부에 달려가서 수입허가서 발부를 요청하고, 다른 한편으론 친지를 통해 김포세관장을 소개받아 부탁도 해보았으나 차가운 반응뿐이었다. 오히려 얼마 후에는 김포세관 심리과로부터 세관조사까지 받았다. 밀수범으로 의심받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책을 외국에서 들여온다는데 무슨 밀수란 말인가?

수차례 조사를 받는 동안 편법을 알게 됐다. 책을 통관시키지 말고 오사카로 돌려보낸 뒤 일본여행에서 돌아올 때 구입해서 세관에 신고하지 말고 그냥 여행 가방에 넣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개월 만에야 천로역정 한국어 초판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후 은근히 오기가 발동해 천로역정을 모으기 시작했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일본어 초판을 아주 비싼 돈을 들여 구입했고 세계 각국에서 발간된 초판본도 수집해나갔다.

수집과 관련된 언짢은 일화가 또 하나 있다. 1986년경이었는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디스트리프레스(Distripress) 총회가 개최돼 1주일 정도 스페인에 머무른 적이 있다. 고서 수집가라면 꼭 갖고 싶어하는 책 중 하나가 바로 그레고리안 성가집이다. 채색 필사본으로 장정과 제본이 화려한 세계 미서(美書)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를 구하기 위해 마드리드 구시가지 고서점을 몇 군데 돌아다녔다.

며칠을 찾아다니던 중 드디어 프라도 박물관 근처 서점에서 그레고리안 성가집 한 권을 발견했다. 들뜬 마음을 억누르고 흥정을 시작해 5000달러를 부르는 서점 주인을 설득해 3000달러에 구입하기로 했다. 문제는 세관 통과였다. 천로역정을 수입했을 때 밀수범으로 오인돼 고생한 일도 있고 해서 서점 주인에게 출국할 때 확실한 통관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주인은 대답을 회피했다.

당시 스페인은 프랑코의 철권통치 시기로 수도인 마드리드 도처에 기관총을 든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 정도로 경직돼 있는 사회 분위기였다. 아무 일 없이 반출될 것이라고 해도 가슴이 떨릴 판인데, 희미한 대답을 믿고 들고 나가다 문화재 절도범으로 몰리면 책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자칫하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될 수 있었다. 고서를 수집하는 것도 좋지만 남의 나라에서 감옥살이까지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쉽지만 결정을 보류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현금과 카드가 들어 있는 지갑을 택시에 놓고 내린 것이다. 일시에 알거지가 된 나는 바르셀로나의 고서점을 구경하려고 했던 일정도 취소하고 바로 귀국 길에 올랐다.

천로역정이나 그레고리안 성가집을 사려다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건 돈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국과 스페인의 법과 제도가 국제적인 상식에 맞지 않게 폐쇄적이고 전근대적인 데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30만원에 구입한 고려시대 불경

이처럼 고서를 수집하다 보면 난처하고 곤경에 빠질 때도 있지만,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행운이 찾아올 때도 있다. 18년 전쯤 인사동의 한 고서점에서 쓸 만한 물건을 찾아보고 있을 때였다. 서점 한 귀퉁이에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채로 나뒹구는 책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 휴지조각 같은 게 뭐요”라고 묻자, 주인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직감적으로 그 휴지뭉치가 보통 물건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종이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도 그렇고 서체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주인장에게 “아무것도 아니면 그냥 주소”했더니 그는 “그냥은 안 되고 30만원 주고 가져가시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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