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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⑩|고치령에서 댓재까지

기원전 天祭의 역사 간직한 하늘과 구름 그리고 숲

기원전 天祭의 역사 간직한 하늘과 구름 그리고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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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은 부소봉에서 왼편으로 꺾인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하다면 오른편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문수봉(1517m)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이 코스는 특히 흐린 날 걷는 게 좋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들이 구름 속에 버티고 있어 태백산의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문수봉 정상은 날씨가 기이하기로도 유명한데, 필자는 5월 초에 이곳에서 눈발이 휘날리는 장면을 감상한 적도 있다.

태백산 정상(1566m)과 천제단(1560m) 주변은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천제단은 조상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천왕단 장군단 하단의 3개 제단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천왕단이 가장 유명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때부터 태백산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해마다 1월1일이면 저마다 새해 소망을 가슴에 품은 수많은 사람이 태백산을 찾는다. 천제단에서는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자시(밤 11시30분~01시30분)에 기도하는 사람을 1년 내내 볼 수 있다.

천제단 아래에서 숨을 고르며 일망무제의 장관을 즐기는데 구름 속에서 기체조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호흡을 조절하는 그들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한 젊은이의 곁에 다가가 백두대간 종주자라고 밝히자, 옛 도인들의 산행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름하여 ‘경공법(輕空法)’. 그는 수련을 통해 경공법을 몸에 익히면 산길이라도 하루에 60~70km를 달릴 수 있다고 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는 짧은 강의를 마치고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납시다”라는 말을 남긴 뒤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산비탈을 뛰어 내려갔다.

천제단 바로 밑에는 단종비각이 있다. 여기에도 애틋한 사연이 깃들여 있다. 단종은 세조반정으로 영월땅에 유배됐는데 당시 한성부윤을 지낸 추익한이 태백산의 머루와 다래를 따서 단종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어느 날 추익한의 꿈속에 곤룡포를 입은 단종이 백마를 타고 태백산에 나타났는데, 바로 그날 단종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 후 이 지역에서는 단종이 죽어서 태백산 산신령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고 주민들은 해마다 음력 9월3일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비각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지어진 것으로 한국불교의 선승 중 한 명인 탄허 스님이 직접 비문과 현판 글씨를 썼다.

단종비각 앞쪽의 망경사는 천제단에서 장기간 기도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도량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산꾼들에게는 망경사 내에 위치한 용정(龍井, 1470m)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샘인 용정의 물은 신라시대부터 천제단에서 제사를 지낼 때 썼다고 하며, 샘의 물줄기가 용궁과 통해 부정한 이가 마시면 물이 혼탁해진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화전에서 광산으로 그리고…

7월21일 새벽이다. 자시와 인시(03시30분~05시30분)에 맞춰 수십 명의 기도자가 천제단을 오르내리느라 망경사의 밤은 부산했다. 5시가 가까워지자 법당에서 예불 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산사의 아침은 그렇게 밝아왔다. 절간의 새벽풍경에 대해서는 아마도 가수 정태춘이 부른 ‘탁발승의 새벽노래’가 단연 압권이 아닐까 싶다.

‘주지스님의 마른기침 소리에 새벽 옅은 잠 깨어라 하니, 만리 길 너머 파도소리처럼 꿈은 밀려나고, 속세로 달아났던 쇠북소리도 여기 산사에 울려 퍼지니, 생로병사의 깊은 번뇌가 다시 찾아온다. 잠을 씻으려 약수를 뜨니 그릇 속에는 아이 얼굴, 아저씨 하고 부를 듯하여 얼른 마시고 돌아서면, 뒷전에 있던 동자승이 눈 비비며 인사하고, 합장해 주는 내 손끝 멀리 햇살 떠올라 오는데…’

새벽 5시30분, 아침을 먹고 배낭을 꾸린 뒤 망경사를 떠났다. 천제단에서 유일사로 이어지는 길은 긴 내리막이라 다소 지루할 것도 같지만 산 중턱에서 주목을 바라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유일사에서 화방재로 가려면 1174m봉을 넘어야 한다. 화방재는 31번 국도가 지나는 길목으로 봄철이면 꽃들이 만발하는 명소다.

화방재에서 수리봉(1214m)과 창옥봉(1238m)을 지나면 만항재가 나오는데, 이 길에서 필자는 수백 마리의 잠자리 떼가 몰려다니는 장관을 목격했다. 만항재에 이르기 직전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국가시설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야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날 수 있는데, 필자가 가까이 다가서자 미군병사 한 명이 경계의 눈빛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던 필자의 눈에 반갑지 않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방사능 유출 위험’.

만항재부터는 함백산(1572m) 줄기다. 함백산은 인근 태백산의 유명세에 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태백산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서 한적하게 걷고 싶다면 태백산보다 함백산을 택하는 것이 좋다. 함백산을 오르다 보면 좌우로 초목지대가 자주 보이는데 오래 전 이곳에 화전민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또 이 지역은 연탄이 주연료로 쓰이던 시절, 전국에서 가장 번성했던 탄광지대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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