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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宗家|金長生 宗宅

禮香 흠뻑 머금은 청백리 선비의 소박한 고택

  • 글: 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禮香 흠뻑 머금은 청백리 선비의 소박한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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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香  흠뻑 머금은 청백리 선비의 소박한 고택

13대 종부 홍용기 할머니와 아들 14대 종손 김선원씨.

‘조선왕조실록’은 김장생이 “고금의 예설(禮)을 취하여 뜻을 찾아내고 참작하여 분명하게 해석했으므로 변례(變禮)를 당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질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장생은 예가 바로 서면 국가도 바로 서고, 예를 잃으면 국가도 혼란해진다고 여겼다. 예를 국가 치란(治亂)의 핵심으로, 예교(禮敎)를 치국(治國)의 핵심으로 본 것이다. 그가 평소 집안 후손들에게 힘주어 강조한 것도 바로 ‘박문양례(博文約禮)’였다. 즉 학문을 널리 익히고 예를 다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송시열로 이어져 훗날 효종의 상복을 둘러싼 ‘예송논쟁’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禮香  흠뻑 머금은 청백리 선비의 소박한 고택
김장생이 1598년 집대성한 ‘가례집람(家禮輯覽)’은 후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박정희 정권 시절 마련된 ‘가정의례준칙’이 널리 퍼지기 전까지 400년이 넘게 통과의례에 관한 대표적인 경전으로 인식됐던 것.

일찍이 김장생은 “예의 진정한 가치는 허위적인 예의(禮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善)을 행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우열을 가리기에 앞서 개개인이 자기 역할에 충실해 조화롭고 열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 아니겠는가. 김장생이 정비한 예학은 여전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침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사계의 기일제례를 모시는 염수재. 한밤중에 제사를 지낼 때 불을 밝히기 위한 관솔불을 돌기둥 위에 올려놓는다.



신동아 200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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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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