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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건국 이후 첫 여성 대법관 된 김영란 판사

“법원·가정, 양쪽 모범생 하느라 눈물 숱하게 떨궜어요”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건국 이후 첫 여성 대법관 된 김영란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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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후 첫 여성 대법관 된 김영란 판사

김영란 대법관은 여성인 자신을 대법관에 임명한 조치가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 가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 단계엔 며느리도 못 알아보지 않던가요.

“마지막에는 며느리와 손자도 못 알아보셨어요. 그런데 당신 속으로 낳은 아들과 좋아하는 따님은 마지막까지도 느낌이 다른가 봐요. 인간이란 참 미묘해서 심층에 뭐가 있는지 우리는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이 필요한데 나도 충분히 못 해드렸어요.”

-강 변호사가 외아들입니까.

“4남3녀 가운데 셋째아들입니다.”

-셋째가 부모를 모셨군요.



“큰아주버님이 외교관이라 외국에 주로 근무하셨어요. 둘째아주버님도 건설회사에 근무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막내아주버니도 외국에 있었죠. 우리밖에 없어서 결혼할 때부터 모시고 살았죠. 가끔 형제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해도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나도 직접 하는 게 편해요. 성격이 자기 삶을 만드는 거예요.”

-효부상을 받아야겠어요.

“절대 안 받을 거예요. 굉장히 힘들어하면서 모셨어요. 자진해서 한 일이 아니고 나한테 주어진 조건이니까 그냥 견뎌낸 거지, 절대 효부 아닙니다. 내 성격이 주어진 조건이면 그냥 그 안에서 어떻게 해결해봐야지, 박차고 나와서 뒤집어엎는 건 못 해요.”

-‘모범생 콤플렉스가 있어서 직장과 가정에서 다 잘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인정하지 않을 때는 전력을 다해서 싸웠다’는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읽었어요. 모범생 콤플렉스라기보다는 모범생 강박증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거 같네요.

“남한테 야단맞는 것이 싫어 매사에 잘하려고 하지요. 자기검열이 강한 거죠. 그게 참 괴롭더라고요. 나는 최선을 다해 잘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신뢰를 안 보내줄 때 싸웠죠. 남편은 자기 기준에서 보는 거죠. 남편이 원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게 결혼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내 자리 지키면서 내가 할 일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남편은 자기가 해달라는 것을 내가 안 해주고 고집을 부리면 처음엔 못 받아들이더라고요. 나중에는 자기도 포기했죠. 강 변호사도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제 자식도 부모 틀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결과적으로 내가 이긴 거죠. 내가 더 고집이 센 건가요? 절대 내가 그의 틀에 안 들어갔거든요.”

-남성우월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강 변호사가 여성과 사회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게 된 것이 김 대법관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내가 독자적인 인생관, 세계관, 라이프 스타일을 고집하니까 싫었겠죠. 그런데 이 사람 자체가 다른 사람의 것을 잘 받아들여요. 폭이 넓어요. 점수를 매기자면 나보다 나은 사람입니다.”

“평생 웃겨주겠다”

강 변호사가 서울지검 형사3부 검사를 할 때 김 대법관은 옆방 검사실에 시보로 근무하고 있었다.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인 강 변호사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세청 공무원으로 부산에서 근무하다 다시 사법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밀수 사건이 터졌을 때 부장검사가 부산세관에 와서 수사를 지휘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단다. 18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한 강 변호사의 합격기가 ‘고시계’에 실렸다. 이 글을 김 대법관이 고시공부할 때 읽었다. 7년 연상의 검사가 순진한 시보를 불러내 점심도 사주고 저녁도 사주며 ‘꼬셨다’(강 변호사의 표현).

-강 변호사에게 ‘김 대법관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할까요?’ 하고 물었더니 자기가 꼬실 때 인상이 어땠냐고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그게 궁금했나 보네. 사람을 잘 웃겼어요. 굉장히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평생 나를 웃겨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결혼한 뒤 웃기는 일은 없고 하도 힘든 일만 생기길래 ‘평생 웃겨준다고 해놓고 약속을 어겼다’고 따졌어요. 웃기기는커녕 눈물만 떨구게 할 수 있냐고 한바탕 싸운 적이 있어요.”

‘왜 남자는 거짓말을 하고, 여자는 울까’의 공동 저자 앨런 피스와 바버라 피스는 ‘눈물은 아내들이 남편으로부터 뭔가 얻어내고 싶을 때 흔히 쓰는 정서적인 공갈협박(Emotional blackmail)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여성들은 남편의 깊은 비밀, 취약점을 적절히 활용해 결국 공갈에 굴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눈물 떨굴 일이 자주 있었습니까.

“부모님 모시고 애 둘을 키우는 데 판사 일까지 많잖아요. 보따리 싸들고 와서 기록 봐야죠. 판사 일을 남편이 도와줄 수 있나요. 만날 기록을 싸들고 오는데 애들은 늦게 자요. 밤 12시에 재워놓고 그때부터 일 시작하죠. 집안에 뒤치다꺼리 할 것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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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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