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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요절복통 호주 바둑 30년 秘史

“아내와 바둑 중 하나를 선택 하라고? 당연히 바둑이지!”

  • 글: 윤필립 재(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요절복통 호주 바둑 30년 秘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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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복통 호주 바둑 30년 秘史

호주의 한인 동포 소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조훈현 9단.

데본 베일리는 물리학을 전공한 고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현재 호주바둑협회 회장이다. 그는 정서적으로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한 살림꾼이다. 30년 가까이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클럽 문을 열고 직접 바둑판을 준비하며, 가장 늦게까지 남아 정리를 마친 뒤에 집으로 간다.

호주처럼 바둑이 잘 보급되지 않은 나라에서 바둑클럽을 꾸려간다는 것은 한국에서 체스클럽을 꾸려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시드니 클럽도 그동안 교회, 회원의 사무실, 학교, 골프코스 클럽하우스, 음식점 등을 전전하다가 최근에야 웨스트클럽의 간부회의실을 모임장소로 사용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살림을 맡아 꾸렸으니 그의 가정이 온전할 리 없다. 특히 그의 첫부인은 바둑을 지독히 싫어해 “바둑과 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한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다. 그는 농담 비슷하게 이혼 당시를 회상했다. 아내의 최종 통고에 그는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나야 당연히 바둑이지”라고 대답했다는 것. 그는 한동안 혼자 살다가 지금은 바둑을 이해하는 동료 교사와 재혼해 행복한 바둑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돈 포터는 일본의 대학에서 오랫동안 동양학을 가르친 학자 출신 거부(巨富)다. 아마 4단의 바둑 고수일 뿐 아니라 프로 수준의 피아니스트이며, 청중을 황홀하게 만들 정도의 가창력을 지닌 멋쟁이다. 자신의 이런 운명을 미리 알았는지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다. 다채로운 삶을 즐기겠다는 인생의 마스터플랜을 마련해놓고 계획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는 학계에서 조기 은퇴하고 태즈메이니아에 대규모 목장을 일궈 수천 마리의 양과 소를 기른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농장을 뛰어다닌 후 피아노를 연주하고 바둑을 두면서 지낸다.

조금 특별한 케이스로, 호주 챔피언십의 단골 우승후보였던 존 파우어 교수가 있다. 그는 한상대 교수와 약 50차례 바둑을 두어 전패하자 그 충격에 바둑서적 저자로 변신, ‘무적의 슈사쿠(Invincible Shusaku)’ (슈사쿠(秀策)는 일본의 전설적인 바둑기사)라는 책을 쓰는 등 세계적인 바둑작가가 됐다. 한편 호주의 한 13급 바둑기사는 기존의 바둑 입문서로는 만족할 수 없어 직접 책을 쓰기도 했다.



‘거리의 악사’ 출신 그렌 디바인(아마 2급)도 한때 호주 바둑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호주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대개 지적 특권층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서민적인 그렌 디바인의 등장으로 새로운 양상이 펼쳐지는 듯했으나, 기성 그룹의 냉대로 끝내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후일담에 의하면 그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단정하지 못한 복장, 거친 언행 등으로 바둑클럽 출입을 금지당했다고 한다. 호주 지식인 그룹의 편협한 일면을 보여주는 씁쓸한 대목이다.

‘이혼에 이르는 病’

바둑이 호주에 보급되면서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이 가정파탄이다. 오랫동안 가족 중심으로 생활해온 호주 아내들로선 주말마다 반상의 신선놀음을 즐기는 남편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주 바둑인들의 이혼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우울해지는 사람이 한상대 교수다. ‘이혼에 이르는 질병’이라는 바둑을 널리 전파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 교수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그는 20년 넘게 호주에서 살다가 수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명지대에 재직하고 있다.

“서울에서 데이비드 허만의 전화를 받았다. 1976년에 헤어졌으니 실로 23년 만에 듣는 목소리다. 곧 한국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대뜸 ‘지금은 바둑을 얼마나 두냐’고 물어보니 아마 3단이라고 했다.

1975년, 내가 호주 멜버른에 살 때 데이비드가 내게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애리조나대에서 수학 석사과정을 밟던 중 바둑을 배워 재미를 붙였다고 했다. 우리는 곧 만났고 치수는 9점, 승률은 70% 정도로 내가 우위에 있었다.

그는 시간만 나면 그의 집에서 7~8㎞나 떨어진 우리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왔다. 바둑을 두기 위해서였다.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데이비드는 빗속에 자전거를 타고 우리집을 다녀간 뒤 심한 몸살을 앓았다. 결국 자동차를 산 데이비드는 가족과 동행하는 일이 잦아졌고 내 아내와 데이비드의 처 자넷은 곧 친한 친구가 됐다.

서울에 도착한 데이비드는 눈물을 글썽이며 오랫동안 포옹을 풀지 않았다. 그런데 데이비드와 함께 온 사람은 뜻밖에도 메리언이라는 이름의 새 아내. 자넷과는 6년 전 이혼했고 그후 5년간 혼자 살다가 지난해 메리언을 만나 재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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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필립 재(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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