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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奇人·名人 ④

춤꾼 운심|“천하 名妓가 천하 명승지에서 죽는다면 그 또한 만족이니”

  • 글: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 ahnhoi@yumail.ac.kr

춤꾼 운심|“천하 名妓가 천하 명승지에서 죽는다면 그 또한 만족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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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꾼 운심|“천하 名妓가 천하 명승지에서 죽는다면 그 또한 만족이니”
[검무는 우리들이 어릴 때에는 보지 못하던 춤인데 수십 년 사이에 점차로 성행하더니 현재는 팔도에 두루 퍼졌다. 기생이 있는 고을에서는 모두 춤 도구를 갖추어 놓았으며 풍악을 울릴 때는 반드시 먼저 검무를 춘다. 이 기생도 이렇듯 어린데 검무를 잘 추니 아무래도 세상이 변했다고 해야겠다.]

1713년의 기록이니 검무의 유행 시기를 아무리 일찍 잡는다고 해도 17세기 중반까지 소급하기는 어렵다. 빨라야 17세기 말엽에 시작해서 18세기 초반에 검무가 전국적으로 유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박물관 소장 ‘평양감사향연도’ 가운데 한 폭인 ‘부벽루연회도’에도 양 손에 칼을 든 두 명의 기생이 검무를 추는 장면이 또렷하고, 19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대박물관 소장 ‘신관도임연회도’에도 검무를 추는 장면이 화폭의 정중앙에 배치돼 있다.

18~19세기의 연회장면을 묘사한 그림에 이렇듯 검무가 등장하는 것은 당시 검무가 공연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여실히 입증하는 대목이다. 유행하기 시작한 지 채 백년도 되지 않은 검무가 공연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검무는 짧은 시기에 일약 공연의 중심이 되었고 그만큼 큰 인기도 얻었다. 정조 시대의 시인인 이기원(李箕元)은 경상감영에서 겨우 여덟 살 난 동기(童妓) 도혜(桃兮)와 쾌옥(?玉)이 추는 검무를 구경하고는 장시를 남겼다. 제 키와 맞먹는 칼을 들고 추는 쌍검대무였다.



같은 시대의 시인인 유득공(柳得恭)도 ‘검무부(劍舞賦)’를 지었다. 그는 26세 때인 1773년부터 74년까지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 지역에 머물렀는데 이 때 검무를 보고 이 작품을 썼다. 두 명의 기생이 추는 검무였다. 정조 때의 호남아 심용(沈鏞)이 평양감사가 되어 대동강에서 향연을 베풀 때도 여러 척의 배에서 모두 검무를 추었다고 한다.

검무의 비약적인 발전과 유행에서 운심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남겨진 자료만으론 검무의 발전사에 있어 그녀의 위상을 정확히 점칠 수는 없다. 그러나 관서 땅의 검무를 추는 기생 가운데 운심의 제자가 많다고 한 성대중과 박제가의 기록으로 미루어 운심이 상당 정도 기여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춤이 끝나니 좌석이 텅 빈 듯 고요”

운심의 검무가 구체적으로 위에서 본 형식과 어떠한 차별성을 갖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춤사위가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대강 짐작할 수 있는 자료는 남아 있다. 앞서 말했듯 박제가가 묘향산에서 본 검무는 바로 운심의 제자가 공연한 것이었다. 제자의 춤을 통해 그 스승인 운심의 검무를 짐작해보자. 박제가가 쓴 ‘검무기(劍舞記)’에 그 춤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다소 길지만 전문을 인용한다. 18세기 검무에 관한 기록으로 이보다 생생하고 중요한 것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기생 둘이 검무를 춘다. 융복(戎服·옛날 군복의 한 가지) 입고, 전립(氈笠·죄인을 다루던 병졸이 쓰던 갓) 쓰고, 잠깐 절하고서 빙 돌아 마주 선 채 천천히 일어난다. 귀밑머리 쓸어 올리고 옷깃을 여민다.

버선발 가만히 들어 치마를 툭 차더니 소매를 치켜든다. 검은 앞에 놓였건만 알은 체도 하지 않고 멋지게 회전하며 손끝만 쳐다본다.

방 모퉁이에서 풍악이 시작되어 북은 둥둥, 저는 시원스럽다. 그제야 기생 둘이 나란히 앞에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참을 논다. 소매를 활짝 펴고 모이더니 어깨를 스치고서 떨어진다. 그러더니 살풋이 앉아서는 앞에 놓인 검을 쳐다본다. 집을 듯 집지 않고 아끼는 물건을 조심스레 다루듯, 가까이 가려다가 문득 물러나고, 손을 대려다가 주춤 놀란다. 물건을 줍는 듯, 버리는 듯, 검의 광채를 잡으려고 얼른 그 곁에서 낚아채기도 하였다. 소매로는 휩쓸어 가려는지, 입으로는 물려는지, 겨드랑이를 깔고 눕다가 등으로 일어나고, 앞으로 기우뚱 뒤로 기우뚱거린다.

그러니 옷과 띠, 머리카락까지 휘날린다. 문득 멈칫하여 열 손가락 맥이 빠진 듯, 쓰러질 듯 다시 일어난다. 춤이 막 빨라져서 손은 칼끝을 흔드는가 하였더니 훌쩍 일어날 때 검은 간 데 없다. 머리를 치켜들고 던진 쌍검이 서리처럼 떨어지는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공중에서 앗아간다. 칼날로 팔뚝을 재다가 헌거롭게 물러선다.

홀연 서로 공격하여 사납게 찌르는 듯, 검이 몸에서 겨우 한치 떨어졌다. 칠 듯하다 아니 치고 서로 사양하는 듯, 찌르려다 아니 찌르니 차마 하지 못하는 듯. 당기고는 다시 피지 못하고 묶은 뒤엔 좀처럼 풀지 못한다. 싸울 적에는 네 자루요, 갈리니 두 자루다. 검의 기운이 벽에 어른거리니 파도를 희롱하는 물고기의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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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 ahnhoi@yumai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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