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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환의 문화오디세이 ⑨

욕정과 순정, ‘스타’의 두 얼굴

“침실에 끌려가‘최후의 것’을 요구당한 스타 복혜숙은…”

  • 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eutekom@hanmir.com

욕정과 순정, ‘스타’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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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정과 순정, ‘스타’의 두 얼굴

스타는 뛰어난 외모와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인 동시에 엄청난 부를 누리는 반신(半神)적 존재로 인식된다. 사진은 세계적 미남배우 그레고리 펙이 열연한 영화의 한 장면.

배우는 극에서 특정한 역을 연기함으로써 특정한 이미지, 즉 페르소나(persona·‘가면을 쓴 인격’이라는 뜻)를 갖게 된다. 그 페르소나를 통해 관객과 수용자를 압도하거나 매혹할 수 있어야 스타가 된다. 이처럼 극 안에서 스타는 압도적인 외모와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며, 극 바깥에서는 엄청난 부와 인기를 누리는 반신(半神)적인 존재로 인식되어야 한다. 일단 이런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면 스타덤(스타로서의 지위)에 오를 수 없다.

그런데 스타는 하늘의 별로 저 천상에 박혀, 신화적인 존재로만 있을 수 없다. 한 작품으로 그럴싸한 이미지와 인기를 얻었다 해도 다음 작품에 실패를 무릅쓰고 출연해야 하고, 허다한 기자들을 만나서 인터뷰에 응해야 할 뿐 아니라, 세인의 편견과 입방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 모두가 그저 반만 신(神)일 뿐인 그들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과정이다. 게다가 극중의 이미지로 얻은 페르소나와 다른 그의 실체는 알려지게 마련이다. 양자 사이의 거리야말로 그 배우나 스타의 스타성을 결정짓는다. 과연 그 거리란 무엇일까?

1925년 동아일보의 루돌프 발렌티노 기사 아래에는 그보다 더 흥미로운 조견표(早見表)가 하나 붙어 있다. 앞에서 말한 스타의 본질-별이면서 별이 아닌 -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조견표는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배우의 ‘전신(前身)’이 무엇이었는가를 적은 일람표였다. 그들의 전신은 평범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운동선수, 주부, 남공(男工), 여공(女工), 이발사, 기자 등은 비교적 그럴 만하거나 평범한 축에 속한다.

그런데 몇몇 배우의 전신은 평범의 범위를 좀 넘어서 있다. 동아일보 기사는 이를 당대 조선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흥미로운 용어들로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여배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포라 네리그라는 유명한 여배우는 ‘기생 포주’였고, 로시 캐쉬는 ‘불량소녀’, 아리쓰 듸리는 ‘귀부인’, 부 니엘은 ‘음지발화(陰地發花)’, 리의 안 쉬는 ‘여승’이었다. 한편 나라리 코코는 ‘양첩(洋妾)’, 마게리트센은 ‘여주의자(女主義者)’, 마리야 야코비니는 ‘미망인’, 마치 폐라미는 ‘상인여식(常人女息)’, 니타 날는 ‘노기생(老妓生)’, 아라나 지모바는 ‘노처녀’였다.

이 기사가 추구하는 것은 그들의 스타성과 실제 사이의 거리가 불러일으키는 흥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의 전직(前職)이 무엇이었는지가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무엇인가? 또는 청순가련형 인기 여배우의 전직이 룸살롱 종업원이었다거나, 이지적으로 생긴 여배우가 기실 머릿속이 텅텅 비어 있다거나 하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무엇인가?



여배우의 前職은 포주(?)

긍정적인 이미지와 의미를 적극적으로 구성해내지 못하는 캐릭터는 절대로 스타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배역의 이미지와 캐릭터를 실제 인물의 이미지나 캐릭터와 혼동한다. 관객이 많이 배웠거나 적게 배웠거나 관계없다. 극중에서 멋지고 영웅적이고 호감 가는 역할을 한 사람은 좋은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환상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환상을 환상만으로 간직하려 하지 않고, 환상인지 실제인지 확인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 확인 작업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사람들이 신문과 잡지사 연예부 기자들이고 파파라치들이며 때로는 팬클럽이며 일상적으로 연예계 뉴스를 전파하는 입소문 전달자들이다.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 나타난 그들의 이미지가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 한편 그들의 성공과 이미지가 그저 신화(神話)나 허구(虛構)이며 ‘기획사’나 매니저와 미디어의 마력에 의해 창조된 것일 뿐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일은 과연 즐거운 일인가? 별로 즐겁지 않다면 왜 그런 일을 꼭 해야만 하는가?

연예계 스타를 다루는 기사는 모두 관객과 팬이 품고 있는 일반적인 인상, 즉 스타가 소지한 페르소나에서 출발해서 그 환상을 재확인하거나 또는 그 뒷면을 허물거나, 반대로 그 신비감이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높이는 임무를 띠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접 그 스타를 인터뷰해야 한다. 스타는 직접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와서 제 얼굴과 음성으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환상과 실재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충격과 흥미는 커진다. 우리는 때로 배신감을 느끼면서 그 기사에서 절대로 눈을 떼지 못한다. 청순하고 귀여운 것으로 인기를 모았던 C양이 무명 시절에 찍은 비디오가 있다거나 숭고한 인술을 편 의녀로 열연한 H양이 동거남과 상습적으로 마약을 복용했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은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다. 그래서 옐로 페이퍼들은 사실을 과장하고 독자의 눈을 현혹하는 과장된 기사를 생산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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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eutekom@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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