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집|카운트다운! ‘화폐혁명’

‘고액권’은 선택, 리디노미네이션은 필수

‘인플레이션 착시’는 일시적, 화폐 선진화가 급선무

  • 글: 황의각 고려대 교수·경제학

‘고액권’은 선택, 리디노미네이션은 필수

3/5
‘고액권’은 선택, 리디노미네이션은 필수

우리나라의 현행 화폐가 도입된 1962년과 비교하면 현재의 경제규모는 2000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비판에는 엄청난 비용이 수반될 리디노미네이션에 나서기보다는 차라리 정부와 중앙은행이 국가경제의 생산력 제고, 국제수지 개선, 물가안정 등에 총력을 기울여 우리 경제의 대외 위상을 높이라는 충고성 주장이 포함된다.

이상의 반대의견에 대해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필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먼저 경기가 부진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은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현재의 경기부진은 내수경기가 실종된 데서 비롯됐는데 그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 부(富)의 편재현상이 심각함을 알 수 있고 이것이 내수경기 침체의 한 원인이다. 부(富)의 양극화는 과거 정부의 특혜금융정책 등으로 조성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최근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30%대의 고금리가 유지돼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자산을 증식할 호기를 맞아 재산을 더욱 늘렸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은행 대출을 이용한 서민들의 재산이 이들에게 이전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뿐인가. 잇달아 초저금리 시대로 돌아서면서 고금리로 본원적 부를 축적한 이들이 곧바로 증권시장에 뛰어들어 한탕씩 하고 빠져나감으로써 주식 투자에서 얻은 자와 잃은 자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생겼다. 그리고 지난 3년여 동안 경기부양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허용한 아파트 투기를 통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는 회복불능의 격차가 생겨나게 되었다.

경기침체와 무관



그렇다고 부자가 된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경제가 이렇게 된 책임은 부자가 된 사람의 몫이 아니라, 정책을 잘못 운영한 정부당국과 당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관료들에게 있다. 침체된 경제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의 기(氣)를 살려 이윤창출을 위해 자유롭게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업이 잘 되어야 고용도 창출되고 소득의 분배도 공평해진다.

또 중요한 일은 국민 모두의 도덕성과 품성을 높여서 협력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다. 노사 갈등이 심화되고, 사사건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는 획기적 기술과 과학의 혁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생산력 증대를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성장률 역시 종전과는 달리 4% 수준을 좀처럼 넘어서기 어려운 경제발전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종합적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현재 경기침체의 주요 원인 또는 촉매제인 것처럼 여기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경기침체와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는 독립적 사안들이다.

오히려 경기가 과열되었을 때보다는 지금과 같은 저물가와 저금리 환경에서 화폐제도 개선조치를 취하는 것이 시기적으로는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3∼4년 후에 시행하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를 하면 신권 제조, 현금입출금기와 자동판매기 등의 교체 및 이에 필요한 신규시설 투자 등을 통해 최소 1조원 이상의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화폐단위 변경으로 예금자들이 자기통장의 돈 규모가 작아진 것으로 착각함으로써 지출을 줄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소비자는 금방 새로운 단위에 적응할 것이다.

두 번째로 반대자들은 화폐단위 변경이 화폐가치 혼란을 야기하고 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화폐단위 조정이 물가상승과 부동산 투기 및 자금의 해외유출을 초래하는 경우란 과거 1962년 화폐개혁 때처럼 예금동결, 일정액 이상 교환금지, 교환시 실명확인 등 부정축재자를 색출해내는 것과 같은 정치적 목적으로 실시될 때에나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최근 논의되는 리디노미네이션의 취지는 과거와 같은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경제적 목적에 있기 때문에 개인 자산보유자가 불안해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또 일부에서는 소수점 이하의 우수리 절상으로 인해 물가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와 같은 우려는 전, 푼 등 보조화폐를 도입해 해결할 수 있다. 3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1년 정도 신·구 화폐 이중가격표시제를 시행하면 단위 변경에 따른 화폐가치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

세 번째 반대논지는 단위 변경 구조 안에서 고액권 발행으로 뇌물 제공 등 부패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부정부패야말로 도덕·윤리의 문제이자 잘못된 관행과 질서의 문제이지, 고액권 발행과는 별개의 사안이다. 고액권을 발행하는 선진국이 고액권이 없는 한국보다 부패가 더 심하다고 볼 수 있는가. 또 고액권 지폐가 아니라도 외화, 상품권, 귀금속 그리고 무기명 예금증서 등 뇌물 대체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도둑이 새 칼을 소유했다고 새로 도둑질을 감행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3/5
글: 황의각 고려대 교수·경제학
목록 닫기

‘고액권’은 선택, 리디노미네이션은 필수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