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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담백 인터뷰

‘국제영화제 킬러’ 김기덕 감독

“이창동 감독이 만들면 ‘사회를 보는 시선’, 내가 만들면 ‘김기덕이 하는 짓’이래요”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국제영화제 킬러’ 김기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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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 선화와 태석이 함께 저울에 올라가자 눈금이 0을 가리킵니다. 베니스에선 이 장면에서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죠.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보시는 분들이 답을 가지고 있죠. 어떤 사람은 ‘저게 뭐야’라며 어이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훌륭한 해석을 합니다.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어요. 물론 감독으로서 저만의 정답이 있긴 합니다. 제 생각과 일치하는 관객도 있겠지요. 이 기자는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한 사람이 더해지면 무게가 늘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무게 자체가 없어졌으니 선화가 태석을 만나며 자기 현실의 무게, 삶의 번뇌에서 벗어난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제 생각에 꽤 근접하네요(웃음). 어떤 사람은 태석과의 기묘한 동거가 선화의 자살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몸무게가 없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물론 우리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말이죠.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결말이 황당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보면 제자와 성관계 갖는 것을 또 다른 제자에게 들킨 ‘문호’의 불안함이 절절하게 드러나죠. 제자가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닐까봐 전전긍긍하면서 멍하게 있는 모습. ‘내일 잘리면 어떻게 하지?’ 같은 오만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뒤엉켜있겠죠. 인간은 이처럼 강한 체하는 약한 존재죠. 홍 감독이 보여주려 했던 게 그런 메시지 아니겠어요?”



-선화는 그동안 김 감독이 그린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다소 벗어난 것 같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남편에게 따귀를 올려붙이기도 하고요(기자시사회 때 이 장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간 김 감독을 비판한 근거 가운데 하나가 마초적인 여성관과 지나친 여성비하였죠.

“아니, 그렇지 않아요. ‘파란대문’ ‘수취인불명’ ‘나쁜 남자’ ‘사마리아’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을 살펴보세요. 이들은 남성보다도 오히려 능동적입니다. 제 영화를 페미니즘의 견지에서 너무 강박적으로 몰아붙이려는 이들이 있어요. 사실 여성비하라는 말만 들어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여성운동을 하려면 포주들이랑 싸우고 집창촌 폐쇄하는 데 애쓰면 되지, 왜 영화 한 편 가지고 핏대를 세우는지….

다른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 제 영화보다 여성비하가 더 심한 경우도 있어요. 가령 술집에서 여자들 껴안고 있는 장면 있잖아요. 대개는 그냥 지나치는 그 장면이 제 영화보다 더 잔인할 수 있어요. 그 여자들은 생각도, 의지도 없는 그저 남자의 소품에 불과하거든요. 저는 파고들어가서 내면이라도 보여주지만.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겐 공격할 대상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공격할 무기도 갖지 못한 사람이 말이죠. ‘섬’을 뒤집어 놓으면 ‘악어’예요. ‘악어’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사람들이 역할이 바뀌어 여자가 권력을 잡은 ‘섬’도 비판하죠. 녹차가 쓰면 쓰다고, 싱거우면 싱겁다고 비판하는 것과 똑같아요.

또 원초적으로 ‘구멍’을 빼앗긴다는 것에만 집착하죠. 하지만 구멍은 메워지는 게 아닌가요. 스스로 메울 수 없잖아요. 그런 질서 자체를 제가 위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운 사람들의 열등감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김 감독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는 뭡니까.

“제 영화는 인간과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영화입니다. ‘나쁜 것이 꼭 나쁜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영화죠. ‘여자를 납치해 창녀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다니’라고 하겠지만 이건 제가 영화를 위해 사용한 재료일 뿐이죠. 남들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릴 때 저는 나무의 진액이나 풀을 쪼아서 그리는 거예요. 그저 다른 사람보다 좀 탁한 재료를 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깡패나 창녀, 기지촌 여성, 혼혈아 등 다른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부분,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두운 부분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거죠.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하 ‘봄’) 이후 제 작품 스타일이 달라졌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 영화의 시나리오는 이미 ‘섬’을 만들 때 썼습니다. 그후에 ‘나쁜 남자’ ‘수취인불명’ ‘해안선’을 만들었죠. ‘사마리아’도 3년 전에, ‘빈 집’도 꽤 오래 전에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그런데도 다들 제가 변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야 제 영화를 받아들이기 수월할 테니까요.”

그는 우리 영화계와 언론, 그리고 관객에게 불만이 많은 듯하다. 아카데미 출품작 결정 번복의 상처도 아물지 않아서일까. 독설이 이어졌다.

“영화가 망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해요. 관객이 들지 않으면 망한 영화죠. 그게 좋은 영화든, 나쁜 영화든 간에. 하지만 1000만이 들면 훌륭한 영화예요. 이게 한국사회의 얼굴이죠. 제 영화를 보고 ‘재수 없는 영화 봤어’라고 욕하는 관객이 많다는 것도 압니다. 자기들보다 못한 인생이 나오면 재수 없는 영화가 되죠. 그 인생이 가깝게는 자신이 될 수 있고 친인척이 될 수 있고, 넓혀 보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인데. 인간을 우등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으로만 나눠서 보기 때문에 제 영화에 ‘아웃사이더’니 ‘언더’니 하는 이상한 수식어를 붙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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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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