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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기행

파란의 한국현대사 ‘현장 회고록’ 펴낸 신영길 박사

“50년 롱런 선거 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내 작품”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파란의 한국현대사 ‘현장 회고록’ 펴낸 신영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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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의 한국현대사 ‘현장 회고록’ 펴낸 신영길 박사

① 반려자인 김정인 여사와 함께.<br>② 제3대 정부통령 선거 민주당 선거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br>③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수십년 동안 기록해온 일기장.

“사건을 조사하던 중 40대 초반의 건장한 사람이 찾아와 자신을 중앙정보부 차장 김 대령이라고 소개한 후 다짜고짜 남산으로 끌고 갔어요. 승강기를 탔는데, 층계 표시가 없어 얼마를 내려갔는지도 모른 채 한참 내려가더니 방에 가두더라고.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갑자기 천장에서 ‘올라오라’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올라갔더니 김 대령이 조사내용은 무엇이고 조사결과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더군. 그러더니 ‘오늘 일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게 하곤 풀어줬어요.”

다음날 출근했더니 조사를 그만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중앙정보부가 주가를 조작해 챙긴 이익으로 민주공화당 창당에 일조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1963년 재무부 이재국으로 자리를 옮긴 후 그는 경제개발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내자조달정책을 주도한다. 내자조달정책의 핵심이 저축에 있다고 생각한 그는 국민의 저축을 늘릴 수 있는 묘안을 찾느라 골몰했다. 그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미군정 시절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면서 ‘육법전서’에서 읽은 일본의 ‘전시국민저축법’이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강제저축조합을 제정한 법률이었다. 상부에 보고하자 곧바로 일본 법전을 번역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번역을 마친 후 5시간쯤 지났을까. 전문과 수식어말고는 한 자도 수정되지 않은 채 그 번역물이 최고회의에서 법률로 통과되어 공포됐다. 이것이 바로 ‘국민저축조합 저축특별법’이다.

이 법안의 골자는 공무원의 봉급을 금융기관 통장으로 지급하고 매월 지급액의 3%를 잔액으로 예탁해두는 것이다. 또 직장단위와 거주지단위로 저축조합을 결성하고 시군단위로 저축추진위원회를 조직해 저축을 장려하며 저축조합의 저축금 운용은 재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특수목적(예를 들어 경제개발계획에 책정된 사업 등)에 한해 융자할 수 있게끔 규정했다. 이를 추진하면서 신 박사는 ‘강제저축의 원흉’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65년 청와대상황실에 파견근무를 나가게 됐고 매주 금요일 대통령 앞에서 브리핑을 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과 개인적 교분을 갖기도 했다.



“대통령과 종로 뒷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정치, 경제뿐 아니라 개인적인 얘기도 나누었어요. 대통령은 주막에 가서 ‘각하’ 대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라고 했지만 그게 쉽게 되나요. 한번은 선글라스를 낀 박 대통령의 음성을 들은 주모가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라고 했어요. 나는 소리 없이 웃었고 박 대통령은 탄로날까 봐 입을 다물었지요.”

어느 날 박 대통령이 그에게 명함을 달라고 했다. 명함에는 ‘재정주사’라는 직함이 찍혀 있었다. 맡은 업무에 비해 직위가 너무 낮은 것에 놀란 대통령은 그에게 승진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지만 1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당시 공무원 세계에서 전라도 출신은 찬밥 신세였어요. 게다가 과거 야당생활을 했던 경험이 발목을 잡은 거죠. 중앙정보부에 있는 신영길 관련 서류가 7장이나 됐대요. 일제시대에는 불령선인, 이승만 치하에서는 요시찰인, 군사정부하에서는 요주의인물로 지목된 것이죠. 대통령이 약속했는데도 승진이 안 된다면 평생 주사를 벗어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967년 설립된 한국주택금고(한국주택은행 전신)에 과장으로 가게 됐지요.”

1973년 입사 5년 만에 광주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이후 대전지점장, 서울 불광동지점장, 미아동지점장 등을 거쳤다. 그리고 정년을 1년 앞둔 1980년 1월30일 서대문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그해 그는 생각지도 못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빨려들고 만다.

말년운 꺾어버린 DJ 구명탄원서

1980년 11월21일 그는 주택은행 동문인 김소환씨와 재야인사 김대중씨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김씨는 그에게 당시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과 내란음모죄 등으로 사형이 확정되어 복역중이던 DJ의 석방탄원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

“DJ의 관선변호인이 적어준 내용을 골자로 작성했는데, 요지는 DJ가 정계를 은퇴하고 전두환를 적극 돕겠다는 것이거든. 나는 작성만 했을 뿐 제출자로 나서진 않았어요. 그래서 문제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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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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