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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기행

파란의 한국현대사 ‘현장 회고록’ 펴낸 신영길 박사

“50년 롱런 선거 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내 작품”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파란의 한국현대사 ‘현장 회고록’ 펴낸 신영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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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일은 그의 말년 명운을 꺾어버리고 만다. 며칠 후 중앙정보부에 몇 차례 연행돼 조사를 받았고 지점장직에서도 해임되고 만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일이 있기 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에서 ‘당신을 이사로 추천했다’는 전화를 받았거든요. 여기저기서 축하인사도 받았죠.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 국보위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어요. ‘DJ의 탄원서를 써주다니 당신, 생각이 있는 사람이오? 이사추천은 고사하고 파면감이나 그동안 세운 공을 참작하여 지점장에서 해임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으니 그리 아시오’ 하더군요.”

1981년 12월 정년퇴직한 신영길 박사는 이후 책을 모으고 글을 쓰는 데 노년을 바친다. 특히 희귀본 서적, 백두산정계비와 간도, 독도, 녹둔도, 대마도 영토 관련 서적 및 자료, 그리고 일제강점기 사료를 모으는 일에 몰두했다. 그 결과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많은 책을 모았고 희귀한 문화재 발굴과 해석을 통해 역사와 서지 연구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그의 시련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1983년 11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35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고, 1989년엔 ‘한국경제백년사료전시회’를 개최했다가 빚더미에 오르고 만다.

“우리나라 경제를 주제로 한 서적 8076권을 모아 전시회를 가졌어요. 그런데 2000만원을 협찬하기로 했던 대한증권업협회에서 갑자기 협찬을 취소해 버렸지요. 나는 사채를 빌려서 전시회 비용을 지불했어요. 전시회를 마치고 나니 빚이 2600만원이나 되더이다. 부득이 귀중 서적들을 정리하면서 사채도 갚고 생활도 했지만, 고정 수입이 없다보니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그의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채무변제 후 남은 잔액 4000만원을 가지고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현재 그가 사는 집 역시 전세다.

그는 지난해 9월 자신이 명예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광운대에 소장도서들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기증했다. 하지만 1975년 집 한 채 값을 들여 구입한 ‘양휘산법’만은 서재에 고이 모셔뒀다. 세종대왕 시절 그의 16대 조부가 지은 책이라고 한다.

박사는 일제침략과 관련해 평생 집필한 논문들을 모아 책으로 낼 계획이다. 중요 논문들만 해도 원고지 3000매가 넘는 분량이라 총 3권으로 펴내야 한다고 했다. “책을 읽을 때와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말한다.

“월간지 3종 필독하라”

“1951년 조병옥 선생과 함께 이시영 선생을 찾아뵈었어요. 이 선생은 제게 ‘내가 신군의 관상을 보니 공직에 출사해도 큰 벼슬에 오르지 못할 거야. 신군에게 이르노니 조·석간 2종과 월간지 3종을 필독하라. 내 말대로 따르면 신군은 억만장자보다, 고관대작 벼슬아치보다 훌륭하고 만인이 존경하는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하셨어요. 조 선생도 ‘신군은 사적 전기(史的傳記) 학문을 전공 연구한다면 큰 사람이 될 것 같다’고 하셨죠. 그래서 50년 전부터 서적을 모으기 시작한 거예요. 특히 일제침략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졌죠.

지금 생각해보니 두 분의 말씀이 다 맞았어요. 큰 벼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가장 애정을 가지고 했던 장서 수집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가 됐잖아요. 인생이란 다 그런 게 아니겠어요?”

신동아 200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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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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