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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고국 무대 선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춤추는 순간 난 ‘강철 나비’가 돼요”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고국 무대 선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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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선화예중에 다니던 딸의 귀가시간에 맞춰 야구방망이를 들고 집 앞 골목을 지켰다고 한다. 더벅머리 대학생들이 키 크고 얼굴 예쁜 여중생을 쫓아 집까지 따라오기 일쑤였다. 공연장 로비에서 만난 재수씨에게 “야구 방망이를 들고 지킨 딸을 터키인에게 도둑 맞아서 어쩝니까” 하고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결혼에 반대해 딸이 슈투트가르트로 오라고 해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걔들이 결혼을 않고 기다렸어요. 나중엔 둘의 결혼을 이해했습니다. 딸을 평생 잘 돌봐줄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이 저 나이에 혼자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은 사위에게 만족합니다. 사위는 명석하고 훌륭한 음악가 집안 출신입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부모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7년을 기다렸다니 효심이 대단하군요.

“처음 결혼 승낙을 받으려고 했을 때 두 분 다 반대하셨어요. 부모님이 안 된다면 못 하는 거잖아요. 제가 툰치에게 ‘부모님 승낙 없이는 결혼 못 한다’니까 기다리자고 하더군요. 툰치가 착하고 이해심이 깊어요. 우리 문화와 부모자식 관계를 존중해줬어요. 아마 엄마 쪽보다도 아빠가 딸을 뺏긴다는 생각에 진짜 가슴 아팠을 거예요. 그것은 신랑감이 한국 국적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터키인이라고 하니 더 난리가 난 거죠.

기다리는 동안 부모님이 툰치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고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 알게 됐죠. 터키인의 풍습과 문화가 우리와 비슷해요. 한 살만 더 많아도 깍듯이 어른 대접을 해주지요.”



-동서양의 중간지대에 있어서 그럴까요?

“터키에 가보면 마치 한국에 온 것 같아요.”

청소 빨래는 내 몫, 요리는 남편 몫

결혼식은 독일에서 간소하게 올렸다. 오전 9시에 친구와 증인을 불러 결혼식을 하고 바로 극장으로 돌아가 오전 10시 반부터 연습을 했다. 저녁에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었다. 독일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실용적으로 결혼식을 치른다고 한다.

-결혼 후 달라진 게 있다면….

“제 마음이 안정됐어요. 결혼의 의미가 저한테는 컸거든요. 사람이 한번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한 사람하고 항상 같이 가야 되는 거잖아요. 저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죠. 부모님이 반대해 힘들다가 결혼을 하니 정신적으로 안정이 됐어요. 신랑이 뒤에서 서포팅을 잘 해줘요.”

수진은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남편을 ‘신랑’이라고 불렀다. 신혼 기분을 이어가고 싶은 것일까.

-49kg 체중을 유지하자면 다이어트에 꽤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연습량이 많으면 그만큼 체중이 줄어요. 저는 잘 먹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 몸에 안 좋으니까. 먹는 것에 대해서는 신랑이 신경을 써줘요.”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어렸을 때부터 고기는 별로 안 먹었어요. 야채를 좋아해요. 스파게티는 여러 가지 소스를 바꿔가면서 즐기죠. 생선은 연어 송어, 다 잘 먹어요. 고기 안 먹는 대신 치즈는 많이 먹어요.”

-남편이 주로 요리를 한다면서요? 가사는 어떻게 분담하고 있습니까.

“신랑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무용수를 하다 부상을 당해 그만뒀어요. 그는 허리와 무릎이 부은 상태에서 무용할 때가 많았죠. 그래서 침술과 지압을 배웠습니다. 제가 아프면 그런 걸 해줘요.

그도 무용수였기 때문에 내가 말을 안 해도 얼마만큼 피곤한지 알아요. 제가 내일 공연해야 되는데 부상당해 괴로워하면 이해하고 위로해주지요.

집안 일, 청소, 빨래, 다림질은 제 몫이에요. 음식은 신랑 일이구요. 저보다 음식을 더 잘하거든요. 요리는 신랑의 취미예요. 서양에서는 보통 남자들이 쿠킹을 더 잘해요.”

필자가 “한국 남자만 요리를 못할 것”이라고 하자 수진이 “아마 그럴 거예요”라며 웃었다. 한국 남자들이 부엌일을 안 하는 건 한국인의 DNA로 체질화한 것 같다.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서도 남자들은 부엌일이나 아이 돌보기를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중국 한족(漢族)은 요리를 여자에게 맡기지 않는다. 요리를 너무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한국에서도 한 세대만 지나면 남성이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는 아마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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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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