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용흘에 대한 FBI의 수사는 국내는 물론 뉴욕지부를 중심으로 LA, 하와이, 워싱턴DC 등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이들 문건 가운데 일부 기록은 까맣게 지워져 있다. 이는 FBI가 당시 특별수사관이나 정보원 또는 밀고자, 그리고 강용흘이 근무했던 기관이나 단체 관계자들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한국인이 있다는 문구도 보였다. 수사관들의 보고서에는 ‘믿을 만한 제보자’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대부분 신빙성이 없는 내용들이었다. 예를 들면 강용흘을 ‘공산주의자’ ‘알코올 중독자’ ‘사기꾼’ 등으로 몰아붙인 내용들과 그의 문학성에 대한 잘못된 평가들이다.
1951년 2월21일 FBI 하와이지부에서 작성한 보고서의 ‘사실개요’란에는 ‘믿을 만한 정보제공자’ ○○○가 제공했다는 강용흘의 신상기록이 적혀 있다. 가장 기초적인 정보인 이 기록에서조차 오류가 발견된다. 기록 중 일부다.
[ 강용흘은 한국의 함경도 출신, 1920년대 학생으로 미국에 입국했다. 그는 먼저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녔고 후에 보스턴대에 입학했다. 셰익스피어 문학에 통달한 수재로서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에 유창하다. 강용흘은 이상주의자이며 몽상가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다. 또 그는 반이승만적이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그리고 비정치적인 문학가로 명망을 떨치고 있다. 1920년대에 펴낸 ‘초당’은 과대평가 됐다. ]
앞에서 보았듯이 ‘초당’은 1931년에 출판된 책이다. 출판연도조차 틀린 것이다. 이같이 잘못된 정보들은 뉴욕이나 LA, 그리고 호놀룰루지부 보고서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진 내용도 다른 식으로 각색되거나 작문돼 있었다.
FBI 호놀룰루 보고서에는 특별수사관이 정보원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강용흘의 신상과 특성이 눈에 띈다.
[ 강용흘이 셰익스피어 문학의 최고 경지에 달했을 때 셰익스피어 37권의 내용과 중국 고전 여러 권을 모두 암송할 정도의 진기한 기록을 달성했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한국어처럼 잘하고 특히 중국 고전에 나오는 시 구절을 잘 쓴다. 강용흘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만약 남한정부가 그에게 영향력 있고 지도력 있는 자리를 주었다면 아마도 그는 진심으로 그 정부를 위해 일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
미개한 나라에서 온 순박한 귀족
수사관은 또 다른 정보원의 말을 인용해 “강용흘은 시를 쓸 때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보헤미안’ 타입의 사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없이 말했다”고 묘사하고 “한국의 정치운동이나 정치활동 등은 전혀 관심 밖이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는 강용흘에 대한 소문도 기록돼 있는데 대충 정리해보면 이렇다. “최근 강용흘이 정부기관에 근무한 경력으로 미 시민권을 획득했다” “강용흘의 저술 작품 중 상당 부분은 부인이 썼다” “‘초당’도 원래 부인이 저술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으며, 강용흘이 뉴욕대에서 가르칠 때 강의 노트도 모두 부인이 써주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 큰아들 크리스토퍼 강은 강하게 부정했다.
“FBI 파일에는 아버지가 책을 썼는지가 의심스럽다고 기록되어 있다. 20세에 미국에 와서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빨리 배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의 글을 보면 각자의 스타일이 나타난다. 나는 어머니의 글과 아버지의 글을 구별할 수 있다. 책은 아버지의 글이다. (중략) 아버지의 문체는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미숙하다. 미국 언어로 보자면 아버지는 미개한 나라에서 온 순박한 귀족인 것이다.”
강용흘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이경원 선생도 대필설에 대해 논평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강용흘은 독특한 작가이다. 이민자이기 때문에 영어문체가 부드럽지 못하다. 하지만 그게 강용흘의 매력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미국인에게서는 그런 문체가 나올 수 없다. 특히 부인 프랜시스 킬리의 문장력은 내가 잘 안다. 아주 전통적인 영문학 타입이고 부드럽다. 강용흘의 문장은 감정이나 소재, 그리고 배경에서 한국 스타일이다.”
미국 내 임시정부 추진 구상
강용흘은 1945년 1월20일 LA에 도착해 그 다음날 저녁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문학강연회를 가졌다. 이 사실도 정보원에 의해 FBI LA지부에 보고됐다. 1951년 3월13일자 FBI LA지부 보고서는 당시 LA지역 한인사회에서 발행된 주간지 ‘코리아 인디펜던스(Korean Independence)’에 실린 강용흘의 강연 기사를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