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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발굴

건국훈장 추서된 ‘잊혀진 혁명가’ 윤자영

사회주의 독립운동 이끈 조선공산당 핵심 리더

  • 글: 김희곤 안동대 교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heegkim2@dreamwiz.com

건국훈장 추서된 ‘잊혀진 혁명가’ 윤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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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 추서된 ‘잊혀진 혁명가’ 윤자영

윤자영의 행적을 입증해주는 문서들. 왼쪽부터 윤자영이 작성한 간략한 자필 이력서,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를 당시의 수형카드, 1932년 중국공산당 대표 앞으로 모스크바 국제레닌대학 입학을 청원하며 제출한 청원서.

오대산 바위틈에 소리 없이 흘러날 때가랑잎에 길이 막혀 갈 곳 잃고 울던 물결지금에 淨江水되어 前路坦坦

淨江水 흐르는 물 너의 기세 건장하다千里長程 먼먼길에 몸살 없이 왔다마는가는 곳 大洋이어든 쉬지 말고대양이 어디메냐 너의 동경 유토피아가다가도 길 잃거든 내 소리 곧 들을세라참소리 내 소리 듣고 正路로만

흘러가는 물결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향후 행로를 다짐하는 글이다. 감옥에 있던 때가 ‘길이 막혀 울던’ 시절이었고 이제는 큰 바다를 그리면서 오직 ‘정로’로만 내달릴 것을 다짐했다.

서울에서 만난 두 신여성

서울에서 활동하던 무렵에 그는 신여성을 만난 것 같다. 서울을 오르내리던 시기로 보이는 1917년 그는 이미 안동시 옥동에 거주하던 안동 권씨 권필향(權苾香)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엔 후손이 없었다. 권씨 부인은 1944년 작고.



그런데 그가 서울에서 석(石)씨 성을 가진 신여성을 만나게 되는데, 석씨는 가까운 동지 강문수의 처가쪽 여인으로 이화여전을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조카 윤동규씨 증언). 강문수의 아내는 간호사 석경덕(石景德)으로 1930년을 전후해 윤자영과 함께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의 연락책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윤자영의 여인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사람을 더 살펴보자. 1930년 무렵 이근영(李槿英)이란 젊은 여성이 그를 가까이서 도왔다. 이근영은 1931년 실제의 함흥 지하조직에 대한 대대적 검거에서 체포당했다. 일제의 기록에 이근영은 당시 나이가 22세, 본적이 함북 길주군, 주소가 중국 간도 용정촌이라고 적혀 있고, 옆에 ‘윤자영의 처’라는 메모가 붙어있다. 근래에 윤자영의 딸이라 자칭하는 인물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적이 있는데, 임경석 교수는 그를 이근영의 딸으로 추정하고 있다(임경석, ‘잊혀진 혁명가, 윤자영’, ‘진보평론’(2000), 326쪽).

윤자영은 출옥 직후인 1920년 6월 서울에서 비밀리에 결성된 사회혁명당에 가입하면서 사회주의에 입문한다. 이 단체는 기존의 신아동맹단이라는 반일혁명단체가 서울에서 제5회 대회를 열고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면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사회혁명당은 러시아에서 결성된 한인사회당과 연합하여 1921년 5월 상하이에서 고려공산당을 결성했는데, 윤자영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흔히 같은 시기에 이르쿠츠크에서 결성된 고려공산당과 구별하기 위해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이라고 부른다. 그는 바로 이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의 내지간부로 선임됐다. ‘아성’ 1호(1921.3)에 그가 기고한 ‘유물사관요령기(唯物史觀要領記)’는 사회주의적 행보를 보여주는 편린이다.

윤자영은 1921년 말을 전후해 망명했다. 1921년 중후반 국내 곳곳을 다니며 조선청년회연합회의 외연 확대에 힘쓰던 그는 1922년 10월 러시아의 베르흐네우진스크에 다시 나타났다. 상하이파와 이르쿠츠크파로 나뉜 고려공산당을 통합하려는 목적의 회의가 열린 것이다.

코민테른이 이들의 통합을 요구하면서 코민테른 동양비서부의 책임 아래 연합중앙간부를 조직할 것을 지시했다. 1922년 1월22일에서 2월1일까지 극동인민대표회의를 거친 뒤 1922년 10월 베르흐네우진스크에서 두 파의 통합대회가 열렸다. 위임장을 가진 128명의 참석자 가운데 윤자영이 속한 상하이파가 68명으로 우세를 차지했다. 윤자영은 의장단의 일원으로 참가했고, 통합회의가 끝난 뒤 이동휘·김성우 등과 대표 자격으로 코민테른 본부를 찾아 모스크바로 갔다.

그러나 회의 결과에 불만을 품은 이르쿠츠크파가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자 코민테른은 고려공산당 통합대회의 결과를 부인하고 상하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해산을 명령하는 한편, 극동부 산하에 코르뷰로(고려국)를 설치했다. “무원칙한 파쟁을 버려라. 민족운동의 지도적 집결을 촉성하라. 민족단체 안에서 일을 열심히 하되 간부 자리를 다투지 말라”는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코르뷰로는 1923년 1월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두 파의 대표를 파견했다. 바로 상하이파의 윤자영과 이르쿠츠크파의 장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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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희곤 안동대 교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heegkim2@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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