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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형폐지운동 나선 전직 교도관 고중렬

“사형집행 200여회 참관, ‘포인트’ 당길 때마다 나도 함께 죽었다”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사형폐지운동 나선 전직 교도관 고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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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 공문이 내려오는 날엔 교도소 분위기가 뒤숭숭해진다. ‘오늘은 누가 형을 집행할 것인가’를 놓고 교도소 보안과장이 배치표를 짜는 데 골머리를 앓는다. 보안과 직원들이 ‘아프다’ ‘지난번에 했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포인트 잡는 걸 피하려 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에 의해 사형수가 죽어나가는 걸 목격한 후 심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직장을 뛰쳐나간 교도관도 있었다.

언젠가는 사형집행 중 실수로 교도관이 사형수와 함께 마루청 밑바닥으로 떨어져 정신을 잃은 일도 있었다. 수동 사형집행 방식이 낳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교도관이 사형수 머리에 흰 주머니를 씌우고 오랏줄을 건 후 미처 자리를 피하기도 전에 다른 교도관이 실수로 포인트를 당겼습니다. 교도관과 사형수가 동시에 지하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죠. 피투성이가 된 교도관은 곧장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그후로는 그 교도관을 형무소에서 볼 수 없었어요.”

사형 반대론을 편 명지대 김철수 석좌교수(헌법학)는 “사형제도는 사형선고인, 사형집행 확인인 등 관련자들의 인간 존엄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외국의 경우 사형 담당 교도관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해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형을 집행할 때도 4명의 교도관이 한꺼번에 버튼을 눌러 누가 사형수를 직접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알지 못하도록 한다. 한국은 1980년대 후반에야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엽기 살인마를 교화하다



고중렬씨는 “사형집행에 참가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술을 마셨다”고 회상한다. ‘차라리 사형수 대신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포인트를 당긴 동료 교도관은 집에 들어가면 아이도 한번 안아주지 않고 끙끙 앓아누웠다고 한다.

고씨 외에도 많은 전직 교도관들을 찾아나섰지만, 그들은 사형을 집행하던 이야기를 차마 꺼내지 못했다. 가슴속 깊숙이 죄의식이 깔려 있는 듯 상처를 건드리는 데 하나같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교도관들의 사형제 폐지 찬성률이 다른 집단보다 낮다는 사실이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언론인과 법관의 경우 54%가 사형제 폐지에 찬성한 반면, 교도관과 의무관은 각각 11.3%, 11.0%로 사형제 폐지 찬성률이 낮았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사형수를 포함한 범죄자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교도관들의 현실 인식 때문일 것이다. 사형제가 없어지면 재소자 관리를 위한 그들의 업무 부담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감옥에서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연일 폭탄발언을 해온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관리해야 하는 교도관들의 경우 심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죄의식 없이 20여명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그를 완전히 교화시킬 수 있을까.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그를 용서해야만 하는 걸까.

고씨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유영철도 교화할 수 있다”며 한 연쇄살인범의 사례를 들려줬다.

“1962년 희대의 엽기 살인마로 불린 조일룡이란 인물이 있었죠. 그는 경찰을 사칭하면서 주로 밤에 데이트중인 남녀만 골라 죽였습니다. 살해된 이들이 16명에 이르렀어요. 젊은 여성을 강간하고 몽둥이로 머리를 내려쳐 죽이는 등 범행 수법도 잔인했어요. ‘1960년대 유영철’이라 부를 만한 인물이었죠.

그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던 건 세상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은 가난하고 불행한데 남들은 짝을 만나 사랑하고 행복한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는 게 견디기 힘들었던 거죠.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도, 가정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온갖 공갈과 행패로 같은 감방 사람들조차 공포에 떨게 만든 그도 결국은 교화됐습니다.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깨닫게 됐기 때문이죠.”

고씨는 조일룡과 섬뜩한 만남으로 인연을 맺었다. 조일룡은 면회하러 찾아온 고씨에게 몰래 만든 칼을 들이댔다. 하지만 고씨는 당황하지 않았다. “당신은 나를 죽여도 결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며 침착하게 설득했다.

다른 교도관이 이 장면을 목격했고, 조일룡은 소란죄로 한 달간 징벌방에 갇히게 됐다. 그러나 고씨는 그를 용서하고 징벌방에서 꺼내줬다. 이후 조일룡은 서서히 변했다. 3년이 지나서는 가톨릭 세례를 받았고, 감방 동료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넬 줄도 알게 됐다. 조일룡은 세상을 떠나며 고씨에게 고마움의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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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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