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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정치인 정동영’의 통일부 장관 ‘실험’ 8개월

화려한 스타트, 飛上은 북한 손에?

  •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taewon_ha@donga.com

‘정치인 정동영’의 통일부 장관 ‘실험’ 8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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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개성공단행은 정 장관으로서는 첫 방북이었지만 북한의 ‘계산된 홀대’로 썩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 듯하다. 정 장관의 첫 북한행은 노심초사 끝에 성사됐다. 정부는 진작부터 북측이 알아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정 장관의 개성방문을 선언했지만 정작 방북승인을 해줘야 할 북한은 행사 전날 오후에야 방북을 승인해 정 장관의 애를 태웠다.

지난해 10월31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노동자회의 실무접촉에서 북측 대표단이 “정 장관은 북한 땅을 한 번도 못 밟는 통일부 장관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면서 정부는 혹시나 북측이 ‘몽니’를 부리지 않을까 내심 조바심을 냈다. 어쨌든 북측으로서는 ‘정 장관 길들이기’에 성공한 셈이다.

행사 당일에도 정 장관에 대한 북한의 대접은 소홀했다. 정 장관이 방북했는데도 북측은 대남경협 책임자인 이종혁(李種革)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보내지 않고 실무책임자격인 주동찬 중앙개발특구 지도총국장만 보냈다.

그나마 주 총국장은 정 장관이 축사를 하는 도중 자리를 뜨는 결례를 저질렀다. 북측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홀대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 장관도 주 총국장과의 환담 자리에서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 등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후에 보도된 것이지만, 북한은 남측이 개성공단과 관련한 행사를 지나치게 이벤트성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돌파력’과 ‘지나친 신중함’의 두 얼굴



정 장관이 통일부 장관을 맡은 데는 정치인으로서 순탄한 길을 걸어왔지만 실제로 행정 경험이나 국가경영 비전을 갖추지 못했다는 세간의 지적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왔지만, 궁극적 목적인 대권에 도전하기에는 ‘3%쯤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한 응전(應戰)이라는 것.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노인폄하’ 발언으로 당의장직은 물론 국회의원직도 버린 정 장관은 통일부 장관직을 강력하게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장관의 정계 입문 이래 10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장관을 보좌하고 있는 A씨는 “정 장관의 통일부 장관 취임은 ‘본인 의지 반, 대통령 의지 반’이 결합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시 정 장관은 국가지도자의 식견이나 안목을 기르는 데 가장 적합한 자리로 통일부 장관을 생각했고, 북핵문제와 통일문제 해결이라는 21세기 최고의 이슈를 정면으로 다룰 수 있는 통일부 장관 자리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동안 ‘리스크’가 높지만 현상을 타파하고 그에 부딪히는 일을 많이 해온 것이 정 장관의 스타일이다.”

뜻밖에도 정 장관의 지인들은 MBC 기자를 그만두고 정계에 뛰어든 것 역시 현실에 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한다.

정 장관과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경희대 국제관계학부 권만학 교수는 “정 장관이 방송기자직을 그만두고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방송직을 정치의 교두보로 삼은 것이 아니다”며 “당시 권력의 핵심에서 호남 출신이 메인앵커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말했다. 즉 정 장관 본인도 지역감정의 희생양이라는 것. 정 장관은 MBC에서 메인앵커가 된 뒤 오직 언론인의 길을 꿈꿨지만, 주변의 상황 때문에 새로운 길을 모색해 떠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정 장관이 정치에 대한 동경과 함께 남다른 현실 참여의지를 가졌던 것으로 증언한다. MBC의 한 동료기자는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1992년 대선 직후 실의에 빠져 2, 3일간 식음을 전폐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또한 정 장관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인 1971년 전북에 유세차 온 김대중 후보의 연설을 듣고 대중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여튼 기성질서에 대한 도전과 성공에 대해 정 장관은 “국민의 뜻이 어디 있는지 판단하고 그 길이 옳다고 생각할 때 과감하게 행동으로 나섰고 그것이 여러 번 맞아 떨어진 것 같다”며 “난 항상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임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앞길을 예측하고 이기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며 “지금까지의 길도 미리 계산하고 행동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은 이 같은 돌파력의 이면에 지나친 신중함도 갖고 있다. 정 장관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 cdy21.net/)에 자신의 단점으로 ‘너무 신중하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정 장관의 다른 참모 B씨는 “정 장관은 주위 사람들에게 득점하려 하지 말고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강조한다고 말했다. 방송 앵커로서 생방송을 자주 하면서 생긴 노하우인 것으로 보이며 신중함이 몸에 밴 것 같다는 평가.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커다란 후폭풍을 일으킨 노인폄하 발언은 ‘신중한’ 정 장관이 저지른 최대의 실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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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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