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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일제침략·독립운동사 연구 태두 신용하 백범학술원장

“골수 친일파 700명 토지 환수해 매국사상 뿌리뽑아야”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일제침략·독립운동사 연구 태두 신용하 백범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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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침략·독립운동사 연구 태두 신용하 백범학술원장

평생을 민족문제 연구에 천착해온 신용하 백범학술원장.

신 원장은 서울대 교수 시절인 1989년 ‘조선왕조의 독도 영유와 일본제국주의의 독도 침략’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일본의 군사기밀자료까지 찾아내 그들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허구성을 폭로, 독도 논쟁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신 원장은 1996년 3월1일 독도학회를 창설하고 12월에는 15개 독도 관련 단체를 묶어 독도연구보존협회를 발족시켰다.

-1999년 한일 어업협정에서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은 것에 대해 비판이 나오니까 정부와 자문학자들이 영토·영해 문제가 아니고 어업만 다룬 것이라고 변명했는데요.

“국민을 속였다고 할 수 있어요. 새 어업협정 제1조에 ‘대한민국과 일본의 EEZ에 적용한다’고 돼 있어요. 표제는 어업협정인데 내용은 EEZ를 규정했습니다. EEZ는 자기 영토를 기점으로 양쪽이 합의하는 중간선을 택하는 것인데 우리는 울릉도가 기점으로 돼 있고 일본은 오키시마가 기점입니다. 오키시마에서 35해리, 울릉도에서 35해리를 넘는 지역을 한국은 중간수역이라고 부르고, 일본은 한일공동관리수역이라고 합니다. 독도는 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입니다. 1951년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는 독도 명칭은 없고 울릉도만 있어요. 그럼에도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 영토가 되는 거죠. 새 어업협정에서 울릉도는 한국 EEZ 수역에, 독도는 중간수역(한일공동관리수역)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라고 하는 해석의 근거를 새 어업협정을 통해 부정한 측면이 있습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가끔 이상한 고지도를 들이대지요. 대마도(對馬島)가 우리 영토라고 주장할 근거가 되는 고문서와 고지도도 많지 않습니까.



“신라 실성왕 때 대마도에 해적이 발호하니까 일본이 군대 주둔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어요.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나오죠. 일본 군영을 근거로 차츰 일본인이 늘어나 일본 땅으로 돼 갔어요.

세종대왕 때 이종무 장군을 보내 영토 회복을 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어요. 대마도에 일본인만 살고 있고 저항이 심해 망설이다가 그냥 철군했습니다. 고려 말, 조선왕조 초에는 일본 사람들이 이주해 뿌리를 깊이 내렸습니다. 대마도가 한국 영토라는 증거도 나오고, 일본 것이라는 증거도 나옵니다. 그러나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증거가 고문헌에 한 건도 안 나오죠. 고문헌이 150∼200건 발굴됐는데 모두 한국영토임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신 회장은 최근 김학준(金學俊) 동아일보 사장에게 독도연구보존협회 회장직을 넘겨줬다. 김 사장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저서를 펴냈고 일본어 번역판도 나왔다.

“동아일보는 새 어업협정 체결과정에 민족적 시각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또 작년에 ‘우리 땅 우리 혼(魂)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라는 시리즈에서 독도를 특집으로 다뤘습니다. 독도 문제에 큰 업적을 갖고 있는 동아일보사와 김학준 사장에게 민족 영토를 지키는 중대한 업무를 맡겨 드리게 된 거죠. 김 사장은 독도에 관한 저술뿐 아니라 논문도 여러 편 썼어요.

독도연구보존협회가 새 어업협정에서 독도가 중간수역에 들어가는 걸 맹렬히 반대해 정부 탄압을 받았어요. 일개 학자보다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권익과 얼을 지켜온 동아일보사의 사장이 맡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친일파 토지는 ‘매국의 장물’

-친일파 후손들의 땅 찾기 소송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끔 승소 사례도 나옵니다. 이런 판결에 고무돼 새로 소송을 내는 사람도 있고…. 국민감정으론 용납하기 어렵죠. 신 원장께선 ‘친일파의 토지는 매국(賣國)의 장물(贓物)’이라고 규정하던데요.

“일본은 1905년(을사늑약)부터 1910년(한일강제합방)까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정치자금을 엄청나게 뿌려 친일파를 양성하고 매수했습니다. 이완용, 송병준은 본래 재산이 없던 사람입니다. 이완용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양자로 들어가 집 한 칸밖에 없었어요. 송병준은 헌병 보조원이었습니다.

병탄(倂呑)에 협력한 사람들에게 일본 작위와 은사금을 주겠다는 조항이 1910년 강제합방 조약에 들어 있어요. 이에 따라 체결 직후 대대적으로 은사금을 뿌렸어요. 지금 개념으로 보면 정치자금이죠. 1912년에 2차로 또 뿌렸습니다. 막대한 자금이었어요.

일제는 1910∼18년 토지조사사업을 벌였습니다. 관청에 문서가 없는 토지는 전부 조선총독부 소유지로 만들었어요. 국토의 절반이 넘습니다. 이것을 은사금을 받은 사람들에게 저렴하게 불하했습니다.

조선의 토지를 빼앗아 친일파들에게 팔아 정치자금으로 뿌린 은사금을 회수한 거죠. 친일세력은 전부 대토지 소유자가 된 것입니다. 조상 때부터 내려온 대지주와는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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