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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 분석

‘좌충우돌, 王변덕’,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속살

개혁 마인드 수혈받은 귀 열린 ‘오렌지’
머리 너무 좋은 게 약점인 소신파 ‘한라봉’

  • 글: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ee@hk.co.kr

‘좌충우돌, 王변덕’,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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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와 소장파는 결국 결별한다. 다음해 2월 소장파는 최병렬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당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무산, 서청원 의원 석방결의안 통과, 관훈토론회장에서 이회창 총재 책임론 거론 등 일련의 리더십 부재 상황이 동기가 됐지만 소장파는 그전부터 최병렬 체제를 무너뜨릴 준비를 해왔다. 남경필 의원의 회고다.

“최병렬 대표가 대표 출마 전에 했던 말과 글은 알고 보니 이전부터 소장파 활동을 함께해온 권영진 박사가 쓴 것이었다. 권 박사가 쓴 글을 최 대표는 읽기만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로선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최 대표의 말은 레토릭에 불과했고 그는 입으로만 개혁을 얘기했다. 대표 취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그 실체가 드러나더라. 우리는 고민 끝에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이회창, 최병렬에 이어 세 번째 선택을 한다. 박근혜 의원이다. 소장파의 눈에 박근혜 의원이 확 들어온 것은 2003년 5월이라고 한다. 소장파 그룹이 분화하면서 만들어진 쇄신모임에 박근혜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장파측 인사의 회고다.

“당시 박 의원을 보고 의원들 사이에서 ‘저 여자, 괜찮네’란 얘기들이 나왔다. 상당히 개혁적으로 보였다. 특히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고 차분히 앉아서 메모하는 모습에 소장파 의원들이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최 대표를 몰아낸 소장파에게 박 의원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소장파 의원들은 2004년 벽두부터 박 의원에게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쇄신 모임 워크숍 등에서 보여준 박 의원의 개혁적 인상이 선택의 중요한 이유가 됐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총선 직전인 2004년 3월 박 대표 체제가 등장하자 소장파는 다시 주류로 부상한다. 17대 총선을 거치면서 한나라당 의석수는 많이 줄었지만 소장파엔 새로운 인물들이 수혈됐다. 박형준, 김희정, 이성권, 정문헌, 김명주 의원 등이 그들이다. 소장파는 ‘새정치 수요모임’을 꾸리며 당내 강력한 주류 개혁세력으로 부상했다.

소장파는 아울러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의원으로 대표되는 당내 비주류의 공격으로부터 박 대표를 엄호하는 세력이 됐다. 그러나 소장파와 박 대표의 밀월 관계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4년 8월4일 박근혜 대표가 ‘임시’ 호칭을 떼고 정식 대표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소장파 조직 ‘새정치 수요모임’은 박 대표와 저녁 회동을 했다. 당시 여권은 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던 정수장학회를 문제삼아 과거사 공세를 펴고 있었다. 저녁 자리에서 소장파 의원들은 박 대표에게 “정수장학회를 정리해 민주화 유자녀들을 돕는 활동에 나서달라”고 건의했다. 경청하던 박 대표가 입을 열었다.

“시기와 절차가 있지 않겠습니까. 1년에 한 번 총회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 믿고 맡겨주십시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다음날 일부 신문에 ‘박 대표, 정수장학회 정리할 듯’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박 대표는 신문 기사를 보고 발끈했다고 한다. 소장파 의원들에게 “바깥에 나가서 이렇게 얘기하면 더는 당신들과 얘기 못한다”는 경고가 전달됐다고 한다. 박 대표는 이날 오후 전여옥 대변인을 통해 “현재로서는 이사장직을 사퇴할 의향이 없다. 사퇴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근혜와의 허니문은 단 5개월

이날 사건이 소장파와 박 대표의 허니문이 깨지는 시발점이라고 당사자들은 회고한다. 이후 국가 정체성 논란까지 겹치며 양측의 골은 깊어만 갔다. 박 대표는 그 와중에도 원희룡 의원에게 ‘대한민국 정체성 수호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원 의원은 이를 거부했다.

국가보안법 개폐논쟁 등 4대 입법 정국은 양측을 화해 불능의 지경으로 내몰았다. 남경필 의원의 말이다.

“박 대표와 결별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박 대표의 이념이 전향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도력의 문제도 드러났다. 정식 보고절차를 밟아 결정된 사항이 마지막에 가서 뒤집어지더라. 어디선가 얘기를 듣고 온 듯했다. 그리고 박 대표도 결국 대권에 욕심을 드러내더라.”

원희룡 의원은 침울하게 회고했다.

“우리가 선택한 대안은 한 달, 두 달도 못 가서 결국 원위치로 돌아가고 말더라. 우리가 믿고 동반할 세력이 이렇게 없는지 한동안 정말 좌절했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이제 누구를 내세울 수도 없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들에 대한 당내 분위기는 더 싸늘해졌다. 세 번의 선택과 세 번의 결별 과정은 ‘잦은 배신’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들의 말발이 더는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한 재선 의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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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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