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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 시인의 시드니 통신

톨로라야 駐시드니 러시아 총영사의 김정일 체제 진단

“시장경제 맛들인 북한, 절대로 사회주의경제 복귀 못한다”

  • 글: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톨로라야 駐시드니 러시아 총영사의 김정일 체제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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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로라야 駐시드니 러시아 총영사의 김정일 체제 진단

특별열차 편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일 일행의 기념촬영. 오른쪽 끝이 톨로라야 총영사.

그러나 김정일한테서 그런 면모만 읽어낸다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모란봉 경기장에서 수많은 군중이 모이는 매스게임 행사가 열렸는데, 행사장으로 입장하기 전에 대기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특유의 조크를 던지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돼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순간, 그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됐다. 나중엔 그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지만 처음엔 아주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문 안에서와 문 밖에서의 모습이 저렇게까지 다를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

군중을 향해 눈빛과 손동작 하나까지 철저하게 연출하는 김정일을 보고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건 내가 김정일과 함께 20일 정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도 느낀 점이다. 그는 아주 진지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리더로서 러시아 친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 면모가 김일성 사후 11년을 거뜬히 버텨내는 저력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곁에서 지켜본 김정일은, 미국에서 빗대는 것처럼 사담 후세인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오히려 로열 패밀리의 면모를 지녔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왕족의 풍모를 지녔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톨로라야 駐시드니 러시아 총영사의 김정일 체제 진단

러시아의 한 공장을 방문한 김정일.

YS·DJ의 차이는 보좌진의 차이



김영삼 대통령은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자주 만났다. 식사초대를 받아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대체로 비서들이 준비한 것 같은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소련과 한국이 수교한 뒤 옐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다. 옐친 대통령이 서울에 도착하기 전날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남한 관계자들과 함께 KAL기 요격사건을 마무리하기로 했는데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아 밤을 꼬박 새웠기 때문이다.

협상은 결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블랙박스가 원인이었다. 우리가 블랙박스 사본을 건넸더니 남한 관계자는 끝까지 원본을 요구했다. 그는 “‘Black box’를 가져오라고 했더니 ‘Blank box(빈 상자)’를 가져왔다”면서 투덜거렸다.

지금 생각해도 KAL기 사건은 아주 불행한 일이지만 부득이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사건 발생 시점이 모스크바에서는 한밤중이었기 때문에 소련 공군은 모스크바의 고위층에 도무지 보고할 방법이 없었다. 미국이나 일본을 통해 한국에 연락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서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라. 한국의 군사분계선 안쪽으로 누군가 들어가서 지뢰를 밟아 죽었다면, 그게 누구의 잘못인가. 당시 KAL은 소련의 극동 군사비밀 지역인 비행금지구역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렇다 해도 참 유감스런 사건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블랙박스 원본을 꼭 받아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당시 여당 대표이던 김영삼 대통령은 그 일로 마음이 상했는지 취임 후 러시아 외교관들을 도무지 찾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미국측으로부터 그가 러시아 외교관과 접촉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과는 자주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아주 박식했고 북한과 러시아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내가 북한에서 근무했다는 것을 알고 아주 세세한 것까지 질문했고 꼼꼼하게 메모했다. 그의 측근 중에서는 특히 임동원씨와 가깝게 지내면서 깊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을 만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두 분보다는 측근들의 가치관이 아주 판이하다는 것이다. YS 측근들은 거의 1970년대 수준의 대북관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DJ 측근들은 매우 전향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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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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