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호

섹스엔 정년도 명퇴도 없다, 필요한 건 열정뿐

[PART 2] 베스트 비뇨기과 전문의들이 말하는 발기부전의 모든 것

  • 글: 이웅희 동서울병원 비뇨기과 교수

    입력2005-04-26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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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실에서 ‘칼잡이’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40대 중반이 되면서 수술할 때 시야가 흐릿해지고 짜증이 난다는 호소를 접할 때가 많다. 이른바 ‘노안(老眼)’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근시 아닌 사람이 더 적을 정도로 안경 쓰는 사람이 많은데, 만약 근시나 난시가 있다면 정확한 시력검사를 통해 교정해야 시력을 회복할 수 있고, 노안이 생기면 돋보기를 사용해서 편안하게 시력보정을 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21세기 첨단의료정보 시대에도 남성 성기능에 관한 한 사람들은 타고난 시력에 노심초사하면서 시력교정보다는 자신의 시력검사 내용과는 전혀 연관도 없는 도수 없는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바라보려 하니 세상이 똑바로 보일 리 만무하다. 뿌옇게 흐린 시야는 자신이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두 달 동안 부부관계가 없었어요. 남편의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것 아닐까요?”

    40대의 부인이 남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선다.

    요즘 진료시간에 이처럼 부부가 함께 성기능을 평가받기 위해 내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정작 남편이 따로 상담시간에 털어놓은 말인즉,



    “밖에서 일주일에 여섯 번 하는데 나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지요.”

    이럭저럭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렇게 두 달이 휙 지나갔다는 것이다. 게다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제 친구 중에 일주일에 저만큼 하는 슈퍼맨도 없다니깐요.”

    간혹 이런 어이없는 경우도 있지만, 부부생활이 불가능한 경우를 조사해보면 대다수가 신체적으로 ‘진작에 검진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중병의 환자들을 역으로 진단하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내가 왜 이럴까?’ 그간 남성들은 갑작스레 성기능 장애를 경험하고서 당황하여 육체적인 병인지 마음의 병인지 고민하면서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 가지 치료제가 개발되고 그 효과가 널리 알려져 성적인 문제도 병원에 와서 상담해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졌다. 더구나 비아그라를 필두로 ‘먹어서 치료하는’ 성기능 치료제 전성시대에 접어들면서 진료실을 찾는 중년 남성이 부쩍 늘었다. 성기능 장애 클리닉에서 환자들을 통해 매번 느끼는 것은 남성에게 음경의 발기현상이야말로 ‘건강의 바로미터’라는 것이다.

    발기부전은 건강을 돌아볼 기회

    1998년 서울 아시아성학회(Asian Congress of Sexology)에 발표된 논문 중 주목받은 주제는 ‘성행위와 뇌졸중’이었다. 이 주제를 연구한 중국 학자의 논문에 따르면 약 5000명의 뇌졸중 환자 중 성행위와 관계된 원인이 1%에 이르고, 그 증상은 단순 두통으로 시작된 경우가 60%로 가장 많았으며, 특히 뇌졸중 환자의 치료 후 회복과정에 성기능의 재활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60세의 P씨는 뇌졸중 치료 이후 빠르게 회복돼 비뇨기과 협진을 통해 6개월째 만나게 되었다. 배뇨 증상과 성기능 문제를 상담하면서 뇌졸중을 앓기 전에는 상대적으로 왕성한 성생활을 했고, 재활 프로그램에서 다른 어떤 면보다 성기능의 회복에 집착했다. 항상 부부동반으로 면담하던 터라 자연스럽게 성기능 장애 치료에 대한 안내를 하게 되었는데, 한달에 한 번 비뇨기과 면담을 하는 날 P씨가 의욕적으로 재활프로그램에 임하는 것에 부인도 만족하게 됐다.

    처음 몇 번은 어색해했으나 성생활에 대한 면담이 자연스러워지면서 P씨의 뇌졸중이 성행위와 연관돼 있고, 그러기에 더욱 성기능 회복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뇌졸중 자체의 영향뿐만 아니라 이후 장기적인 항고혈압제 등의 약물복용과 후유증인 행동의 부자유스러움 그리고 성적 이미지 상실과 같은 심리적 장애 등 극복해야 할 장애요소가 많아 실제 치료엔 어려움이 많다. 그럼에도 대다수 뇌졸중 환자의 재활치료에서 정신적·신체적 건강 요소들과 성기능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운동요법, 심혈관센터 진료 등 다른 모든 재활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질병을 대하는 의사는 무엇보다 그 질병의 치료과정과 예후에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환자의 신체기능 전체와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의 질병을 철저히 진단하고 치료하면서 성생활을 포함한 일상생활의 질적인 면을 고려한 재활치료를 동반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세월이 흐르면 한두 가지 병이 생길 수 있다. 중년 이후 건강유지 비결은 만성적인 질환을 잘 다스리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런 과정으로 돋보기를 쓰게 되는 우리는 분명히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 적절한 도수의 돋보기를 이용해 흐릿해진 시야를 또렷하게 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노안이 와서 돋보기를 쓴다고 인생의 비애를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자연적인 신체적 변화에 동반된 성기능의 변화에 대해선 많은 중년이 가슴 철렁한 충격을 느끼거나 삶의 의욕을 상실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변화에 걸맞은 돋보기는 신체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시 의욕적을 회복하여 환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중년에 돋보기 걸치는 것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독서를 즐기는 재미와 멋을 즐기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평생의 조루증을 보상받기 위해 성관계 때마다 두 번씩 했다는 74세 할아버지가 요즘 들어 두 번째 관계 후의 피곤함이 심각한 문제로 느껴져 진지한 표정으로 내원한 적이 있다.

    “성관계 빈도에는 변화 없으시고요?”

    “일주일에 두 번은 하지요. 근데 두 번째가 피곤해지기 시작했어요. 이거 큰 문제 아닌감?”

    또 다른 69세 환자. 일주일에 세 번, 부인 곁으로 가고 싶은 아주 강렬한 욕구가 비정상인 것 같아 다른 의사에 이어 세 번째로 필자에게 상담하러 왔다고 했다.

    “가고 싶기만 하신 겁니까?”

    “아니요, 세 번씩 확실히 간다니까요.”

    50세 부인이 있는데 35세 애인이 생겨서 힘겹다던 72세 할아버지께는 달리 드릴 말씀도 없고 하여 먹는 약을 정말 조금 처방해 드렸다.

    무도장에서 사교댄스 강사로 일하는 65세 남성이 있다. 상대자가 너무 많아 감당하기 어려워 내원한 그가 자가주사요법 처방을 받고 행복해하며 진료실을 나설 때 인사를 했다.

    “좋은 거 전공하셨습네다.”

    그나저나 비뇨기과 의사 이전에 인간적으로 부탁 말씀 좀 드려야겠다.

    “그렇게 사시는 비결 좀 알려주고 가세요. 다른 환자들한테 알려드리게요(실은 저부터 배워야겠기에…).”



    성기능 장애 환자들과 면담하며 느끼는 점은 의사와 환자가 현실감각을 공유하여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뇨, 고혈압, 장기복용 약물, 외과적 수술 병력과 같이 명백한 위험인자들을 찾게 되면 생활습관의 개선만으로도 많은 경우에 성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즉 관심을 가지고 성기능에 대한 변화에 대처하면 치료를 요하기 전에 기능 개선을 기대할 수도 있다. 또는 치료의 적응 여부에 따라 약물·주사요법을 선택하고 투약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에 수술적 치료를 적용하면 기능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치료과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면담에서 현실감각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신체적·심리적 요인이 뚜렷한데도 우리의 몸과 마음 상태, 성기능을 완전히 별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성기능 환자를 의뢰하는 다른 진료과목 의사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부분 자신이 전공한 분야의 질환은 치료되고 조절이 잘 되는데 정력이 회복되질 않으니 협조를 바란다는 편지를 동봉하곤 한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건강상태와 그 바로미터인 성기능이 어찌 별개의 것일 수가 있겠는가.

    환자 : “정력이 부실해서요.”필자 : “약 드시는 게 있나요?”환자 : “당뇨는 약으로 조절하고, 혈압약도 한 알씩 먹지요.”필자 : “그게 원인인데요.”환자 : “의사가 전혀 지장 없다고 하던데요?”필자 : …….

    오늘도 필자는 조용히 외친다.“열정이 있는 한 섹스엔 정년도 명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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