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열린우리당 ‘23대 0’ 大재앙 속사정

생뚱 공천, 헐렁 조직, 목 뻣뻣, 민심 깜깜…

  • 글: 문소영 서울신문 정치부 기자 symyn@seoul.co.kr

    입력2005-05-23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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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23대 0’ 大재앙 속사정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등 상임중앙위원들이 5월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성호시장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시장 상인들과의 ‘낙선사례’ 간담회에서 단체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재보궐선거가 치러진 4월30일 밤 9시. 문희상 의장을 비롯해 염동연·한명숙·이미경 상임중앙위원과 박기춘 사무차장, 정세균 원내대표, 원혜영 정책위원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TV 선거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 당사 대회의실로 속속 모여들었다. 다들 자신감에 차 웃고 있었다.

    박기춘 사무차장은 이날 기자에게 “예상대로라면 국회의원 재선거 여섯 곳 중 적어도 두 곳, 잘하면 세 곳까지는 자신한다”고 했다. 박 사무차장은 “지난밤 여론조사에서 경북 영천과 충남 공주·연기에서 승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투표율에 따라서는 충남 아산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것은 기자가 “결과가 ‘5(한나라당)대 1(무소속)대 0(열린우리당)’이 되는 게 아니냐”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당 지도부는 “2승은 무난하다”고 자신했다. 총선과 달리 방송사의 출구조사가 없기 때문에 당의 여론조사에 의존한 예상결과였지만 이변이 일어나리라곤 보지 않았다.

    그로부터 30여 분 뒤, 개표가 시작됐다. 예상과 달리 국회의원 선거구 여섯 곳 중 경북 영천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선두에 나섰다. 열린우리당이 정권의 운명을 걸고 ‘수도권 이전’을 추진한 충청권 두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 믿었던 충남 공주·연기에서마저 열린우리당 후보가 무소속 정진석 후보에게 밀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염동연 의원은 지도부 중에서 가장 먼저 자리를 뜨면서 뒤따라오는 기자들에게 “여당이 재보궐선거에서 이기는 것 봤냐”고 말했다. 자리를 지키는 지도부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다. 웃음도, 대화도 중단됐다.



    잠시 분위기가 반전됐다. 개표가 지연되던 경북 영천에서 열린우리당 정동윤 후보가 초반 개표에서 박빙의 리드를 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뒤편에서 TV를 시청하던 당직자들 사이에서 “영천만 이기면 나머지 선거구에서 다 져도 이긴 것이다”면서 격려성 위로의 말이 나왔다. 일부 영남 출신 당직자는 큰 목소리의 부산 사투리로 “앞으로 우리당은 영남당이 되는 것 아니냐”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계파간 서로 책임전가

    박빙의 리드는 그러나 오후 10시30분을 지나면서 무너졌고, 한두 차례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어느 순간 한나라당 후보에게 완전히 뒤집혀버렸다. 일부 당직자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영천으로 전화를 해 남은 투표함이 몇 개며, 어느 지역이 남았는지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보수적 성향의 아파트 주민들 표만 남았다”는 부정적인 답변이 들려왔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오고, 당직자들은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문희상 의장과 지도부가 정 후보가 480여 표 차이로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는 것을 지켜보다가 당의장실로 옮겨간 지 5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날 열린우리당의 패배는 국회의원 선거구 여섯 곳에서 그치지 않았다. 종합 전적 무려 23대 0이다. 국회의원 선거구 여섯 곳, 시장·군수·구청장 선거구 일곱 곳, 광역의원 선거구 열 곳 등 정당 공천이 이뤄진 23개 전 선거구에서 단 한 곳도 승리하지 못하고 ‘전패’한 것이다. 도대체 왜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졌을까.

    4·30 재보궐선거 직후 당내에서는 전패의 원인을 놓고 계파별로 책임을 전가하며 한바탕 승강이를 벌였다. 유시민 의원을 비롯한 개혁·재야파는 “정체성 없는 실용주의 노선 때문”이라고 지도부를 공격했고, 유재건 의원 등 ‘안개모(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는 “실천 없는 탈레반 식의 ‘말로만 개혁론’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문희상 의장과 염동연 의원 등 민주당과의 합당 필요성을 강조하는 실용파는 ‘호남 유권자 분산 등 지지기반 취약론’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장수’와 유시민 ‘장교’가 싸우면 필패가 분명하고 따라서 ‘장수’급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에 조기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계파에 따라 이념적 지향에 따라 원인 분석이 제각각인 셈이다.

    문희상 의장도 이 같은 당내 분위기를 반영하듯 5월2일 ‘서울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선거 패인에 대해 “한 가지만 원인이 아니다. 선거에 패하려면 모든 원인이 다 작용하게 마련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분석들이 ‘23대 0’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열린우리당에선 ‘23대 0’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엿보이지 않을까.

    선거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영천을 비롯해 최고 3석 이상 확보한다”고 선전하고 다녔다. 3석은 과반을 회복하지는 못하지만 국회 운영을 다소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이른바 ‘매직넘버’였다.

    당 자체 여론조사에서 경북 영천은 한때 15%포인트 이상 한나라당을 앞서 나갔다. 비록 선거 3~4일을 앞두고 양당간 격차가 좁혀졌지만, 여전히 4%포인트 정도의 리드를 지켰다. ‘동진(東進)’을 꿈꾸는 당 지도부가 기대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보좌관들의 분석은 달랐다. 선거를 이틀 앞둔 28일부터 보좌관들 사이에선 ‘전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대세를 형성했다. 한 재선 의원의 보좌관은 “여섯 개 국회의원 선거구 중 열린우리당이 선두를 달리는 곳이 경북 영천뿐이기 때문에 결국 ‘전패’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천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하루를 묵으면서 한나라당 지지를 호소할 때마다 지지도가 2~3%씩 올라간다”면서 “박 대표가 영천에 사활을 건 만큼 열린우리당 후보의 승리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영남, 특히 TK(대구·경북)에서 열린우리당이 이길 거라는 보도가 집중되면서 영남 보수파의 표가 결집하지 않겠냐”고 비관적인 전망을 덧붙였다.

    그의 우려는 실제 영남 유권자들의 선거 투표율에 그대로 나타났다. 전체 투표율이 33.6%에 불과했고 돈봉투 파문이 일었던 경기 성남·중원은 29.1%의 저조한 투표율을 보인 반면, 경북 영천은 59.1%로 총선에서나 가능한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표 결집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영남에서 투표율이 높을 경우 열린우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은 개표 결과와 일치했다. 전병헌 의원은 이날 밤 “간밤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이 영천에서 이기는 것으로 나와 안심했다가 투표율이 60%에 가깝다는 보고를 받고 불길한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뒤늦게 털어놨다.

    사실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원 재선거 여섯 곳 중 경기 포천·연천과 경남 김해 지역구에 대해서는 이미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 한나라당 지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주된 관심 지역은 경기 성남·중원, 충남 공주·연기, 충남 아산, 경북 영천 네 곳이었다. 여론조사 결과도 좋았다. 당 지도부는 재선거가 여당에 불리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소 2석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선거 막바지로 가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중간에 후보가 바뀐 충청권 두 곳은 시간이 흐르면서 여론이 악화돼 우세에서 혼전양상으로 뒷걸음질쳤다. 또 경기 성남·중원은 선거 막판, 열린우리당 조성준 후보측에서 돈을 뿌린 사실이 드러나자 젊은 유권자들이 돌아섰다. 이 지역 투표율이 가장 낮은 것은 바로 열린우리당의 이 같은 ‘역행’에 실망한 젊은 유권자들이 기권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돈 안 쓰는 선거를 표방하는 한편, 매표행위를 신고할 경우 500배를 포상하는 법을 통과시키면서 ‘선거혁명’을 일궈내던 개혁적인 당의 면모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1년 사이에 오히려 개혁과는 거리가 먼 당이 돼 있는 듯했다.

    “원래 수비가 어렵다”

    선거 초반 영남지역에서는 해볼 만했다. 당 지도부는 TK 지역인 경북 영천에서 당 지지도가 한나라당보다 15%포인트 이상 높게 나오자 4·30 재보궐선거를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장으로 삼아보자는 기대와 욕심을 가졌다. 구청장선거가 치러진 부산 강서구도 막판으로 가면서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강세를 보이는 등 영남에서 지역주의가 무너지는 듯한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타났다.

    4월25일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몇몇 기자와 만나 “경북 영천(영남)과 충남 공주·연기(충청)에서 승리하고 광역단체장인 목포시장(호남)을 확보하면 정치적 의미가 크지 않겠냐”면서 “여론조사 결과가 아주 낙관적”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은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한명숙 의원도 여러 차례 비슷한 기대를 피력했다.

    열린우리당 당직자는 “경북 영천을 비롯해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 우호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지도부가 자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면서 “이번 재보선 전패는 지역 민심을 체감하지 않고 여론조사에만 기댄 오판이 부른 재앙”이라고 말했다.

    진솔한 목소리는 충남 공주·연기와 아산지역을 뛰어다닌 선병렬(대전 동) 의원에게서 나왔다. 투표 당일 TV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선 의원은 충청권에서 한나라당과 무소속에 각각 1등을 내주자 “원래 수비가 어렵다” 하면서도 “이번 선거로 크게 깨달은 것이 있는데, 잔재주 부리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언제 숫자로 정치했나. 국회 과반수 안 돼도 문제없다. 과반일 때도 개혁입법 처리 못하지 않았나. 의지가 문제다.” 그의 말에선 자조(自嘲)가 묻어났다.

    열린우리당 ‘23대 0’ 大재앙 속사정

    4월27일 경북 영천시 완산시장 장날, 영천 재선거에 출마한 정희수 한나라당 후보의 지원유세를 벌이고 있는 박근혜 대표.

    여당이 자존심을 건 충청지역에서조차 패배한 원인에 대해 선 의원은 “두 곳 모두 공천이 문제였다”고 털어놨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한나라당 출신인 염홍철 대전시장을 영입하는 등 나름대로 애는 썼지만 후보선정 과정이 문제였다. 기간당원의 손으로 뽑은 공주·연기의 박수현 후보는 허위경력을 기재한 것으로 드러나 탈락했고, 당의 정체성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아산지역 후보로 영입했던 자민련 출신의 이명수 후보는 당적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 뒤늦게 밝혀져 중도 탈락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젊고 개혁적인 세력이 등을 돌리거나 떠났다.”

    선 의원은 “나도 박수현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공천과정을 되돌아보면 참 부끄럽다”면서 “충청에서 당의 정체성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개혁적 성향의 예민한 유권자들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 결과 이길 수도 있었던 성남·중원에서마저 패배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죽지도 않았는데 묏자리를 파?

    선병렬 의원은 선거과정에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공주·연기에서 지원유세를 다니다보면 열린우리당 후보가 박수현씨에서 이병령씨로 교체된 사실조차 모르는 유권자를 적잖이 만났다. 또 일부 유권자들은 박수현씨가 허위경력을 기재해서 탈락한 것이 아니라 중앙당에서 일방적으로 후보를 바꾼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박수현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교체된 이병령씨의 선거를 도와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선 의원에 따르면 조직도 엉망이었다. 공주지역 선거를 돕는 선거운동원이 연기지역 출신인가 하면, 연기 출신은 공주에서 선거운동을 도왔다. 유권자를 효율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조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직은 사실상 가동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태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지속됐다.

    선 의원은 “시골에서는 선거운동원이 유권자와 친밀해서 선거 당일 투표하러 가자고 바람도 잡고 해야 하는데, 유권자와 지역이 다르다 보니 그럴 만한 형편이 못 됐다”고 털어놨다. 결국 충청지역의 투표율은 매우 저조했고, 그 결과 조직선거에 강한 한나라당 후보를 도와주는 꼴이 됐다.

    경기 포천·연천에서는 더 심했다. 조직 자체가 ‘올 스톱’ 상태였다. 이 지역은 이철우 전 의원의 지역구다. 이 전 의원이 지난해 연말 ‘간첩논란’에 휩싸여 곤욕을 치를 때부터 염동연 의원실의 보좌관 출신인 장명재 후보가 지역구를 넘봤다. 이 전 의원으로서는 기분 좋을 리 없다.

    이인영 의원은 “대법원 판결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현역 의원의 지역구에 같은 당 조직원이 들어오는 것은 사망선고도 내려지지 않았는데 묏자리 파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그러니 아무리 온순한 이철우 의원이라도 조직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냐”고 반문했다.

    이 전 의원은 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자신의 지역구 후보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보의 태도가 문제였다. 심사과정에서 “시간이 표인데, 질문할 것이 있으면 빨리빨리 물어보라”는 등 안하무인 식으로 행동해 공천심사위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탈락했다는 게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의 설명이다.

    선병렬 의원은 중앙당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이번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중앙당 당직자들은 아프게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당에서는 가시권에 들어온 후보들을 검증할 수 있는 당내 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 의원은 이어 “열린우리당 당원들이 투명한 선거를 요구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엄정한 선거관리를 하고 있는 만큼 중앙당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필요하다면 10억원이든 100억원이든 들여서 외국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지도부부터 말단 당직자까지 경영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당내 일각에서는 일부 후보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다는 평가다. 모 후보는 ‘목이 뻣뻣하다’는 소문이 중앙당까지 파다했다. 선거운동 기간 이 후보의 지역구로 파견을 나가 선거운동 과정을 지켜본 한 당직자는 “이 후보가 재래시장 원단가게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 신발을 벗고 유권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제가 후보인데 이리 와서 악수 좀 하시죠’라고 하더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길거리에 좌판을 펼쳐놓은 상인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선 채로 악수를 청하는 등 유권자가 친근감을 전혀 느낄 수 없게 하더라는 것.

    4월30일 당의장실 안에서 선거결과를 지켜보던 문 의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역시 당선 가능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씁쓸해했다고 당시 자리를 함께했던 한 의원이 전했다. 당선을 최우선해서 자민련 출신 후보, 민정당 출신 후보 등을 전략 공천하고, 충청권에서 선거를 돕기 위해 한나라당 출신 인사를 영입했으나 패배한 마당에 나온 발언이었다.

    이는 유시민 의원, 선병렬 의원 등 개혁파가 “당의 정체성을 잃은 공천에 문제가 있다”며 드러낸 문제의식과는 차이가 크다. 최근 당 게시판에서 실용파를 ‘란닝구’로, 개혁파를 ‘빽바지’로 서로 비난하면서 싸우는 원인이기도 하다. 즉 ‘공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는 일치하지만, 왜 공천이 잘못됐는가에 대한 시각과 처방이 전혀 다른 것이다. 개혁파는 기간당원제를 더욱 강화하자고 주장하고, 실용파는 기간당원제가 피선거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혁파는 지난 2월1일 23만8000명에 달하던 기간당원 수가 5월 현재 15만명 수준으로 9만명이나 격감하고, 수천명의 기간당원을 모집한 모범 지역인 공주·연기 재보선에서 여당이 무참히 패배한 사례를 지적하며 기간당원제가 단순히 선거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인영 의원은 “지난 6개월간 2000원을 낸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당원자격을 부여하니까 선거가 끝나자마자 당원이 썰물 빠져나가듯 한 것 아니냐”면서 “이렇게 느슨한 방식으로 기간당원제를 유지할 경우 돈 있는 특정 후보들이 당원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봉주 의원도 “지도부가 당의 정체성과 상관없는 후보와 인물을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입하는 편의적·실용적 공천을 해서 재보선 전패를 불러왔다”면서 “당의 체질과 노선이 개혁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재건·조성태·이계안·조배숙 등 안개모 소속 의원 16명은 5월4일 모임을 열고 “일부에서 재보선 패배의 원인이 개혁 중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후보자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기간당원제 확대를 주장하며 재보선 패배의 원인을 정체성 훼손에서 찾는 당내 개혁파를 겨눈 발언이다.

    실용파 ‘9:6’ 혁신위 장악

    이와 관련, 안개모 간사인 박상돈 의원은 “민주노동당은 기간당원 수와 실제 선거에서의 지지도가 일치하지만,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 수는 실제 선거에서 지역 유권자의 정서를 대변하지 못한다”며 “이상론에 치우친 기간당원에 의한 공천제 개선은 필수”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책임 있는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른 후보 선정 방법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 문제는 당내 혁신위(위원장·한명숙 상임중앙위원)의 손으로 넘어갔다. 혁신위는 앞으로 3개월 동안 ‘기간당원제 유지와 공천제 보완’을 전제로 구체적인 보완책을 마련키로 했다. 그러나 혁신위를 구성한 16명의 계파 및 성향을 분석해볼 때 혁신위가 내놓을 답은 분란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확산시킬 개연성이 크다. 개혁 성향의 인사들이 수긍하겠느냐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 혁신위의 성향별 분포를 보면 위원장인 한명숙 의원은 중립을 지킬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실용적 입장의 위원이 9명, 개혁 성향의 위원은 6명으로 실용적 입장이 과반수를 넘는다.

    개혁 성향 위원은 유시민 부위원장을 비롯한 김희숙 중앙위원, 이상선 전국당원협의회총연합회 준비위원장(이상 개혁당 출신), 우원식·유승희·최규성 의원(이상 재야파)이다. 반면 조배숙·이계안 의원(이상 안개모), 박병석·민병두·박기춘 의원(이상 구당권파), 주승용·우상호 의원, 국참연의 이상호 청년위원장과 전병원 경북도당 위원장은 실용적 입장으로 분류된다.

    아물지 않은 후유증

    한편 재보선이 치러진 지역도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재보선 일주일 뒤인 5월6일 경북 영천에서 만난 한 젊은 유권자는 “할배(할아버지)들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젊은 유권자가 많은 영천시에서는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높지만, 시 외곽 시골의 60~70대 유권자가 선거 막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지원유세 영향을 받아 투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결국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영천 선거 결과를 보고 내년 5·30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지만 현지의 분위기는 다르다.

    20대 중반의 한 택시기사는 “이번처럼 열린우리당을 밀어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어도 못 이겼는데, 내년 선거는 더 어렵다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선거가 다시 ‘지역주의 구도’로 돌아갈 경우 유권자들이 마치 블랙홀처럼 한나라당 쪽으로 빨려들어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최대 격전지인 영천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7일간이나 머물며 선거운동을 했듯이 열린우리당 지도부도 그런 성의를 보였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대전시당도 심각한 선거후유증을 겪고 있다. 염홍철 대전시장을 영입한 데 대한 대전시 당원들의 반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당위원장인 박병석 의원은 염 사장의 입당자격 여부를 논의할 상무위원회 자체를 소집하지 않고 있다. 선병렬 의원은 “선거에서 돈 뿌리고, 정치 철새를 영입하니까 개혁적인 당직자들이 선거에 열의를 다하지 않은 것 아니냐”면서 “당직자와 지지자 등 집토끼를 먼저 잡은 뒤에 산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열린우리당 체제로는 내년 5·30 지방선거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당 지도부는 이번엔 패배했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선 압승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충청권의 민심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박병석 의원은 “행정중심도시가 들어서는 공주·연기 지역 가운데 토지수용이 70~80% 이뤄진 연기에서는 열린우리당이 몇천표 차로 이겼지만, 공주에서는 졌다”며 ‘상대적 박탈감’을 패인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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