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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한국혼 ⑥

‘일본인보다 더 일본적인 한국인 작가’ 다치하라 세이슈

“남들은 정면으로 돌파했지만, 나는 빙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어”

  • 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일본인보다 더 일본적인 한국인 작가’ 다치하라 세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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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동시에 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8월. 다치하라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지만, 이회성은 그날의 한마디를 가슴 저리게 기억하고 있다. 다치하라는 또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김달수(작가)와 허남기(시인)는 곧은 직선으로 (정면돌파하듯) 갔지만, 난 빙 돌아서 에둘러 갈 수밖에 없었어.”

김달수와 허남기는 당대 일본이 알아주던 재일 한국인 작가와 시인. 그들은 한국어로 작품을 쓰고 재일 한국인 문제를 정면에서 다뤘다. 하지만 다치하라 본인은 그럴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일본어로 글을 쓰고, 내용도 일본적인 에로티시즘과 엔터테인먼트로 일관해야 했던 콤플렉스를 그렇게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끊어진 감정의 끈

김윤규는 1926년 경북 안동군 서후면 태장동에서 태어났다. 마을 가까이에 ‘천등산 박달재…’로 시작하는 노래로 유명한 천등산(天燈山)이 있고 봉정사(鳳停寺)라는 절이 있었다. 아버지 김경문은 봉정사의 승려였다. 김경문과 어머니 권음전 사이에서 김윤규가 생겼다.



대처(帶妻)승을 받아들이는 절이 아닌 봉정사에서 어떻게 승려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는지는 미스터리다. 윤규 아래로 완규도 낳았으므로 김경문의 결혼이 비밀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경문은 사실 권음전과 결혼하기 전에 전처와의 사이에 규태라는 아들도 낳았다. 아무튼 윤규의 태생부터가 복잡하고 기이하다. 태생의 모순은 그가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뜰 때까지 이어진다.

어린 윤규는 아버지를 따라 봉정사에 드나들면서 글을 익히고 선사에게 사서오경을 배웠다. 이것이 원체험으로 자리잡아 훗날 그가 간소하고도 고고한 미적 감각을 글로 표현하는 바탕이 된다. 그는 그 시절에 대해 “봄이면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여름이면 시냇물에 참외를 담가먹던 고향이 그립다”고 회상할 정도로 고향의 추억을 곱게 간직하고 있었다.

193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는 윤규와 동생 완규를 데리고 고향 안동을 등진다.

1935년 봄, 어머니는 동생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다. 다치하라의 소설에서 어머니는 ‘속된 여자’ ‘복잡한 여자’로 묘사된다. 아버지가 죽은 뒤 곧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낳았지만 그 남자와 재혼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 권음전의 일본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아이를 데리고 언니의 연고지인 교토와 오사카를 전전하며 생계를 꾸렸다. 오사카에서는 메리야스 공장의 공원 노릇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쥐꼬리만한 월급이어서 어린 동생 완규는 소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유리공장에서 심부름을 하며 밥을 벌어야 했다.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던 권음전은 가나가와현 요코스카(橫須賀)시에 정착해 노무라 다쓰조(본명 王命允)라는 고철수집업자와 재혼해 노무라 오토코(野村音子)가 된다.

어머니가 일본으로 가버릴 때 윤규는 의사이던 외삼촌 권태성씨에게 맡겨졌다. 이때부터 외삼촌 집에서 구미소학교에 다니게 됐다. 이때 같은 학교 상급반에는 박정희가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이태 뒤인 1937년, 윤규는 일본의 요코스카에서 어머니와 재회한다. 어머니를 다시 만나기까지 열 살 전후의 윤규는 굶주리고 시린 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구미에서 보낸 고독하고 고단한 2년8개월은 ‘겨울의 추억’이라는 작품에 녹아 있다.

‘저 바람마저 어는 듯한 겨울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초조하고 불안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사는 게 괴롭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던가.’

외삼촌 권태성이 제주도의 병원으로 부임해 간 뒤, 텅 빈 병원에 홀로 남은 윤규의 생활은 ‘겨울의 추억’에 나오는 시게유키 소년의 생활로 치환되어 묘사된다.

보리밥과 짜고 맛없는 김치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저녁식사용으로 빵을 사다가 알코올 램프로 삶은 달걀과 같이 먹고 자곤 했지만,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어 소년은 야위어 간다. 겨울이 오는데 난로는 고장나고, 연탄불을 때는 것도 귀찮은 밤에는 싸늘한 침대에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자야만 한다. 38。가 넘는 고열의 감기에 걸려도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 소년은 아스피린으로 잠을 청할 수밖에 없다.

이 무렵 어머니 권음전과도 서먹한 관계가 된다. 고독과 궁핍에 맞선 처절한 투쟁으로 그만 혈육이 미워진 것이가다. 작품 ‘겨울의 추억’에 그 실마리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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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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