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한국 표준시 30분 늦추면 ‘대충대충’ 풍토 사라진다

동경 127도30분 채택은 ‘시간의 광복’!

  • 김기덕 건국대 연구교수·한국사 kkduk1551@hanmail.net

    입력2005-05-25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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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표준시 30분 늦추면 ‘대충대충’ 풍토 사라진다
    세계 각국은 자기 나라가 지구상의 어느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표준시를 선택한다. 고급 호텔 프런트에는 각국의 현재 시간을 알려주는 여러 개의 벽시계가 있다. 이를 보면 나라별로 채택한 표준시가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표준시는 어떻게 정해졌을까. 왜 그와 관련된 논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것일까.

    한국의 표준시에 대해선 사람마다 이해의 편차가 크다. 이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한의학, 사주명리학, 점성학 연구자들이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시간을 계산할 때 실제 시간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중심부를 지나가는 동경 127도30분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해시(亥時)는 밤 9시부터 11시까지, 자시(子時)는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다. 그러나 밤 11시10분에 태어난 사람의 사주를 볼 때 자시가 아니라 해시가 적용된다. 우리나라의 현재 표준시가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정해져 (동경 127도30분을 적용한) 실제 시각보다 30분가량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재의 시간 개념에서는 밤 11시30분부터 새벽 1시30분까지를 자시로 계산해야 한다.

    東京과 東經

    표준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우리나라가 표준시 기준으로 동경 135도를 택했기 때문에 실제 시각보다 30분 빠르다는 걸 아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한 유명한 동양철학자는 최근 신문 칼럼에서 “도쿄시(時)를 서울시(時)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아마 그는 ‘동경 표준시’에서 ‘동경’을 일본의 수도인 ‘東京’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흔히 ‘일본의 동경 표준시’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나 일본이 표준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동경 135도는 도쿄(東京)를 지나가지 않는다. 동경 135도라고 할 때의 동경은 ‘東經’이다.

    표준시와 관련된 논쟁은 예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래서 표준시 변경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또 그 얘기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올해는 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수교 40주년이 되는 해다. 필자가 이 문제를 재론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올해 한국의 표준시 문제가 종합적으로 정리되고 그에 따라 변경 여부가 결말이 나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표준시란 ‘한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지방평균 태양시’를 말한다. 지구를 동서(東西), 즉 가로로 나눈 선을 위도(緯度)라 하고, 남북(南北), 즉 세로로 나눈 선이 경도(經度)다. 위도의 계산 기준은 적도다. 적도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가로 그은 선인 북위(北緯)와 남쪽으로 가로 그은 선인 남위(南緯)가 있다. 서울은 북위 37도34분이다.

    위도는 기준선인 적도가 자연스럽게 설정된 반면, 세로로 그은 경도는 인위적으로 기준선을 설정해야 한다. 표준시는 바로 이 경도를 기준으로 설정되므로, 세계 각국이 표준시를 정할 때에 기준이 되는 경도를 정해야 했다. 경도는 지구를 세로로 나누어 남북으로 그어지므로 자오선(子午線)이라고 한다. 자(子)는 북(北), 오(午)는 남(南)을 뜻한다. 표준자오선이란 표준시를 규정할 때 기준이 되는 자오선이다.

    국제 표준자오선은 1884년에 정해졌다. 영국 그리니치천문대(경도 0도)를 통과하는 본초자오선(主子午線)이다. 이를 기준으로 각각 15도씩 떨어져 있는 24개의 자오선이 있다. 본초자오선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180도를 15도씩 나누어 12개의 자오선이 있고, 역시 서쪽으로 180도를 15도씩 나누어 12개의 자오선이 있다. 동경 180도와 서경 180도가 만나는 곳에 날짜변경선이 있다.

    정오는 태양이 머리 위를 남중(南中·천체가 자오선을 통과하는 일)하는 시각이다. 어느 나라나 과거엔 해시계가 있어 이 원리로 시간을 측정했다. 이것을 태양시라고 한다. 그러나 나라마다 경도가 다르므로 태양시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나라라 할지라도 경도에 따라 태양시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따라서 나라마다 시간을 통일하기 위해 국가의 표준시를 정해 사용한다. 각국의 위치에 따라 가장 근접한 경도(자오선)를 표준시의 기준으로 채택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보통은 한 나라에 하나의 표준시가 사용되나, 영토가 넓은 나라는 여러 개의 표준시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 표준시 30분 늦추면 ‘대충대충’ 풍토 사라진다

    일본 고베시 춘일대공원에 설치된 동경 135도 표준시 기념탑.

    중국 산둥반도를 지나가는 동경 120도가 베이징 표준시이고, 일본 고베에서 서쪽으로 20km 떨어져 있는 아카시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는 동경 135도가 일본의 표준시다. 둘 사이에는 15도, 즉 한 시간의 차이가 있다. 중국보다 해가 일찍 뜨는 일본이 한 시간 빠르다. 우리나라 경기도 가평 부근을 통과하는 동경 127도30분이 일본 표준시와 베이징 표준시의 중간에 해당한다. 가평에서 볼 때 도쿄보다는 30분 늦고 베이징보다는 30분 빠르다.

    이처럼 경도를 15도씩 분할할 때 우리나라에 가장 근접한 자오선은 동경 135도와 동경 120도다. 우리는 현재 동경 135도를 표준자오선으로 선택해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도 우리나라처럼 자국 영토를 통과하지 않는 자오선을 표준자오선으로 사용한다. 각 나라는 관례적으로 15도에 한 시간씩 차이가 나는 24개의 표준자오선 중 하나를 선택하여 표준시로 삼고 있으나, 어떤 나라는 좀더 세분하여 지역주민의 편의에 따른 표준시를 사용한다. 네팔(15분대), 미얀마(30분대), 인도(30분대)는 한 시간 간격의 표준자오선을 사용하지 않는다. 반드시 24개의 표준자오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표준시로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동경 135도를 표준시의 기준으로 삼은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 한국의 표준시 변경과정을 살펴보면, 단순히 국제적 관례로 표준시를 선택했다고 보기 어려운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표준시가 왔다갔다한 적은 없다. 비록 지금의 표준시는 1961년 이후 40여 년 넘게 사용되고 있지만, 몇 번의 표준시 변경과정을 거쳤다. 조선시대의 앙부일구와 같은 해시계는 태양이 남중하는 때를 정오로 설정했다. 해시계는 조선시대 수도였던 서울에서 측정해 자연스럽게 서울을 지나는 동경 127도를 기준으로 한 표준시를 사용한 셈이다. 190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다른 근대 국가처럼 표준시를 제정해 사용했다. 1908년 2월7일 통과되고 4월1일부터 발효된 동경 127도30분 기준의 표준시가 그것이다.

    이승만의 ‘복귀’, 박정희의 ‘뒤집기’

    그러나 1910년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표준시가 바뀌었다. 일본제국은 한국을 자국 영토로 간주해 1912년 1월1일부터 일본이 사용하는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게 했다.

    이런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이승만 정권은 1954년 3월21일 자정을 기해 독자적인 표준시를 제정해 시계바늘을 30분 늦췄다. 당시 제시된 변경사유는 일제 잔재의 청산이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동아일보’는 “미군의 작전지휘권이 도쿄 미 극동사령부에 있는 관계로 미군은 표준시 변경을 따를 수 없다고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일 양국에 주둔한 미군의 처지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표준시가 달라지면 그만큼 군사적 작전운용이 불편했을 것이다.

    이러한 반대에도 이승만 정권은 표준시 변경을 관철했다. 국립중앙관상대장 이원철 박사는 표준시 변경에 대해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합리적인 시간으로 복귀한 것”이라 강조하고 “한반도의 중앙부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하는 표준시간으로 복귀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사설에서도 “일월의 출입시간이 정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본 표준시를 그대로 쓴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유쾌한 일이 아니었는데 이번에 종래의 우리 표준자오선으로 복귀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시간의 광복’이라 할 것으로 당연한 일이다”며 변경의 의미를 확실히 밝혔다. 이처럼 우리나라 서울 땅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설정한 조치에 대해 당시의 분위기는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서울 종로 보신각과 전국의 학교, 교회, 사찰은 종과 사이렌을 일제히 울림으로써 국민 모두 ‘시간의 광복’을 경축했다.

    그런데 1961년 5월16일 박정희 장군이 주도하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로부터 석 달도 되지 않아, 8월10일 자정을 기해 군사정권은 법률 676호(표준자오선 변경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다시 시계바늘을 30분 앞당겨 일본과 같은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유는 ‘국제적으로 30분 차이가 나는 표준시가 없다’는 것, 군사정권은 시차(時差) 환산의 편리성을 강조했다. 국제적 관례와 일치시킨다는 것이었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표준시를 변경한 과정에 대해 그동안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04년 8월 KBS가 이석재의 사건파일 ‘광복 59년, 시간은 해방되지 않았다’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KBS는 1961년 8월4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제27차 상임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는 미 극동군사령부(주일미군)가 주일미군과 주한미군, 한국군과의 연합작전을 위해 통일된 시간이 필요하다며 표준시 변경을 요청해 단 몇 분 만에 통과시켰다고 증언했다.”

    결국 국민의 대표기관이 아닌, 군사쿠데타로 성립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미군의 요청이 있자 쿠데타 승인을 받기 위하여 1954년 표준시 변경 이후 불과 7년 만에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한 표준시로 변경한 것이다. 이후 일광절약 시간제(서머타임) 도입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1986년 ‘표준시에 관한 법률’로 한 차례 변경했을 뿐, 현재까지 우리는 1961년에 개정된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도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북한의 경우 표준시와 관련된 특별한 논쟁은 없었다. 우리처럼 변경과정 없이, 지속적으로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해온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에선 그동안 표준시 변경을 둘러싼 크고 작은 논쟁이 있었다. 그 결과 1993년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기 시작했다. ‘민족주체성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의 기준자오선은 127도30분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자, 1993년 5월 정부 행정쇄신위원회 검토대상 과제로 상정됐다. 그러나 검토 결과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제15대 국회에서는 표준시 변경에 관한 청원이 접수(1997년 7월10일)됐으나, 회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당시 발의자는 조순형 의원이었으며, 이론적 근거는 정덕화(전 서울고·경복고 수학교사)씨가 마련했다. 정씨는 교사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표준시 변경을 강조한 인물이다.

    표준시 변경과 관련해 최근의 사례는 2000년 8월12일 표준시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 발의(발의자 조순형·송훈석 의원)다. 그 내용은 표준자오선을 동경 127도30분으로 개정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 정부 각 부처에서 의견을 제시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표준시를 변경하면 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에 맞는 ‘우리 시간’을 되찾음으로써, 현재의 표준자오선이 일제의 잔재 혹은 사대주의적 발상에 근거를 둔 것이라는 일부의 인식을 불식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우선 대부분 국가의 표준시와 30분 단위 차이가 남으로써 시차 환산이 복잡해진다. 또 한반도에 두 개의 표준시가 존재하게 되므로 북한과 보조를 맞추든가 아니면 통일 후 변경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그리고 1954년 변경 당시에도 유엔군사령부가 군사작전의 불편함을 들어 강력하게 반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도 이러한 국가안보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15분, 30분 시간차 자오선도 사용

    세계시차표도 수정돼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 홍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특히 세계시차표는 1시간 단위로 표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30분 단위의 시차를 가진 극소수(10여 개국) 나라는 표기가 생략될 우려가 있어 국제교류에 상당한 불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기상, 금융정보 등 시간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수정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기상청의 의견처럼 과거 기상자료의 활용을 위해 변경된 시간에 맞춰 자료를 수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든 데이터가 컴퓨터로 처리되고 있어 각종 컴퓨터 시스템의 시간 입력 자료를 변경해야 할 경우에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상당한 불편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 일광절약시간제 추진 의도에도 역행한다. 특히 하절기엔 현재보다 더 늦은 시간에 활동이 시작되므로 에너지 절약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

    2000년 발의된 표준시에 관한 개정법률안은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표준시 변경을 반대하는 이유는 비용과 혼란이 야기되고, 30분 표준시는 정수배 표준시를 적용하는 국제관례에 역행한다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표준시 변경에 비용과 혼란이 따른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제적으로 세계시차표를 조정하는 문제, 기상과 금융정보 등 시간과 관련된 각종 정보의 수정 문제에 다소의 혼란은 있을 것이다.

    한국 표준시 30분 늦추면 ‘대충대충’ 풍토 사라진다

    조선시대 해시계를 사용했을 때 표준시는 서울을 통과하는 동경 127도 30분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표준시 변경 당시 일회성에 그칠 현상이다. 비용과 혼란 문제는 국내적으로 일정한 시각을 기해 시계바늘을 일제히 30분 늦추기만 하면 되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이 점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시행됐거나 지금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일광절약 시간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만약 표준시를 바꾸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어떻게 일광절약 시간제를 적용해왔는가.

    이렇게 본다면 표준시 변경 반대의 주된 이유는 흔히 정수배로 표준시를 정하는 국제관례에 비추어 30분 표준시는 국제적 추세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실제 30분 표준시를 쓴다면 대부분 국가의 표준시와 30분 단위 차이로 시차 환산을 해야 하는 복잡성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각 나라가 반드시 정수배의 시간을 갖는 24개의 ‘표준자오선’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해야 한다는 국제협정은 없다. 실제 일부 국가는 24개의 표준자오선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표준자오선에서 15분 혹은 30분의 차이가 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정하거나, 나라나 지방의 지리적 위치에 따라 표준자오선을 변경하여 표준시로 사용한다. 30분 표준시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30분 표준시보다 정수배 표준시가 훨씬 편리하다는 점은 틀림없다.

    한국 표준시 30분 늦추면 ‘대충대충’ 풍토 사라진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정수배의 시간이 아니라 다소 불편한 30분 표준시를 사용할 만큼 표준시 변경의 정당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 될 것이다. 필자는 시간의 주체성 문제와 생체학적 리듬이라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자 한다.

    표준시 변경 주장의 당위성은 먼저 우리 시간을 찾아야 한다는 시간의 주체성에 있다. 이 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즉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과연 사대적인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는 않다. 오늘날 우리가 서양력을 사용하고 일본을 지나가는 동경 135도의 표준시를 쓴다고 하여 그것을 바로 서구인과 일본인에 대한 숭배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국제적 관례와 편의성을 고려한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표준시 결정과정을 돌아보면 그와 같은 일반론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표준시 변경과정이 전혀 주체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시간의 주체성을 관철할 수 있는 당위성은 마침 우리나라 중심을 지나가는 시간 기준이 정확히 30분으로 떨어진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자기 나라 영토를 지나가지 않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쓰는 유럽의 일부 나라와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나라는 마침 한 시간의 딱 절반에 해당하는 30분 기준의 자오선이 우리 영토의 중심부와 서울 옆을 지나가는 것이다.

    실제 생활상의 리듬 문제는 어떤가. 우리가 아침 7시에 일어나고 8시에 직장에 출근하며 12시에 점심식사를 한다고 할 때, 실제로는 6시30분에 일어나 7시30분에 출근하고, 11시30분에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오행(五行)으로 보았을 때, 목(木)의 나라다. 목의 특성은 강한 추진력으로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빨리빨리’의 특성을 갖고 있다. 항상 성급할 소지가 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특성상 30분이라는 시간이 갖는 생체학적 리듬은 대단한 것이다. 30분이 어느 민족에게나 똑같은 생체리듬의 효과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오행상 토(土)의 나라로 흔히 ‘만만디’로 대변되는 여유와 느림의 특성이 거론된다. 그만큼 민족마다 특성이 다르다. 항상 성급한 특성을 가진 우리 민족에게 30분 일찍 행동하게 만드는 지금의 표준시는 우리의 생체리듬을 흩뜨려놓음으로써 차분한 행동을 가로막을 수 있다.

    30분이란 시간은 24시간의 2%가 조금 넘는다. 과연 이 2%가 생체 리듬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까. 이 점과 관련해 소주 예로 들어보자. 일반 소주에서 ‘참이슬’의 알코올 도수는 일반 소주 도수보다 2도 약한 23도다. 2도 차이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많은 사람이 순한 소주를 찾게 됐다. 참이슬의 성공으로 참이슬보다 1도 낮은 ‘산’이라는 소주도 등장한 것을 보면 비중이 낮다고 해서 영향력이 작은 것은 아니다.

    사실 모든 계기는 작은 차이에서 비롯된다. 조그마한 변화가 10%, 20%, 50%, 100%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50%, 100%씩 바뀌는 것은 없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천지개벽하는 혁명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조급성이나 ‘대충대충’의 풍조, 그리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정치경제적 양상, 건강상 문제의 밑바탕에는 실제 시간과 일치하지 않고 30분 일찍 서둘러서 처리하게 만드는 현재의 표준시가 놓여 있다.

    여기에서 동경 127도30분 기준의 표준시로 변경하면 30분이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30분이 늦어진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실제 시간과 맞춰져 여유로워질 뿐만 아니라, 당분간은 예전의 생활습관과 비교할 때 30분을 벌어 한층 여유로워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또 표준시 변경으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도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열차나 비행기표를 예약하거나 약속시간을 정하면서 표준시 변경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미 열차나 비행기가 떠난 것이 아니라 30분 뒤에 떠나는 것이므로 시간을 다소 낭비하는 측면은 있으나, 결코 늦어서 낭패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코리안 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간문화를 일컫는 말이다. 대체로 약속시각보다 30분 늦는다고 한다. 코리안 타임은 디지털문화가 정착되면서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 필자는 코리안 타임의 발생도 기본적으로 표준시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표준시 변경 논쟁이 단순히 시계 돌리기 논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실제 행위는 시간을 30분 뒤로 돌리는 것뿐이지만, 그 이면에는 시간의 주체성 문제와 생체 리듬의 문제가 놓여 있다. 더 나아가 표준시 논쟁에는 우리의 국민성을 더욱 안정되게 하려는 교육적이고 생활사적 측면의 고민이 담겨 있다. 필자는 그것이 결국 표준시 변경을 반대하는 유일한 이유로 남아 있다고 보는 30분 표준시의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광복 60주년인 올해, 역사적인 광복절에 남북한이 함께 ‘30분 표준시 되돌리기’를 시도하는. 올해는 의미 있는 해다. 북한에도 우리의 이런 참뜻을 전달한다면 표준시 변경은 남북간 협상을 통해 충분히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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