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친환경 ‘파이넥스’ 공법 개발한 강창오 포스코 사장

“‘최적가능기술’로 유해물질 배출 0% 도전”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5-06-28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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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파이넥스’ 공법 개발한 강창오 포스코 사장
    처음엔좀 망설였다. ‘환경 CEO 초대석’에 대표적 친환경기업으로 포스코를 소개하자는 환경재단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였다. 환경단체들이 포스코를 비판하던 일을 떠올리던 차에 환경재단 관계자는 명쾌한 설명으로 편견을 바로잡았다.

    “철강산업의 특성상 유해물질 배출을 완벽하게 막는 건 아직 불가능해요. 지금껏 환경단체가 포스코에 제기한 환경 문제 중에는 한국에서 법규조차 마련되지 않은 항목도 있고요. 포스코가 유해물질을 배출한다 해도, 그 양이 법적 기준에 위배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포스코는 새롭게 대두되는 환경 문제에 세계 어느 기업보다 발빠르게 대비하고 있어요. 포스코의 환경투자 비용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알고 있나요?”

    주지하듯 포스코는 개발시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맨주먹 신화’를 이룩한 기업. ‘제철보국(製鐵報國)’을 내걸고 ‘생존을 위한 근대화’를 이끌던 국민기업이다. 그런 포스코에 이제 환경은 뛰어넘어야 할 숙명의 목표이자 기업경영의 최고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30여 년간 전체 예산의 9.1%인 2조6318억원을 환경개선사업에 투자해온 포스코는 지속가능경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친환경기업으로 거듭났다.

    철광석과 유연탄 가루를 가공하고 수천만t의 쇳물을 끓여내는 제철소에서 환경오염은 태생적 한계일 수밖에 없다. 어느 산업과도 비견하기 어려운 제철소의 대량생산 설비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환경단체가 포스코의 생산과정을 주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포스코는 오염방지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지역 주민을 위해 환경설명회를 여는 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비판적인 시선을 거둬들이고 있다.

    강창오(姜昌五·63) 포스코 사장은 그런 환경경영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해 8월 착공된 포스코의 ‘파이넥스(FINEX)’ 설비는 강 사장의 집념과 미래지향적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파이넥스 공법은 기존의 용광로 기술과 달리 생산공정을 단축해 환경오염물질 배출량을 최소화하고 원가를 절감하는 신기술.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6월7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사장실에서 만난 강 사장은 환경오염 방지기술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마치 백과사전을 읽어내리는 듯 상세하고 논리적인 설명을 쏟아냈다. 30여 년간 ‘철강제국’ 포스코의 생산과 기술개발 현장을 누비며 쌓아온 관록이 묻어났다.

    “다이옥신 대응은 이미 끝났다”

    -제철산업의 특성상 환경경영에 대한 부담이클 수밖에 없겠군요.

    “제철산업이라는 게 공해를 유발하는 사업입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해외 제철소의 하늘은 항상 시커먼 연기로 뒤덮여 있었죠. 2주 전 제가 방문했던 우크라이나의 제철소도 비슷한 풍경이었습니다. 그게 제철산업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오염물질 배출량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당시 포항제철소 건설을 시작한 창설자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염물질 배출량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선배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공해가 적은 제철소’‘공원 속의 제철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었죠. 그래서 환경설비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과거엔 기업에 규제를 준수하는 정도를 요구했지만, 환경에 대한 국민의 인식수준이 높아진 지금은 유해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그러나 문제는 공해를 100% 방지할 기술이 아직은 없다는 겁니다. 그래도 현존하는 기술 중 최고의 오염물질 제거효율을 보유한 최적방지기술(BAT)을 도입해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어요. 또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새로운 환경 문제들이 속속 튀어나오고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다이옥신도 그런 경우겠군요. 최근 국립환경연구원이 내놓은 ‘2004년 국립환경연구원보’에 따르면 2002년 포항제철소 소결로 굴뚝에서 나온 배기가스의 다이옥신 농도가 1㎥당 0.45ng(나노그램)에 달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1980년대 후반 유럽의 제철소를 방문하니까 발암물질로 알려진 다이옥신의 배출 문제가 논의되고 있었어요. 그때 처음 신규 오염물질인 다이옥신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당시는 이를 근본적으로 막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1997년부터 다이옥신 발생 저감을 위한 연구활동에 착수했고 일부 선진 제철소의 공정기술 개발추이를 주시해 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 포항제철소 소결 공장에 744억원을 들여 다이옥신 발생을 줄이는 청정설비를 도입해 지난해 7월부터 가동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다이옥신 배출량은 올해 2월 1㎥당 0.1ng으로 크게 줄었지요.

    1㎥당 0.1ng의 다이옥신 배출량은 세계 최저 수준이며, 이는 2002년 대비 90% 이상 저감된 양입니다. 광양제철소에도 1760억원을 들인 청정설비가 곧 완공될 예정입니다. 포항과 광양 주민들은 더는 불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실질적으로 소결로에 대한 다이옥신 규제 기준이 있는 나라는 2005년 현재 일본(1㎥당 1ng)과 캐나다(1㎥당 0.5ng) 등 일부 국가뿐이다. 우리 정부는 2006년 산업시설에 대한 다이옥신 법 기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포스코는 이미 선진국의 다이옥신 규제 기준보다 더 엄격한 설비를 갖춘 셈이다.

    -2002년 배출된 1㎥당 0.45ng도 다른 나라의 규제량보다 낮은 수치네요. 그래도 지역 주민의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은 듯합니다. 지난해 광양시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의뢰한 광양 태인동 주민의 건강역학 조사 결과 주민 2명 중 1명이 호흡기 질환을 앓고 심박동 변이도 전국 평균을 웃돈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역학조사라는 게 현상을 진단하고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 아닙니까. 지난번 용역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시각에 따라 다소 견해를 달리할 수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포스코가 이를 계기로 환경개선 투자에 더욱 노력하고, 지역 주민과 환경 문제를 함께 풀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저희는 현재 역학조사를 추진한 광양시와 함께 ‘환경개선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협의회에는 광양시, 태인동 주민대표, 포스코 관계자를 포함한 각계 대표가 참여하고 있어요. 제철소 내 환경정보를 최대한 신속히 공개하고 객관적인 환경보고서를 연 1회 발간해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려 합니다.”

    ‘클린 앤드 그린’ 운동

    이렇듯 포스코는 양대 제철소가 자리잡은 포항과 광양 주민에게 믿음을 주고 이해를 구하는 ‘스킨십 경영’에 신경을 쓰고 있다. 엄격한 환경관리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포스코의 노력이 그동안 지역 주민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다. 지속가능경영을 도입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포스코는 국내에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인데요.

    “포스코는 1995년 국내 기업 최초로 환경경영 활동 내용을 담은 환경보고서를 발간했어요. 그 무렵만 해도 국내 기업들이 ‘환경경영’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이니 획기적인 일이었죠. 이후 2000년대 들어 지속가능경영이 글로벌 우량기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포스코는 지난해 10월 환경보고서와 사회공헌백서를 통합해 회사의 경제적 수익성, 환경적 건전성, 사회적 책임성에 관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국제보고서 발간기준에 근거해서 펴냈지요.”

    -‘신동아’ 4월호 ‘환경 CEO 초대석’에 등장한 삼성SDI 김순택 사장도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자부심이 크더군요. 포스코가 발간한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포스코는 국내 기업 최초로 국제보고서 검증기준(ISAE 3000)을 준수하고 제3의 외부기관에서 타당성과 투명성을 검증받았습니다. 앞으로 포스코뿐 아니라 출자사와 해외 사업장의 지속가능경영 성과 자료도 충실히 공개할 예정입니다. 존경받는 기업의 관건은 결국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하냐에 달려 있으니까요.”

    포스코의 친환경정책에는 강 사장의 아이디어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가 포항제철소장으로 재직하던 1999년 도입한 ‘클린 앤드 그린(Clean & Green)’ 운동은 전사 차원으로 확대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클린 앤드 그린’ 운동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포스코에 재직한 30년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포항제철소는 초기부터 ‘공원 속 제철소’ 건설을 목표로 공해방지시설 투자와 녹지조성에 역점을 두어 왔습니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설비가 확장되면서 환경보호에 대한 시대의 요구는 더욱 높아졌죠. 1998년 포항제철소장으로 처음 부임할 때 여러 분이 ‘환경 문제가 제철소 운영의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이라 충고했어요. 포항시가 점차 팽창하면서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제철소와 포항시가 거의 맞닿게 된 데다, 1970년대에 지어진 포항제철소의 일부 설비도 노후했기 때문이죠.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제철소 280만평의 상공에 부유하는 가시(可視) 먼지와 매연부터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집진 설비를 대폭 보강하고 조업방법을 개선해 가시 분진을 대폭 줄이는 한편, 공장 곳곳에 들어선 주차장과 시설물을 모두 철거한 뒤 잔디를 깔고 166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결과 18.9%에 불과하던 공장 녹지율이 24.5%로 늘어났어요.”

    포항제철소 입구에 우뚝 선 지상 75m 높이의 종합환경감시센터 역시 ‘클린 앤드 그린’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됐다. 구내 철도 차량을 통제하던 이 타워는 1999년 원격 감시카메라를 갖춘 최첨단 디지털 환경센터로 탈바꿈했다. 제철소 내 크고 작은 500여 개 굴뚝마다 설치된 대당 2억원짜리 자동오염물질 측정기가 30분 간격으로 이곳에 자료를 전송한다.

    비산먼지·가시오염·악취 저감을 위한 다양한 환경개선 작업이 진행되면서 제철소는 푸른 하늘을 되찾았다. 제선(쇳물 만들기) 공장에서 내뿜는 시커먼 연기도, 제강(강철 만들기) 공장에서 분출하는 새빨간 연기도 제철소 상공에서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강 사장이 포스코의 환경경영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파이넥스’ 공법 도입이다. 그가 일본 근무를 마치고 포항제철소장으로 돌아온 1998년에는 파이넥스 개발 중단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포스코 연구진이 기초조사를 끝낸 상황에서 800억원을 투자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어서였다.

    2년간 경영진을 설득하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달랐다. 국내 1위에 결코 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흥 철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이나 최고 철강기술을 보유한 일본과 벌이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신기술 도입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미국과 유럽 등지를 오가며 각계 전문가를 만나고 자료를 수집해 2년에 걸쳐 경영진을 설득했다.

    그 결과 2001년 1월 세계 최초로 연산 60만t 규모의 파이넥스 설비를 착공할 수 있었고 이후 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겨 파이넥스 기술개발에 전념했다. 2003년 포스코의 사장이 된 이후에는 최고기술 책임자(CTO)를 겸임했다.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1주일에 반은 포항으로 내려가 연구진과 치열한 토론을 벌이며 기술개발에 몰두했다. 지난해 6월17일 포항제철소에서 열린 150만t 규모의 파이넥스 설비 착공식에 참가한 강 사장의 얼굴은 벅찬 감회로 가득했다고 한다.

    -파이넥스 공법은 환경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200년 역사를 이어온 기존의 용광로 공법은 철광석과 유연탄을 사전에 가공해서 소결광과 코크스로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요. 이 과정에서 황산화물(SOx)과 질소산화물(NOx), 분진 같은 오염물질의 발생량이 많거든요.

    그러나 파이넥스 공법은 용광로 공법에서 환경오염물질의 대부분을 배출하는 코크스공정과 소결공정이 아예 생략돼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가격이 싼 분광석과 일반탄을 사용하므로 제조원가도 용광로 공정보다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파이넥스 공법 개발에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그 투자비가 결코 아깝지 않아요. 파이넥스 공법은 원료 제한을 대폭 해소해 고급 석탄과 철광석의 고갈에 대비하고 환경규제 강화가 예상되는 미래의 경영환경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혁신적인 제철기술이기 때문이죠.”



    -점차 강화되는 환경규제는 모든 기업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2013년부터 시작되는 교토의정서 2차 공약기간에 한국 기업들도 대부분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등 6종) 감축 의무를 지게 될 텐데요. 교토의정서 발효가 철강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지난 2월16일 교토의정서가 발효됨에 따라 선진 38개국은 2008년부터 4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평균 5.2% 감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어요. 하지만 2013년 이후 교토 체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최악의 경우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미국(23.7%) 등 강대국이 이 감축협상 참여에 반대하면 교토의정서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도 있거든요.

    한국이 훗날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진다고 해도 감축방식이 큰 쟁점입니다. 우리 정부는 ‘특정 연도를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총량을 감축하는 현재와 같은 저감방식에 반대한다’는 공식입장을 표명했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포스코는 이와 별개로 리스크 경영 원칙에 따라 에너지 절감을 통한 온실가스 줄이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부와 에너지 절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체결해 지난해부터 2008년까지 130만TOE(석유환산톤)의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할 계획입니다. 장기적인 과제로 국제철강업계와 함께 고로에 투입하는 석탄의 양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울코스(ULCOS·Ultra Low CO2 Steel Making)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죠.”

    ‘교토 메커니즘’의 활용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수용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이 에너지 및 철강산업이다. 교토의정서의 감축의무를 지키지 못한 기업은 목표를 초과달성한 나라의 잉여분 배출권을 사들이거나 환경친화사업에 나서야 하는 등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 한국도 2013년부터 온실가스 ‘감축대상국’으로 지위가 격상될 가능성이 커 국내 기업들은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포스코가 택한 위기 극복법은 바로 시장원리에 따른 ‘교토 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해 유연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이제 막 성장단계에 접어든 국가들의 불리한 상황을 감안해 ‘공동이행제도(JI)’ ‘청정개발체제(CDM)’ ‘배출권거래제도(ET)’의 세부이행규칙을 둬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도록 했다. 청정개발체제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투자해 얻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 실적을 자국의 실적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이며, 공동이행제는 선진국이 다른 나라에 투자해 발생한 감축 실적의 일부를 자국 실적으로 인정받는 제도다.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확보하기 위해 포스코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청정개발체제의 일환인 해외조림사업이다. 올해 5월 해외조림 사업추진반을 구성해 대상지역 및 규모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나섰다.

    -2006년부터 EU(유럽연합)가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전자제품에 납·수은·카드뮴·6가 크롬 등의 사용을 금지)을 발효합니다. 이 외에도 화학물질관리제도(REACH) 등 유럽의 선진 환경규제가 늘고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생각입니까.

    “환경 무역장벽은 기업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죠. 장벽을 넘지 못하는 회사는 도태되지만, 위기를 극복한 회사는 국제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게 될 테니까요.

    ROHS에 대해선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다. 가전제품과 자동차에 사용되는 표면처리제품의 크롬 프리(free) 강판을 개발하고 품질 인증도 조기에 추진할 방침입니다.”

    포스코의 놀라운 기록 중 하나는 98.2%의 폐기물 재활용률.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고 일본 등 어느 선진국보다 우수한 수준이다.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천연자원의 대체원료로 사용함으로써 ‘자원 절약’과 ‘환경 보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폐기물의 98.2%를 재활용하는 게 가능한가요?

    “먼저 개념부터 바꿔야 해요. 폐기물은‘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유용한 자원’이기 때문에 저희는 그것을 ‘부산물’이라 부릅니다.

    먼저 연간 1300만t씩 나오는 슬래그는 100% 재활용됩니다. 용광로에서 발생하는 고로 슬래그는 시멘트 원료, 비료 원료, 도로 포설용 골재로 사용되고, 제강공장에서 배출되는 전로 슬래그는 항만공사 골재 등으로 쓰입니다. 특히 슬래그를 시멘트 원료로 활용함으로써 석회석을 대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에너지 절약과 이산화탄소 발생 저감 효과를 보고 있어요. 포항제철소에서 슬래그를 판매한 금액만으로도 연간 11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뒀습니다.”

    지난 2년간 포스코는 철강업계의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고의 경영성과를 올렸다. 2003년 14조3500억원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36% 늘어나 19조5000억원에 이르렀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약 5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호황을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 중국이 원가경쟁력을 앞세워 매섭게 추격하고 있고, 일본의 철강 기술력은 여전히 세계 최고다. 세계시장에서 생산되는 철강제품 10억t 가운데 중국이 3억t, 일본이 1.1억t을 만들고 있다. 한국이 생산하는 철강은 4800만t에 불과하다.

    중국과 일본을 넘어

    -최근 2년간 사상 최고의 수익을 거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여기에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인 듯한데요.

    “고백 하나 할까요? 철강기술 관련 국제회의에 가면 가끔 ‘포스코가 철강사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이젠 기술개발에도 공헌할 때가 아니냐’는 제의를 받곤 합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포스코는 지금껏 선진 철강사들이 개발해놓은 기술을 효과적으로 도입해 열심히 공장을 돌려 이익을 낸 게 아닙니까.

    더욱이 최근 몇 년간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기회였지요. 중국 경제의 급성장에 따른 철강수요의 급격한 증가로 철강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죠. 우리는 아직까지 고급 철강제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중국과 원가경쟁력 면에서 우리보다 불리한 일본 시장을 잘 공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생산설비를 급격히 확장하며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있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호경기가 얼마나 지속될 지 걱정입니다.

    -중국의 도전을 막아낼 비책이 있습니까.

    “그야 당연히 ‘기술력 강화’죠. 파이넥스 공법은 바로 중국, 더 크게는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기 위해 도입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포스코가 만들어온 철강제품은 ‘중형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값싸고 품질이 좋아 많은 수요가가 원하던…. 그러나 이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고급 세단’입니다. 중국이 쫓아오기 전에 성큼 앞서가야지요. 8대 전략제품 개발계획을 추진해 2007년까지 전체 제품의 30%는 ‘고급 세단’에 비견될 만한 고급 철강제품이 차지하도록 할 겁니다.”

    친환경 ‘파이넥스’ 공법 개발한 강창오 포스코 사장
    포스코를 성장시킨 주역은 공학도들이다. 현재 이구택 회장을 비롯해 강창오 사장, 류경렬 부사장, 이윤 부사장, 정준양 전무 등 핵심 경영진이 모두 금속공학을 전공했다. 한여름 에어컨 시설도 없는 공장에서 더운 숨을 몰아쉬던 이들의 땀과 신기술 개발에 쏟아부은 열정이 지금의 포스코를 일궈낸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지닌 강 사장으로선 요즘 젊은이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대학에서 철강 공부를 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어요. 금속공학 커리큘럼은 거의 사라졌고, 교수들도 다른 연구만 하는 실정입니다. 최근 우리 대학생들은 ‘이지 고잉(easy going)’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바로 이공계의 발전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의 제조업이 경쟁력을 갖지 못하면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과거처럼 몸으로 때워서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인건비에서 한국은 이제 중국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거든요. 고급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국의 제조업도 함께 삽니다.”

    포스코는 올해 고급 기술을 개발할 더 많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포항공대 철강대학원과 함께 철강 혁신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석사과정뿐인 대학원을 석·박사 과정으로 확대 개편하는 한편, 내년까지 철강분야의 세계적 석학 10명을 ‘포항공대 철강 교수’로 초빙하는 계획이다. 철강 석학 교수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보수와 연구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고급 산학 연구의 기반을 잡겠다는 취지다.

    “실패는 나의 힘”

    강창오 사장은 1971년 포항제철 공채 3기로 입사했다. 용광로 전문가가 전무하던 당시,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온 그는 줄곧 포항제철소의 기틀을 닦는 작업에 참여했다. 1973년 6월9일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가 첫 쇳물을 뿜어내던 순간부터 줄곧 고로와 함께한 삶이었다. 1985년에는 광양제철소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제철소의 탄생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94년부터 3년간 일본에 주재한 그는 2003년 포스코의 사장이 됐다. 지금껏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뜻밖에도 뼈아픈 실패의 경험이다.

    “1979년 7월 제가 책임을 맡았던 용광로가 배탈이 나서 20일 동안 쇳물이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제철소에서 만드는 쇳물의 3분의 2를 생산하는 가장 큰 규모의 고로였죠. 용광로가 쇳물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건 제철소 내 모든 공장의 가동이 마비되는 걸 의미하지요. 기술과 경험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당시 돈으로 몇백억원의 손해가 난 것으로 추정될 만큼 포스코 역사상 가장 큰 사고 중 하나였지요. 용광로를 살리기 위해 한여름 20일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문제 해결에 매달렸습니다. ‘민족의 반역자’가 된 것 같았어요. 누군가 자살하라고 하면 정말 죽어서라도 책임을 지고픈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박태준 사장은 오히려 격려해주셨어요. ‘네가 얼마나 귀한 경험을 했는지 아느냐, 그 경험을 두고두고 후배에게 전하라’고. 벼랑 끝에 선 위기를 극복한 경험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이 됐어요.”

    벌써 이순(耳順)을 넘겼지만 그는 여전히 청년 같다. 젊은 연구진과 신기술 트렌드를 놓고 지칠 줄 모르는 난상토론을 벌인다. 여전히 작업복을 입고 뜨거운 쇳물이 흐르는 작업장을 누빈다. “내 분야의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슴에 품고 10~20년 앞을 내다보며 정진한다면 꿈은 현실이 된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푸릇푸릇한 ‘청년정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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