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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의 삶

고성 오광대놀이 ‘농부 춤꾼’ 이윤석

“천한 민족은 신명을 아랫도리로 풀고 귀한 민족은 어깨 위로 끌어올리지”

  •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사진 정경택 기자

고성 오광대놀이 ‘농부 춤꾼’ 이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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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른들은 윤석이라고 발음하기 어려우니 다들 나를 윤시라 불렀어요. 하루는 누가 (그는 사촌 처형의 남편으로 나중에는 동서가 됐지만) 윤시야 불러서 갔더니 무조건 택시를 태워요. 다짜고짜 ‘용산 가자!’ 하는 거예요.”

그렇게 신부집에 갔더니 사람들이 새 신랑감을 구경하러 한방 가득 모여 있었다. 정작 신부는 사방사업에 나무 심으러 따라가버리고 없었다. 신부집에서는 신랑감이 대만족이었다. 신부 얼굴 한번 못 본 채 일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부모님이 저렇게 원하시니 일단 엑서사이즈(exercise·연습)로 결혼 한번 해보지 뭐 해싸면서 철없이 굴었지요. 실제로 별 실감도 안났고….”

결혼식 당일에도 고개를 들 수 없어 신부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의 결혼 스토리는 아무래도 한 세대 전의 얘기 같다. 서양문명이 우리 전통을 훼손하기 이전 우리 땅 서민의 결혼 풍습 또한 고성에는 그때까지 살아 있었나보다. 1949년생 이윤석은 1968년에 결혼한다. 그의 나이 스무 살, 신부는 두 살 위인 스물두 살! 적은 나이도 희귀한 경우도 아니었다.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선녀같이 고운 색시

혼인날 밤 얘기는 살아 있는 민속이다. 신랑을 매달아놓고 발바닥을 치는 거야 기본이고, 신랑 신부 둘을 한꺼번에 꽁꽁 묶어놓고 대추와 밤을 입에 넣어주라는 놀음도 하고 하여튼 별의별 장난을 다 쳤다.

“신방에 들어갔더니 병풍을 쳐놓고 그 앞에 주안상을 차려놓고 상 앞에 신부가 족두리를 쓰고 앉아 있어요. 얼매나 와들와들 떨래쌓든지…. 병풍 뒤에는 봉창문인데 문 뒤엔 온 마을 사람들이 방안을 들여다보려고 다 모여 있었어요. 얼매나 떠들어쌓든지…. 그러거나 말거나 불 끄고 누웠는데 사람들이 하도 밀쳐 봉창문이 우지끈 떨어져 나가는거야. 병풍 뒤에 장난 좋아하는 청년 몇이 턱 누워 있고 난리법석이었제….

나는 첫날밤에 신부 가슴을 만지면 안 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어서 가슴에 닿지 않을라고 얼매나 조심을 했든지 몰라. 신랑이 가슴을 만지면 색시가 가슴앓이 한다는 말이 있었거든. 데라진 놈들은 그러든 말든 다 만졌겠지만 나는 그때만 해도 하도 숫내기라서….

이불은 새로 풀을 해서 움직이면 버스럭거리지, 맨살에 닿으면 자꾸 간지럽지, 병풍 뒤에는 장정들이 기침을 해가며 누워 있지…. 우여곡절 끝에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었는데 아침에 우리 장모님이 문 앞에 멍석을 쳐놓으셨대요. 해뜨는 줄도 모르고 늦도록 자라고….”

이튿날 신부를 데리고 신행을 왔다. 동네 우물가엔 이미 아무개집 며느리 인물이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 같다는 평이 자자하게 퍼져 있었다. 이웃 동네서 새색시 구경을 하러들 왔고 신랑 눈에도 색시는 ‘진짜로’ 고왔다.

그 고운 색시는 시아버지 둘에 시어머니 셋인 살림을 덜컥 맡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살아냈다.

“고생 많이 시켰지요. 시집오자마자 중풍 걸린 시아버지를 4년이나 수발했지, 불때는 부엌이라 나무하러 다니면서 밥했제, 신랑은 철이 없어 저녁 먹으면 밖으로 놀러나가 새벽 2~3시에 친구들 잔뜩 끌고 들어오제…. 그러다 애 둘을 낳아놓고 스물넷에 턱 하니 군대를 가버리제….”

입대할 땐 마암면민이 다 울었다. 리어카에 소주 한 박스를 싣고 여럿이서 “윤석이 낼 군에 갑니다!” 외치고 다녔다. 아픈 사람들 빌어주러 면내 온 골짜기를 안 가본 데 없이 다 다닌 갈래댁(작은 백모의 택호), 온갖 병을 손 비비고 절하는 것만으로 고쳐주던 그 갈래댁 외아들이 군에 간다는 말에 면민이 모두 나와 전송하고 눈물을 찍어내는 분위기였다. 이 또한 한 세대 전의 풍경이건만 고성에는 오롯이 남아 있었다.

“군대 안 갔으면 나는 날건달같이 살았을지도 몰라요. 최전방 철책선 근무를 했는데 군대 가서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 살아왔드라 이겁니다. 특히 집사람한테 너무 고생을 시켰드라고요. 목적도 없이 건들거리기나 했지, 내 고장 내 동네 내 집 중한 걸 하나도 몰랐으니…. 두 번째 휴가를 나와서 셋째를 만들어놓고 다시 들어가 철이 다 나서 제대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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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사진 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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