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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밀착 인터뷰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 리거 박지성

“아버지, 전 맨유에서 스타가 되길 원치 않아요”

  • 이영미 일요신문 기자 riveroflym@hanmail.net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 리거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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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급한 퍼거슨 감독의 갑작스런 호출에 금쪽같은 휴가를 이틀이나 반납하는 점이 못내 아쉬웠지만, 박지성의 마음은 이미 ‘맨유 맨’이 돼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줄곧 서울에 머무른 탓에 수원 집의 아버지와도 얼굴을 자주 마주칠 수 없었다고 한다. 공항으로 나오기 직전 아버지가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즐기면서 하라”고 당부했지만 박지성은 마음이 무겁기만 한 모양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그러나 예상은 가능하죠.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아니, 지금까지 제가 힘들게 겪었던 일을 거기선 한층 업그레이드 된 수준으로 겪게 될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도망갈 수는 없잖아요. 부딪치고 극복해야지. 만약 제가 처음 외국에 진출하는 거라면, 그래서 맨체스터로 가게 된 거라면 지금 제 얼굴은 표정 관리가 안 될 거예요. 너무 흥분하고, 너무 좋아라 했을 겁니다. 일본에서 프로 생활을 처음 시작해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가는 일련의 과정에 ‘햇빛 쨍쨍’보다는 ‘구름 짙게 드리운 우중충한 날씨’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가야 합니다. 이제부터 벌어지는 모든 일은 모두 제 몫이니까요.”

“그래도 가야 합니다”

‘변화’라는 말과 거리가 먼 듯한 박지성이지만, 인터뷰하는 태도나 말솜씨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수준급으로 변해 있었다.

“부모님은 제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프리미어 리그 진출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거라고 하시는데 전 좀 달라요. 이왕 간 거, 잘해서, 더 성공해서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게 큰 ‘선물’이 될 수도 있죠. 잘 풀어갈 거예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계속 최면을 걸어봐요.”



더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출국 수속과 공식 인터뷰를 마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박지성과 걸으면서 계속 얘기를 나눴다. 박지성은 성격이 괴팍하기로 소문난 퍼거슨 감독에 대해 겉으로는 별 걱정을 하지 않는 듯했다. 물론 완전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관계라 부담스럽긴 하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지금까지 수많은 감독을 거치면서 단 한번도 감독과 마찰을 빚거나 감독의 지시를 어긴 적이 없기 때문에 어느 팀, 어느 나라 감독이든지 자신이 잘 맞춰간다면 크게 힘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박지성은 2003년 4월 기자가 ‘일요신문’에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를 진행할 때 맨유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는 “며칠 전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의 유럽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을 봤다”면서 “같은 축구선수가 봐도 예술이라고 느낄 만큼 단단한 조직력과 개인기의 절묘한 조화가 거의 환상적인 수준”이었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또한 스타플레이어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들 중에는 월드컵 때 직접 상대한 선수도 있다. 이름만 들어도 기가 죽는 대선수들이지만, 막상 각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맞붙었을 때는 그들이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축구로 밥 먹고 사는 건 다 똑같으니까. 물론 몸값의 차이는 엄청나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2년여 전만 해도 맨유 ‘팬’이던 그가 지금은 맨유 ‘선수’가 돼 한국인 최초로 프리미어 리거로 첫발을 내디딘 부분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맨유와 히딩크 사이에서

5월27일 네덜란드를 떠나 귀국길에 오르려던 박성종씨는 에이전트인 이철호 FS코퍼레이션 대표에게서 급한 전화를 받았다.

“지금 데커(다국적 스포츠 매니지먼트사 SFX사의 치엘 데커. 박지성측으로부터 에이전트 위임을 받고 PSV측과 재계약 협상 및 이적 문제를 담당했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지성이를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는데요?”

박씨는 처음엔 이철호 대표가 뭘 잘못 알아들은 거라고 생각했단다. 히딩크 감독과 재계약 협상이 힘들어지니까 데커가 이상한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고, 괜히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꺼내서 히딩크 감독의 비위를 건드릴까봐 신경이 잔뜩 쓰였다고 한다. 박씨는 아들에게 “퍼거슨 감독이 할일이 없어서 널 데려오라고 했겠냐”고 애써 부정하며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박씨는 그때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당시 리버풀에서 이적 제의를 한 상태였어요. 리버풀도 엄청난 팀이기 때문에 PSV와 계약이 안 되면 그쪽으로 올인할 계획이었죠. 그런데 다른 팀도 아닌 맨유라니, 그게 쉽게 믿겨지겠어요? 지성이도 긴가민가했을 거예요. 나중에야 사실이라는 걸 알고 마음이 요동쳤죠. 솔직히 욕심도 났어요. 맨유 같은 명문팀에서 지성이가 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게 행복 끝, 고통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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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일요신문 기자 riverofly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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