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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으로 본 한국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의 경쟁력

강대국 세계관에 포박, 주류와 ‘맞장’ 못 뜨는 ‘우물 안’ 책상물림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논문으로 본 한국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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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치현상 분석의 바탕이 돼야 할 외교사와 사상·이론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은 모든 학자의 공통된 지적이다. 역사인식의 토대 없이 현상 분석에 치중하다 보면 결국 파편적이고 피상적인 연구에 그칠 수 있다는 것. 연세대 김기정 교수의 말은 귀기울여볼 만하다.

“한미동맹의 문제, 북미 관계, 동북아지역 안보협의체,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 등 최신 이슈를 다루는 것은 물론 의미 있지만, 국제정치학의 연구 목적이 국가의 행위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시대적 범위가 확장돼야 한다.

행태주의 사조가 낳은 몰역사성의 학문적 경향은 바로 미국 국제정치학의 직수입과 연결된다. 정책적 의미를 가진 현상에 대한 분석이 전부인 것처럼 간주해온 미국 국제정치학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외교사 연구는 진부한 영역쯤으로 치부했다. 게다가 강대국 환원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정치학 이론들을 단선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한국의 경험에 대한 이론 탐구의 빈곤을 자초했다.”

그러나 서구식 의제설정과 문제의식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중심으로 구한말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언어 개념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국제정치를 재구성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문명표준으로서의 두발 양식: 1985년 조선 단발령의 국제정치(서울대 외교학과 석사)’ ‘한국의 영웅론 수용과 전개, 1895~1910(서울대 외교학과 석사)’ 두 논문은 바로 한국식 국제정치학에 관한 모색을 보여준다.

정보통신 통한 국제정치 뜬다



새로운 분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정보통신을 통한 국제정치 연구다. ‘유럽 제2세대 이동통신표준(GSM)의 형성과 국제정치(서울대 외교학과 석사)’ ‘정보통신산업에서의 국가역할: 미국과 한국의 평판디스플레이 산업정책 비교(서울대 외교학과 석사)’ ‘인터넷 거버넌스의 세계정치: ICANN의 인터넷 일반 사용자 대표체(서울대 외교학과 석사)’ ‘유럽의 통신자유화: 유럽의 공동통신정책 형성과정을 중심으로(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석사)’같은 논문이 바로 그 예다. 이들은 정보통신 강국인 한국이 국제정치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정치외교학에 대한 우리식 접근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도 아직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세기 구한말을 탐구하려는 노력이 21세기 한국의 현실과는 유리돼 있다. 역사의 연속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그 시대만 연구함으로써, 정작 지금 한국이 지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보화’라는 어젠더는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 정보혁명의 영향력을 침소봉대함으로써 굉장한 변화가 올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사회학

다양한 특성을 지닌 개인이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 어떤 학문과도 ‘이종교배’ 할 수 있는 무한확장의 학문. 기초사회과학 분야의 기본인 사회학은 독특한 사회현상을 포착해 1차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사회학의 연구결과는 경영학, 행정학, 사회복지학과 같은 응용사회과학처럼 현실에 곧바로 적용되기는 어렵지만, 2차 학술실적을 만들어내는 기초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사회학과의 석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바로 ‘다양성’이다. 10개가 넘는 영역의 논문이 비교적 고르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사회학·사회운동론, 젠더(gender·性)연구와 가족사회학, 문화사회학에 대한 연구가 강세를 보이는 반면, 사회학의 전통적 주제인 계층·계급 연구, 사회사, 조직론에 대한 논문은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사회학과에서 2002년부터 3년 동안 발표된 석·박사학위 논문은 모두 217편(박사·53편). 분야별로 살펴보면, 젠더 연구 및 가족사회학 논문이 33편(박사·5편), 문화사회학 논문이 24편(박사·6편), 정치사회학·사회운동론에 관한 논문이 23편(5편)을 차지했다. 복지와 사회정책을 다룬 논문도 16편이다. 반면 북한사회 연구나 환경사회학에 대한 연구는 없고, 사회학의 핵심으로 불리는 계층·계급 연구는 5편에 불과하다.

서구의 이론을 정리하고 이를 한국의 경험에 적용하는 것이 한국 사회학 연구의 큰 흐름이다. ‘건설업의 하도급구조와 노동자의 선택 : 닥트직종을 중심으로(서울대 석사)’와 같이 연결망 이론을 통해 노동, 기업, 산업의 현상을 분석하거나, 유럽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문화이론이나 세계화·정보화 담론을 중요한 분석틀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젠더 연구 및 가족사회학 분야는 여성전공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사회 출산조절의 역사적 과정과 젠더 : 1970년대까지의 경험을 중심으로(서울대 박사)’는 외국의 이론이 아닌, 1950년대 이후 한국 역사 경험을 통해 여성의 권리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독자적인 개념으로 설명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분야는 결혼, 육아, 여성의 취업, 성차별 등 현실과 맞닿은 이슈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부르디외의 심판자 돼야”

서울대 이재열 교수(사회학)는 “사회학과 논문 주제 경향은 시대적 쏠림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면, 그 이후 유럽식의 문화이론이 각광받고 있다는 것. 그러나 석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 담론을 연구주제로 택한 채 결국 정리와 요약에 그치는 논문쓰기에 대해 그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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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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