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논문으로 본 한국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의 경쟁력

강대국 세계관에 포박, 주류와 ‘맞장’ 못 뜨는 ‘우물 안’ 책상물림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5-08-12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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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으로 본 한국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의 경쟁력
    줄기세포연구로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된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 KAIST(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를 나와 하버드, MIT, 스탠퍼드 등 미국 최고 명문대 출신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하버드대 의대 교수로 임용된 윤석현 박사…. 이공계 기피 현상의 이면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토종 이공계 박사’들의 활약이 있다. ‘황우석 연구팀’에 입성하길 꿈꾸거나 메모리 기술을 전수받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은 ‘꿈의 땅’이다.

    그러나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사정은 다르다. 세계적 학문 전통을 이끌 ‘토종 이론가’도, 국제 사회를 주도할 우리의 담론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2000년 이후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외국 대학에 교수로 임용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외국 명문대 학위를 취득한 학자는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하는 최신 이론을 발 빠르게 전파하면서, 정작 한국의 특수성을 외국이론으로만 설명하려는 우를 범한다. 이젠 국내 대학에도 아이비리그 등 미국과 유럽의 명문대 출신 교수들이 넘쳐나지만 여전히 “석·박사학위를 따려면 해외로 나가라”고 충고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인문·사회과학의 방법론을 처음 발전시킨 곳은 서구다. 더욱이 가치지향적이고 언어에 의존하는 학문의 특성 때문에 강대국 중심의 연구가 세계 학계를 주도하는 것은 일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이 정책담론과 사회 트렌드를 선도할 세계적 학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은 정말 위기인가. 이들은 견고한 지적 풍토 형성과 우리 사회의 현안 해결에 기여하고 있는가. ‘신동아’는 한국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의 연구 경쟁력을 진단하기 위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5개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의 사학, 정치외교학, 사회학 분야에서 발표된 773편의 석·박사학위 논문 주제 경향을 분석했다. 각 학과별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분야, 주제, 독창성, 문제의식의 근거 등을 살펴봄으로써 이들 논문의 학문적, 사회적 기여도를 가늠해보기 위함이다.

    석·박사학위 논문은 곧 지도 교수의 연구 성향을 비추는 거울이다. 학생들이 논문의 주제를 택하고 완성하기까지 교수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각 대학별로 논문 주제가 특색을 띠는 것도 교수들의 관심사와 성향이 반영된 결과다.



    ◇ 역사학

    흔히 ‘문사철(文史哲)’이라 부르는 인문학은 그 사회의 지적 풍토를 조성하는 기반이다. 특히 역사학은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현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의의가 있다. 서울대 최갑수(서양사) 교수는 역사학의 의의에 대해 “자국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서양사와 동양사를 연구함으로써 한국의 세계사적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깊이 있는 역사의식이야말로 현재를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중요한 키가 된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대(서양사학과, 동양사학과, 국사학과), 연세대(사학과), 고려대(서양사학과, 동양사학과, 한국사학과), 서강대(사학과), 성균관대(사학과)에서 발표된 석·박사학위 논문은 모두 219편(박사학위 논문은 67편)이다.

    이 중 한국사에 관련된 논문이 140편(박사·44편)으로 가장 많고 서양사가 42편(박사·11편), 동양사가 37편(박사·12편)이다. 동·서양사 관련 논문 편수가 적은 것은 사료(史料) 접근이 중요한 역사 연구의 특성상, 서양사나 동양사는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원에서 서양사·동양사 학위를 받더라도 해외에서 1년 정도 자료 리서치를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서울대 박지향 교수(서양사)의 시각이다.

    서양사 논문 중에서 연구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은 유럽이다. 프랑스사(9편), 영국사(7편), 러시아사(4편) 등 유럽사 연구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미국사 논문은 5편이 발표됐다. 패권 국가로서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나, 그 역사가 짧은 미국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외에 알제리 독립운동가의 혁명 역사를 다룬 ‘프란츠 파농의 탈식민주의 혁명론(성균관대 사학과 석사)’ 남미사를 연구한 ‘멕시코의 혁명적 인디헤니스모의 성격(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사)’ 등 제 3세계 역사를 다룬 논문이 2편 발표됐다.

    사상, 정치, 혁명이 서양사 연구의 전통적 소재였다면, 과거에 비해 문화적으로 접근한 논문이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르네상스와 미각의 재발견(연세대 사학과 석사)’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을 통해 본 빅토리아기 영국: 문화를 통한 사회통제와 제국주의(서울대 서양사학과 석사)’ ‘헨델과 18세기 영국: 오라트리오 벤처와 국민적 전통의 창출(서울대 서양사학과 석사)’ ‘프랑스 대혁명기(1789~1799) 민중 축제와 엘리트 축제에 관한 연구(고려대 서양사학과 박사)’가 그 예다. 박물관, 미각, 음악, 축제 등 서양사를 연구하는 소재가 다양해진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논문 주제를 택함에 있어 여전히 지역 편중현상이 두드러진다. 다음은 박지향 교수의 지적이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주와 관련한 연구 논문이 한 편도 발표되지 않았다. 태평양시대가 도래한 이 시점에 호주와 뉴질랜드에 대한 역사 연구가 중요한데도 한국에는 전공자가 전무한 실태다. 학생들에게 미개척 분야의 연구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주제 선택에 있어 단기적 안목으로 유행에 편승하는 경향이 높다. 올해 새로 들어오는 한 학생들은 모두 미국사를 전공하겠다고 해 안타깝다. 유럽통합 문제는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이며, 제3세계 연구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연구 지역과 주제를 택하는 데 있어 10~2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아쉽다.”

    서구중심주의적 학문 풍토를 비판해 온 서울대 최갑수 교수는 “대개의 논문이 그리스 로마 영국 프랑스 독일 소련 미국 등 강대국 위주의 시각으로 서양사에 접근함으로써 유럽 중심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재생산하는 경향이 짙다”고 지적하면서도 “‘18세기 후반 계몽사상과 식민주의: 레날의 를 중심으로(서울대 서양사학과 석사)’ 등과 같은 논문에서 유럽 중심적 역사관을 비판하고 우리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려는 긍정적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평가했다.

    이슬람·오세아니아史 연구 없어

    동양사학의 경우 37편의 논문 중 중국사를 다룬 것이 32편(박사·12편)에 달한다. 이는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국의 파워를 반영한다. 일본 연구 논문은 4편. 반면 중앙아시아사를 다룬 논문은 단 1편에 불과하며, 동남아시아사, 인도사, 서남아시아 역사를 다룬 논문은 전혀 없었다. 현실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이슬람 지역 연구가 취약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의 중국학 연구는 비교적 국제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1970년대 이전에는 우리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취지에서 한중 관계사 연구가 주로 이뤄졌지만, 이후 중국사 자체에 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게 됐다. 중국사 연구의 본류에 들어가 함께 토론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이다.

    중국사를 위주로 하는 동양사 연구는 서양사에 비해 사실 파악 작업에 치중하고 있다. 서울대 박한제 교수(동양사)는 “서양사의 경우 역사적 사실이 거의 밝혀진 상태지만, 동양사에서는 아직 밝혀내야 할 사실이 많아 서구와 같은 유희적 담론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미국 등지와 비교하면 재미없는 주제가 많은 편”이라며 “그것만 보면 연구수준이 아직 서양사에 미치지 못한 단계”라고 지적한다.

    동양사 연구가 중국에 편중돼 있지만, 현재의 한중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 연구자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중국은 뜨고 있어도, 중국사나 중국철학 연구로는 아직 발길이 뜸하다는 얘기다.

    박한제 교수는 “학문이란 당장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라도 항상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선후진국을 나누는 척도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 이슬람 등지의 역사 연구자가 전무한 우리 대학원이야말로 후진적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조기에 가시적 성과를 얻으려는 조급증에서 생긴 결과다. 대학에서 문사철이 같이 연구되는 지역연구 단위, 예를 들어 하버드대 EALC(동아시아어문학) 같은 학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사 논문 140편 중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시기는 조선시대(44편)이며, 구한말~일제시대(42편) 연구가 그 뒤를 따른다. 과거에 비해 한국사 연구자의 절대적인 숫자가 증가했고, 다양한 주제를 선택함으로써 연구 영역이 확대된 것도 눈에 띈다. ‘고려전기 삼성육부제와 각사의 운영(연세대 사학과 박사)’ ‘고려시대 권농정책(고려대 한국사학과 박사)’ ‘고려시대 서얼 연구(고려대 한국사학과 박사)’ 등 그동안 다뤄지지 않던 권농정책, 서얼, 삼성육부제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도 눈에 띈다.

    고려대 이진한 교수(한국사)는 “논문 편수가 증가하고 주제가 다양해졌지만, 정밀한 실증이나 사회과학적 이론을 배경으로 한 논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980년대만 해도 학생들은 대학의 동아리 활동이나 대학원의 세미나에서 경제사, 유물론에 대한 지식을 갖췄으나 최근 입학생 가운데 전근대 전공자들은 이론에 관심이 없다. 석사과정에서 경제사를 공부하겠다는 사람도 자연히 사라지게 됐다”고 전하며 안타까워 했다.

    한국사를 연구하면서 ‘우물안 시각’과 민족주의에 갇히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한양대 임지현 교수(서양사)는 “한국에서 나오는 한국사 연구 논문이 최고라는 순진한 생각을 가지면 오산”이라며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시각으로만 접근하는 근현대사 연구는 오히려 학문 발전을 저해한다. 미국 등지에서 다양한 관점의 한국 근현대사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대학원의 역사연구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임지현 교수는 “한국사, 서양사, 동양사를 망라하는 비교사적 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제안한다. 역사는 동시대에 일어나는 전 지구적 현상인 만큼 거시적이고 전체적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맞물려 돌아가는 유럽, 일본, 미국의 근현대사를 모두 잘 알아야 한다. 근대 이후 세계의 역사는 서로 얽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분과를 초월해 동시대의 동양사, 서양사, 국사를 함께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령 ‘19세기 여성사’ ‘19세기 이민노동사’와 같은 주제를 잡고 동양사·서양사 학자들이 함께 연구해나가는 유럽의 풍토를 참고할 만하다.”

    ◇ 정치외교학

    논문으로 본 한국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의 경쟁력

    역사를 공부할 때 사료(史料) 접근은 필수다. 서강대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는 학생.

    ‘수용과 전파 멘털리티’의 답습(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기정 교수).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적 이론과 담론의 부재(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김일영 교수).

    정책 분석 위주, 역사·이론 연구 뒷전(서울대 외교학과 전재성 교수).

    3년간 발표된 5개 대학 정치외교학 석·박사학위 논문 경향을 분석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이들은 서구적 의제 설정에 의존하고, 뚜렷한 역사인식 없이 현상을 겉핥기식으로 탐구하는 풍토에 비판적 인식을 드러냈다.

    정치와 외교 현상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방법론을 제공하는 정치외교학은 국가의 정책과 세계전략 수립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한국의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은 바로 국가의 행위를 진단하고,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

    2002년부터 3년 동안 서울대(정치학과, 외교학과),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에서 발표된 논문은 모두 337편(박사·41편)이다. 정치외교학 석·박사과정의 경우 학생뿐 아니라 군인, 정치인, 기자 등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학문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현상 분석 논문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세부영역별로 살펴보면 국제정치 분야의 논문이 117편(박사·14편)으로 가장 비중이 크고, 한국정치를 다룬 논문이 70편(박사·14편)에 달한다. 70편의 한국정치 논문 중 북한정치를 주제로 한 것이 18편(박사·4편)이며, 정치과정 논문 20편(박사·2편)도 대부분 한국의 정당과 선거 시스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현실적인 수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비교정치 분야의 논문은 49편(박사·8편)으로 분류됐다. 비교정치 연구는 단일 국가의 내부적 정치문제를 분석하거나 두 나라 이상의 정치문제를 비교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단일 국가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정치학 연구의 근간이 되는 정치사상 및 이론 분야의 논문은 41편(박사·3편)에 불과해 이론·사상에 대한 관심이 낮음을 드러냈다.

    국제정치와 비교정치 영역의 논문을 검토하면, 선호지역 및 연구주제가 뚜렷하게 포착된다. 미국·중국이 강세, 일본이 보합세, 유럽은 약세다.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안보 이슈 분석도 두드러진다.

    ‘안보’ 이슈 집중된 美 ·日 연구 주류

    119편의 국제정치 논문 중 미국의 군사·안보·외교 정책을 분석한 논문은 22편(박사·2편). 9·11 테러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안보와 전쟁 연구가 활발하다. 북미 관계나 한미 관계를 다룬 논문도 14편(2편)에 달한다. 3~4년 전만 해도 한미간 무역갈등, 미국 통상정책의 결정과정이나 문화교류 등 다양한 주제의 논문이 많았던 것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물론, 안보 연구의 비중이 커진 것은 정원 외 인원으로 석사과정을 밟는 군인 위탁교육생의 대거 유입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안보 이슈에 집중되는 현상에 학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근 교수는 “미국 안보 연구에 치중하는 현상은 미국 현실주의의 영향을 과도하게 받은 결과”라며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고려 없이 군사력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은 우리의 패배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라고 꼬집는다.

    과거에 비해 중국 정치에 대한 연구비중은 커졌다. 비교정치, 국제정치 영역에서 중국을 다룬 논문은 모두 17편이다. 정부의 노동정책, 개혁개방정책, 외교정책 등 주제도 다양해졌다. ‘천수이볜 정권과 양안관계에 관한 연구’ ‘대만문제와 관련한 중국외교정책연구: 1995년, 2001년 대만총통의 방미를 중심으로’ 등 양안(兩岸) 관계를 다룬 2편의 논문도 눈에 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논문 주제가 ‘자료 접근이 쉽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슈를 주로 다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연세대 통일연구원 한석희 연구교수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 접근할 방법이 언론보도 정도로 지극히 제한돼 있어, 대외적으로 알려진 중국 정부의 정책을 연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논문이 나오려면 세부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 내에서 정책이 결정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중국을 주도하는 지식인은 어떤 사람들인지, 정작 필요한 주제의 연구가 없는 실정”이라고 평가한다. 이것은 비단, 대학원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정치를 연구하는 한국 학계의 문제다. 중국 정치의 실력자들을 꿰뚫고 내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중국통 학자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본을 다룬 논문은 모두 11편(박사·1편)인데, 역시 안보에 관한 연구가 8편에 달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추세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운동권 학생들이 선호하던 유럽 정치 연구는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낮아졌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제3세계 국가의 정치현상을 다룬 국제정치 및 비교정치 논문도 소수 발견될 뿐이다.

    서울대 전재성 교수는 “유럽연합(EU) 등 유럽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가 많은데 유럽에 대해 관심을 갖는 학생이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외교 정책을 한국과 비교함으로써 얻는 함의가 있음에도 연구가 한국과 강대국에 치우치는 것은 안타깝다”며 ‘지역 편식 현상’의 한계를 지적한다.

    특히 정치현상 분석의 바탕이 돼야 할 외교사와 사상·이론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은 모든 학자의 공통된 지적이다. 역사인식의 토대 없이 현상 분석에 치중하다 보면 결국 파편적이고 피상적인 연구에 그칠 수 있다는 것. 연세대 김기정 교수의 말은 귀기울여볼 만하다.

    “한미동맹의 문제, 북미 관계, 동북아지역 안보협의체,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 등 최신 이슈를 다루는 것은 물론 의미 있지만, 국제정치학의 연구 목적이 국가의 행위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시대적 범위가 확장돼야 한다.

    행태주의 사조가 낳은 몰역사성의 학문적 경향은 바로 미국 국제정치학의 직수입과 연결된다. 정책적 의미를 가진 현상에 대한 분석이 전부인 것처럼 간주해온 미국 국제정치학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외교사 연구는 진부한 영역쯤으로 치부했다. 게다가 강대국 환원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정치학 이론들을 단선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한국의 경험에 대한 이론 탐구의 빈곤을 자초했다.”

    그러나 서구식 의제설정과 문제의식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중심으로 구한말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언어 개념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국제정치를 재구성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문명표준으로서의 두발 양식: 1985년 조선 단발령의 국제정치(서울대 외교학과 석사)’ ‘한국의 영웅론 수용과 전개, 1895~1910(서울대 외교학과 석사)’ 두 논문은 바로 한국식 국제정치학에 관한 모색을 보여준다.

    정보통신 통한 국제정치 뜬다

    새로운 분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정보통신을 통한 국제정치 연구다. ‘유럽 제2세대 이동통신표준(GSM)의 형성과 국제정치(서울대 외교학과 석사)’ ‘정보통신산업에서의 국가역할: 미국과 한국의 평판디스플레이 산업정책 비교(서울대 외교학과 석사)’ ‘인터넷 거버넌스의 세계정치: ICANN의 인터넷 일반 사용자 대표체(서울대 외교학과 석사)’ ‘유럽의 통신자유화: 유럽의 공동통신정책 형성과정을 중심으로(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석사)’같은 논문이 바로 그 예다. 이들은 정보통신 강국인 한국이 국제정치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정치외교학에 대한 우리식 접근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도 아직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세기 구한말을 탐구하려는 노력이 21세기 한국의 현실과는 유리돼 있다. 역사의 연속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그 시대만 연구함으로써, 정작 지금 한국이 지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보화’라는 어젠더는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 정보혁명의 영향력을 침소봉대함으로써 굉장한 변화가 올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사회학

    다양한 특성을 지닌 개인이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 어떤 학문과도 ‘이종교배’ 할 수 있는 무한확장의 학문. 기초사회과학 분야의 기본인 사회학은 독특한 사회현상을 포착해 1차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사회학의 연구결과는 경영학, 행정학, 사회복지학과 같은 응용사회과학처럼 현실에 곧바로 적용되기는 어렵지만, 2차 학술실적을 만들어내는 기초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사회학과의 석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바로 ‘다양성’이다. 10개가 넘는 영역의 논문이 비교적 고르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사회학·사회운동론, 젠더(gender·性)연구와 가족사회학, 문화사회학에 대한 연구가 강세를 보이는 반면, 사회학의 전통적 주제인 계층·계급 연구, 사회사, 조직론에 대한 논문은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사회학과에서 2002년부터 3년 동안 발표된 석·박사학위 논문은 모두 217편(박사·53편). 분야별로 살펴보면, 젠더 연구 및 가족사회학 논문이 33편(박사·5편), 문화사회학 논문이 24편(박사·6편), 정치사회학·사회운동론에 관한 논문이 23편(5편)을 차지했다. 복지와 사회정책을 다룬 논문도 16편이다. 반면 북한사회 연구나 환경사회학에 대한 연구는 없고, 사회학의 핵심으로 불리는 계층·계급 연구는 5편에 불과하다.

    서구의 이론을 정리하고 이를 한국의 경험에 적용하는 것이 한국 사회학 연구의 큰 흐름이다. ‘건설업의 하도급구조와 노동자의 선택 : 닥트직종을 중심으로(서울대 석사)’와 같이 연결망 이론을 통해 노동, 기업, 산업의 현상을 분석하거나, 유럽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문화이론이나 세계화·정보화 담론을 중요한 분석틀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젠더 연구 및 가족사회학 분야는 여성전공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사회 출산조절의 역사적 과정과 젠더 : 1970년대까지의 경험을 중심으로(서울대 박사)’는 외국의 이론이 아닌, 1950년대 이후 한국 역사 경험을 통해 여성의 권리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독자적인 개념으로 설명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분야는 결혼, 육아, 여성의 취업, 성차별 등 현실과 맞닿은 이슈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부르디외의 심판자 돼야”

    서울대 이재열 교수(사회학)는 “사회학과 논문 주제 경향은 시대적 쏠림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면, 그 이후 유럽식의 문화이론이 각광받고 있다는 것. 그러나 석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 담론을 연구주제로 택한 채 결국 정리와 요약에 그치는 논문쓰기에 대해 그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논문으로 본 한국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의 경쟁력

    인문·사회과학대학원의 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 대학원생 선발의 ‘양적 통제’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는 부조리를 연구했다면, 최근에는 미셀 푸코나 질 들뢰즈로 대변되는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에 의한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이성이나 논리보다 감성, 욕망, 인지, 취향과 거대한 사회의 무의식을 연결시키는 데 관심이 많다. 그러나 박사가 되는 연습 과정에 있는 석사가 처음부터 거대담론을 논문 주제로 다루는 것은 옳지 않다. 대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상가의 이론을 요약하고 학습하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학 논문은 기존의 지식과 ‘맞장’을 떠야 한다. 내 논리가 이론가보다 무엇이 좋은지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부르디외를 대상으로 한 논문을 쓰려면, 자신이 연출자와 심판자가 돼 부르디외와 다른 학자들 사이에 논쟁을 붙이고 결론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대개의 학생들은 심판자의 자리를 부르디외나 다른 학자들에게 내주고 만다.

    부르디외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면, 문화 자본이 민족과 계층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경험적인 연구를 하거나 한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응용되는지 딴지걸기부터 해야 할 것 아닌가.

    결국 학생들은 논문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는 없이 성실한 학습결과만 보여줄 뿐이다.”

    외국에서는 석사 과정의 학생이 거시적인 담론이나 이론을 갖고 논문을 쓰는 것이 금지돼 있다. 구체적인 사고를 통해 논리를 전개해가는 방법을 먼저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원의 석사논문을 보면, 하버마스, 부르디외, 기든스, 미셸 푸코, 장 보드리야르 등 다양한 사상가들이 ‘소비’ 되고 있다.

    노동과 관련된 포괄적 사회현상을 다루는 노동사회학은 지고, 경제현상을 사회적으로 재해석하는 경제사회학의 비중이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중앙대 이병훈 교수(사회학)는 “1987년대 노동자 대투쟁이 신진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끌면서 1990년대 후반 교수가 된 이들의 학문적 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정작 노동사회학을 연구하는 신진 인력의 배출은 줄어들고 있다. 1970~80년대에는 정치의식과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학습자와 밀접하게 연관됐다면, 2000년대 학생들은 문화, 경제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평가한다.

    서구 이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연구경향은 많은 학자가 공통적으로 지적한 대목이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는 “사회학이 서양이론에서 출발하지만, 이 분석틀로 우리 사회만이 갖는 독특한 현상을 해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박정희식 발전 패러다임이나 신자유주의가 아닌 제3의 대안을 모색하는 우리식 발전 패러다임 연구, 또한 독도 분쟁 등에서 드러나는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식 사회학을 창출하고 한국적 사회병리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곳은 바로 한국의 대학원이기 때문이다.

    대중과 현실 문제에 동떨어진 채, 학문적 전통 안에서 생성된 문제만을 다루고 논쟁하는 사회학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회학은 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가. 사회학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학계의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의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한국 사회학 연구의 문제점과 발전방향을 짚어보는 것이 더 유의미한 작업일 것이다. 서강대 김경만 교수(사회학)의 진단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대학원의 사회학 연구가 더디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도적, 사회적 요인에 기인한다. 특히 독립된 사회과학 시장이 존재하지 않다보니 대중·정치권의 관심이 되는 당면과제의 해결책 제시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학문 시장을 겨냥한 연구는 평가받을 시장이 없어 외국행을 택하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연구기관의 장(長)을 선발하는 데도 새로운 연구 방법론이나 이론을 제시한 학자보다 대중·정치권과 가까운 인사를 택한다.

    한국 대학원의 사회학 연구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연구의 창의성과 학문적 기여도에 따라 평가와 보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학벌세탁’ 위해 대학원 진학?

    각 학과별로 연구경향에 대한 반성은 다르지만,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이 지닌 문제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석·박사학위자들의 낮은 취업률, 우수한 두뇌의 학문 기피 현상, 허술한 논문 통과 시스템, 열악한 지원 시스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능력을 키워주지 못한 고등교육의 문제점도 연구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의 경우 지난해 학부 학생들 중 대학원에 지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고시나 취업에 뜻을 두거나 해외유학을 택했기 때문이다. 박지향 교수는 “과거엔 1, 2, 3등을 다투던 제자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지금은 대학원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말한다.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그의 밑에서 한번씩은 쓰러질 정도로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받으며 논문을 썼던 박사학위자들이 모두 정규직으로 취업하지 못한 것은 더 안타까운 대목이다.

    고려대 이진한 교수(한국사학)는 “한문 실력조차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대학원생들을 가르치며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많은 사료를 술술 읽어 내려가야 할 국사학도에게 한문 능력은 필수다. 그러나 대학원 시험이 구술면접으로 바뀌면서, 이들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 심지어 교수들은 “학부 고학년 학생들의 지적수준이 신입 대학원생들보다 훨씬 높다”고 입을 모은다.

    외환위기 이후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한국 대학원은 졸업생들의 도피처가 되기도 했다. 올해 사회학 석사논문을 마친 채모(30)씨는 “취업을 하자니 갈 곳도 없고 해서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논문을 마쳤지만, 진로만 생각하면 막막하다. 동기들 중에는 그저 학벌을 높이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도 부지기수”라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더 큰 문제는 경쟁력 있는 석박사를 양산하지 못하는 대학원 시스템의 문제다. 학문의 필요성과 사회적 수요에 맞춰 박사과정을 운영한 것이 아니라, 예산 확보를 위해 ‘뽑고보자’ 식으로 학생들을 받아들였다가, 교수 한 명이 무려 7~8명에 이르는 학생의 논문을 지도하게 된 형국이다.

    ‘온정주의적’인 박사학위논문 심사도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 요인 중 하나다.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 타 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일갈이다.

    “한 여학생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며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이도 들고 취업도 됐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것이 다른 교수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미국 대학은 정상참작이 허용되지 않을 만큼 논문의 질을 냉정하게 평가하는데, 한국에선 타의에 의해 박사학위를 받지 못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구체적 사고 능력 결여

    반면, 대학원생들은 교수들의 ‘무심한’ 논문지도를 비판한다. 정치학과 박사학위를 밟고 있는 Y(28)씨는 “지도교수가 강의, 연구, 대외활동으로 쫓기다 보니 석사 논문 예심 3~4일 전 처음으로 글을 훑어봤다. 논문의 방향에 대한 간략한 충고밖에 듣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한국 대학원의 문제는 한국 교육 전반의 문제와도 궤를 같이한다. 현재 대학원에서 한국 학생들과 외국 학생들을 함께 가르치는 모 교수는 “아이비리그 학부 출신의 외국 학생들은 논문 작성에, 한국 학생들은 ‘암기 시험’에 특히 강하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 대부분이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고 그에 합당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미국 박사들이 경쟁력을 갖는 것도 결국 오랫동안 이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하드 트레이닝’을 받아온 결과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논리와 구체적 사고 능력이 부족한 한국 대학원생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한 학생이 ‘빈곤의 주거공간 연구’를 하겠다고 상의하러 온 적이 있다. 문제의식은 신선했지만, 정작 빈곤이 주거공간에 미치는 영향을 어떤 현상으로 보여줄지, 그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이는 한국 대학원생의 보편적 문제점이기도 하다.”

    양보다 질 관리를

    한편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불투명한 미래와 턱없이 부족한 장학금 지원은 전공자들의 연구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 3월 ‘중앙일보’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대 박사학위자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인문대의 박사학위 취득기간은 평균 8.2년으로 가장 길었다. 생계를 해결하며 공부해야 하는데 미래가 불투명하다보니 휴학이 잦았던 것.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와 조교 일에 매달리는 한국 학생들은, 연구에만 몰두하는 해외 대학 경쟁자들과 그 출발부터 다른 셈이다.

    한국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이 경쟁력 있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서울대 장인성 교수(외교학)는 석·박사학위자의 ‘품질관리’라고 강조한다.

    “우수한 학생만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엄격한 학사관리가 필요하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자국에서 박사를 마친 이들이 주로 대학에 임용된다. 일본 대학의 학위 시스템에 대해 전폭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자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밟는다는 것은, 후배들에게 ‘연구 테마를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다. 국내에서 우수한 학문성과를 내면, 유학파와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 대학이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한국 대학원도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연세대 김기정 교수는 대학원생의 ‘양적 통제’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하나의 박사학위논문이 나오기까지 지도교수와 치열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 문장의 오탈자까지 하나하나 잡아낼 만큼 꼼꼼한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학부 수업과 사회활동 부담까지 떠안는 한국 교수들에게 이런 교육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전환하면서 선발인원을 늘린 것이 교육의 질 하락에 결정타를 날렸다. 충실한 1대 1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시급하다.”

    인문·사회과학은 현실과 유리된 학문의 특성 때문에 더 홀대받아왔다. 그러나 한 국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밑거름이 되는 것은 바로 인문·사회과학이다. 선진국일수록, 두터운 층의 인문사회과학자와 학문을 소비하는 넓은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육의 질 저하와 서구중심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은 변화를 모색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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