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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인화의 ‘리니지’ 게임론

“가상현실에서도 정의가 승리 해야…그래서 ‘바츠 해방전쟁’ 일으켰다”

  • 이인화 소설가, 이화여대 교수·국문학

작가 이인화의 ‘리니지’ 게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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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수치에 따라 점점 높은 레벨로

작가 이인화의 ‘리니지’ 게임론
처음 ‘리니지 2’의 가상현실에 접속한 사용자는 캐릭터 리스트에 아무것도 없는 가상공간과 만나게 된다. 셀렉션 스크린(selection screen)이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디자인한다. 이러한 선택에는 종족, 성별, 외모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 키, 피부색깔 등 다양한 디테일이 포함된다.

이러한 조형 과정을 통해 사용자는 캐릭터와 감정적으로 매우 유착한다. 현실 공간에서 나의 외모와 이름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의 성장 또한 상당 부분 부모와 사회적 조건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만든 나의 캐릭터는 그 외모와 이름, 그리고 성장 과정까지 어느 하나도 나의 노력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레벨 1의 캐릭터로 태어난 사용자는 종족에 따라 각기 다른 장소에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며 게임 안에 등장하는 NPC들(Non-Player Character·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을 클릭하면 여러 가지 수행 과제인 퀘스트를 얻을 수 있다. 퀘스트를 수행하면 경험치와 돈을 보상으로 받는다. 다른 플레이어와 협동해 사냥하면서도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일정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이 높아져, 캐릭터의 능력이 향상되고 더욱 수준 높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더욱 전문적인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플레이어 집단인 혈맹을 창설해 군주가 될 수도 있다.

혈맹은 군주와 일반 혈맹원으로 구성되는데, 군주의 SP(스킬 포인트)와 아이템, 돈을 지불해 레벨을 올린다. 혈맹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혈맹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혈맹이 거느릴 수 있는 최대 인원도 늘어나며 혈맹간 전쟁도 벌이게 된다. 전쟁을 통해 혈맹은 그 세력을 넓힐 수 있으며, 4레벨 이상의 혈맹은 성(城)을 차지할 수도 있다. 성을 차지하기 위한 혈맹들의 전쟁이 바로 공성전이다.



민중 계층의 봉기

‘리니지2’ 세계에서 일어난 여러 스토리 가운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제1서버(바츠 서버)에서 2004년 6월에 발발한 ‘바츠 해방전쟁’이다. ‘리니지2’에는 32개의 서버가 있다. 이 가운데 바츠 서버는 역사가 가장 오랜 서버로, 사용자들이 개발사에 대해 항의 시위를 하는, 정치적 대표성을 가진 서버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에서 발생한 숱한 스토리 가운데 현실세계의 일간지에 보도될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의 세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리니지2’의 세계는 레벨에 따른 계층적 차별성이 뚜렷하게 제시되는, 철저한 계층 사회다. 레벨에 따라 입는 옷과 쓰는 무기 등 아이템이 다르며 출입할 수 있는 지역도 다르다.

‘리니지2’의 스토리 세계에는 현실 역사의 ‘민중’에 비유될 만한 계층이 존재한다. 통계 자료를 보면 40레벨 이하의 캐릭터들로 규정되는 이 민중 계층은 2003년 11월25일 현재 전체 ‘리니지2’ 플레이어의 85.9%를 차지한다. 한편 6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캐릭터이면서 지배혈맹에 소속된, 현실 역사의 ‘군사 귀족 계층’에 비유될 계층 역시 뚜렷이 존재한다.

레벨이 높아져 세력을 형성한 혈맹에 들어가면 멋진 무기에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성에서 살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낮은 레벨의 군소 혈맹원은 수시로 공격당해 죽고 들판과 음습한 동굴, 무너진 산채에서 혈맹 모임을 연다. 사냥터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이러한 계층 분화는 레벨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의 상충현상을 일으켜 혈맹 전쟁의 확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전쟁혈맹의 혈맹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55레벨 정도가 돼야 하며 DK혈맹과 같은 이름 있는 혈맹에 가입하려면 최소 61레벨에서 65레벨이 돼야 한다. 따라서 혈맹전쟁은 그만큼 레벨이 높은 전쟁혈맹 사람들만의 관심사다.

이처럼 계급구도가 뚜렷한 ‘리니지2’ 세계에서 민중이 대대적으로 봉기한 2004년 6월의 바츠 해방전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 세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바츠 해방전쟁은 위협하면 굴복하고 때리면 죽는 민중이 권력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중의 고조된 열광은 시스템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승리를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승리는 크라토스(Kratos), 즉 거칠고 원초적인 물리력이 지배하던 세계에 에토스(Ethos), 즉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가치 이념을 출현시켰다. 이후의 ‘리니지2’ 세계에서는 어떤 권력도 이 같은 에토스의 전제 없이는 피지배계층의 복종 내지 권력에 대한 묵인을 얻어낼 수 없다는 진리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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