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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찾아낸 멕시코 이민 1세대 신상명세서

고종황제 친위대에서 농사꾼까지, ‘일 포드’호 최초 승선자는 1089명

  • 김지현 재미 자유기고가 lia21c@hotmail.com

100년 만에 찾아낸 멕시코 이민 1세대 신상명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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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찾아낸 멕시코 이민 1세대 신상명세서

교민들이 세운 멕시코 이민 100주년 기념탑.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한인 이민자들은 당시(1903~1905) 미 이민국에서 입국수속을 담당했기 때문에 명단이 보존돼 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1908년부터 새 이민법에 의해 항구나 철도역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의 신상명부를 의무적으로 작성하기 시작했기에 그보다 3년 전인 1905년에 살리나스 쿠르스항에 도착한 한인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이씨는 끈질긴 추적 작업 끝에 이처럼 역사 뒤편에 버려진 멕시코 이민자의 신상을 거의 대부분(1025명)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가운데 70%는 사망시기까지 확인됐다. 이씨는 “멕시코 이민자들 중에서 1025명의 신상을 파악하는 데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두번 다시 이런 작업은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간의 고초를 토로했다.

이씨는 10여 년 전부터 멕시코 현지에서 수집한 각종 1차 자료를 위주로 명단 작성 작업을 시작했다. 미주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인 ‘신한민보’ ‘공립신보’를 비롯해 대한인국민회의 문서자료와 조선 말기 국내에서 발행된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명단을 수집했다.

이름 하나를 발견하면 그 인물의 행적을 찾기 위해 USC(서던캘리포니아 대학) 한국전통도서관에서 수십년치에 달하는 신문 마이크로필름을 돌려야 했다. 그러기를 수개월째, 피를 말리는 작업에 이씨는 몸살과 눈병까지 앓았다.

이씨는 지난해 말 도산학회에서 발행한 ‘미주지역한국민족운동사자료집’ 중 묵서가국(墨西可國, 멕시코를 의미) 유가단도 미리다 지방회원명록(地方會會員名錄)(1909~1911) 및 재묵동포인구등록(在墨同胞人口登錄 1919), 묵국오악기지방회(墨國五岳基那地方會 1912) 창립회원 명단록 등 일본 사료, 멕시코 정부가 1920년부터 상하이 임시정부와 주고받은 서류 등에서도 이민자들의 이름과 활동상황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자료를 기초로 가족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이민자들은 고종황제의 친위대 소속 간부부터 평범한 농사꾼에 이르기까지 출신이 매우 다양했음을 밝혀냈다. 이씨는 그 과정에서 독특한 내력을 지닌 한인 이민가족과 후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종황제 친위대의 기구한 삶

멕시코 이민 1세대 가운데 미국으로 근거지를 옮겨 6세대까지 뿌리내린 김윤원씨의 후손이 바로 그런 경우다. 필자는 이씨를 통해 김씨의 후손들을 알게 됐고, 그들을 통해 한 많은 멕시코 한인이민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봤다.

김윤원씨는 1905년 당시 고종황제 친위대 고위직 인물이었다. 멕시코로 이민 온 후에도 초기 정착지인 유카탄주에서 한인사회의 지도자로 많은 공헌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6월14일 필자는 LA에서 살고 있는 김씨의 셋째딸 김미선(91·미국명 줄리아 이데)씨를 만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는 어머니와 형제들끼리 한국어를 사용했다”며 인터뷰 중 가끔씩 한국어를 섞어 말했다.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을 보여주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지난 90년의 삶은 한 편의 역사 대하 드라마를 연상케 했다.

1905년 4월 인천항. 영국 선박 ‘일포드’가 출항하기 직전, 일본 경찰들이 배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고종의 황실군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강력히 반발한 친위대 고위인사 김윤원씨를 체포하려 했다. 김씨는 부인 송애연(24)씨와 다섯 살난 딸 은선, 세살배기 아들과 함께 멕시코 이민선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당시 김씨는 31세. 다행히 김씨는 함께 승선한 한인의 도움으로 일본 경찰의 수색을 피할 수 있었다.

황해도 양반 출신인 김씨와 서울의 좋은 가문 출신의 부인 송씨였지만, 부부 앞에 펼쳐진 멕시코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었다. 김씨 부부는 에네켄(henequen

·일명 ‘애니깽’) 농장일은 물론 빨래, 다리미질 등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했다.

에네켄 농장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김씨는 1909년 5월9일 유카탄 메리다에 국민회 지방회를 창립해 총무로 활동한 데 이어 5월12일 멕시코 이민사회 최초의 한인교회 ‘한인감리교 미션’을 설립하는 데 앞장섰다. 그 직전인 1908년 광무군 출신인 이근영씨 등과 함께 숭무학교를 조직한 터였다.

김씨는 국민회 지방회관 옆에 여관을 개업해 오가는 동포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동포사회에서 분쟁이 있을 때면 언제나 중재에 나섰다. 동포를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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